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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Oct 30. 2021

답이 없어도 걸었다 (1)

걸어야 도착한다


집으로 오던 날 아침 월정리해변



아쉽지 않은 끝날은 없다.

...


'아쉬움은 다시 오겠다는 약속인 것 다.'

일시를 정하지 않고 언제든 와도 되는 아무 때나에 '아쉽다'거나 '여운이 남는다'거나 '그리울 것 같다'는 감성 좌표를 찍어두고 돌아올 명분을 만든다.

억지로 쥐어짜지 않아도 몸이 발산하는 건강한 미련이 이다음을 기대하게 한다.

설령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명치끝에 남아 있는 아쉬움의 아린 맛으로 족하. 

지나간 날도 오는 날도 그날은 그날로 족하.


ㅡBe still ㅡ

   '심란한 생각들. 불통인 관계들. 직장 적응이 안 된다는 친구와 연로한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봉하고 푯말을 세워두고 집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다. 

*푯말 "Be still"


여행은 '여기 지금'으로 한정된 내 생활바꿀 것이다. 한 군데라도 바뀌게 되어 있다. 무어라도 변할 것이기에, 아니 변해야만 하기에 매일의 24시간은 기록하고 싶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그 어디를 갔다 오면 여전한 오늘이 처음인 냥 다를 테지만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게 있다.

익숙해지는 건 금방이라도 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2021.10.14.
목요일 오후 2시 30분 제주 도착!

노트에 이걸 적었다.


   제주공항버스 승차장 앞에서 월정리행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그곳은 '손풍기라도 챙겨 올걸!' 이라며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오는 더위였다.

코로나 거리두기 3단계라도 상관없는 듯이 제주행 비행기는 좌석을 꽉꽉 채워서 운항하고 있었다.

'뭔가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북적이는 분주한 사람들의 이동이 내 눈엔 어색하다.'


   이 어색한 조합 한가운데 우두커니 발을 딛고 서 있는 하나의 수에 불과해 보이는 나를 즐기는 것도 여행의 맛인 것 같다.

나 자신을 낯설어하는 시간 말이다.


부산에서 <<   000   >>제주로     


월정리행 101번 공항버스

편리함: 6년 만에 와보니 이젠 굳이 제주시 터미널로 가서 직행버스를 갈아타지 않아도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면 월정리에 갈 수 있다.



   달구지 소릴 내며 케리어를 끌고 해 저문 시골길을 바다가 보이는 쪽을 향해 걸었다. 5분 정도 걸으니 대문 밖에 고모가 쪼그려 앉아 계셨는데, 그 모습이 흡사 오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모습과 닮았다.

외향이 닮은 두 분은 사실 사이는 좋지 않으셨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 고모는 한달음에 달려와서 빈소 앞에 쓰러져 통곡을 하셨다. 그렇게 울 거면서 살아서는 서로가 어쩜 그리도 맘이 안 맞았는지 모르겠다.

  고모는 나이가 들면서 당신 어멍(어머니)를 더 닮아가신다. "그런 말 듣기 싫지만... 어쩌겠나 자식이 부모 닮지..."

고모는 성질이 한풀 꺽인 대답을 하셨다.





책방 풀무질에서



자주 골똘히 생각하던 길을 가게 된다.

...


   나의 이십 대는 청소년기 시절만큼 무척이나 오래 방황했다. 방황 중에도 난 '방황하기'를 소명에 붙박아 두고서 '소명'을 따라 살려다 보니 나그네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여행자로 살고 있는 자신을 기도로 추스르면서 낯선 것을 아무렇지 않은 듯 수용하는 자신만의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갔다. 잠잘 숙소가 없는 서울살이를 십 년 가까이했다. 지금은 그 시절의 아픈 기억도 행복했던 순간도 무덤덤해져간다. 내가 지금을 살아가는 법이 무덤덤하게 받아줌인가 싶다.


  누군가 나더러 왜 그렇게 살았냐 묻는다면,  대답은 이거다. '자신에계속해서 물었으니까.'

