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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Oct 29. 2021

추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고향을 그리워하다


월정리 바다

 흔한 모래 해변이 갑자기 핫한 곳이 되었다.

 유년시절 할머니를 따라 달빛을 받으며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던 바다는 이제 신분이 상승한 존재로 내게 낯을 가린다.

해변을 향한 낯가림을 생경하다고 표현해야 하니 "격세지감"이란 말 뜻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고향이 왠지 낯설다.

해안가 오래된 집마다 소박한 음식 내음이 풍겨 나오는 촌집들 사이를 음식점. 잡화점. 책방. 기념품 가게들이 자본주의의 번지르한 때깔을 내며 비집고 앉아 있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이 정설이 된 고향 마을에서,  난 자꾸 체기를 느끼고 불면의 밤을 보낸다.

그런데도 아침은 얼마나 찬란한지 감탄스럽다.

몽유병자처럼 자던 잠 이부자리에 두고 일출의 풍경에 취해 바닷길로 나섰다가 발견한 동네 사람들. 그네들이 몇시부터 해변에 나와 마을을 훑으며 쓰레기를 줍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먼동이 트고 새벽은 아직 꿈에 있을 때, 사람들이 당연하듯 쓰레기를 찾아다니며 