지금 나는 소명으로 사는가?를 계속해서 자주 골똘히 깊이 묵상했더니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아닌가 싶다.


길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 늘 맘이 쓰여 붙들고 씨름하는 그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떤 걸음이건 자신의 선택으로 열리고 열린  그 위를 걷듯,  나의 길이 아무리 타인의 길과 수백 수천 번을 겹친 들 자기 길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면 서로 다른 소명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글을 통해,

손재주가 남달리 좋은 사람은 그 손을 통해,

입담이 좋아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람은 그 말을 통해,

무엇이 통로가 되건 '소명'은 각자의 '다름'의 가치와 힘을 발휘하며 함께 조화롭게 하나를 이루어 간다.



10.15.금 날씨가 정말 좋다. 세화오일장 & 풀무질 방문


  '오늘은 세화오일장에서 엄마 옷 바지 사고,  문방구에서 선물이 될만한 게 있나 보고, 풀무질에 가서 생각해둔 책을 사는 거. 특히 《정원가의 열두 달》이 있다면 책방지기에게 스템프를 찍어달라고 하자.'



 아침부터 하나둘 사람들이 골목마다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동네 곳곳을 훑고 지나가는 대부분이 젊은 청년들인 게 흥미로왔다.

비대면 수업이라 여행 온 학생들인지, 돈이 넉넉해서 여행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지, 시골 해변 마을은 매일 쉼이 없는 청춘들이 길을 찾아 이곳을 온 것처럼 보였다.

저들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주 골똘히 생각했을까? 아마 그랬거나 아니거나


조류와 바람을 살피며 조타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정침 하는 배처럼, 나는 나와 가장 근접해 있는 키워드 '책과 책방'을 검색했다.

<책방 풀무질>, <시인의 집>, <만춘 서점>, <구들서점>, <책약방>...


(조천-함덕-김녕-월정-행원-세화 언저리에 자리한 서점이라면 가볼만 하겠다)


나는 제주 속 20개가 넘는 책방을 다 탐방할 듯이 서점 이름과 위치, 시간과 각각의 특색을 확인했다.

출발 전까지 마음을 가장 많이 쏟은 곳을 갈 수밖에 없도록 마음이 원한다고 기억에 각인시키고 있었던 거다.

그냥 이끌렸다는 관성적인 대답도 알고 보면 마음으로 원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주 풀무질 책방지기와 그곳

서점이 책만 팔던 시절은 지나갔다. 책방이란 간판을 보고 들어갔는데 커피 향이 가득 배어있는 곳이 대세다. 그곳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지만 차 한잔 하러 이런 분위기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나보다.

함덕에 조천에 월정에 책방 이름을 등록한 가게들은 내게 큰 흥미를 주지 않았다. 도심 속 카페와 차별없는 곳을 보자고 온 게 아니라서.


  지나간 신문 지면에서 봤던 풀무질은 꼭 들르고 싶었다. 책방지기 은종복씨가 서울에서 22동안 운영했던 인문사회 전문  서점을 접고 제주로 내려와 다시 책방을 열고 정착해 살고 다. 이야기가 있는 곳이자 책과 얽힌 그의 여정이 담긴 곳.

다행히 그곳에서 내가 찾던 《정원가의 열두 달》이 잘나가는 책으로 누워있어서 다른 것까지 세 권을 구입했다.

책방지기는 유쾌한 손놀림으로 책 모서리마다 스템프를 찍어주었다.


오늘 하루 만오천보 이상을 걸었고 책방을 나서면서도 찾아야 할 대답이 있어서 내일은 어딜 갈지 검색창에서 '오름' 두 글자를 두드렸다.




이번 여행이  책방 투어였던가?

세 개의 주요 기도 중 하나였던 고향 방문 목적은 '미래' 때문이었다.

"언제쯤 귀향해서 살지, 과연 제주에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질문의 방향이 계속해서 미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숙명처럼 귀향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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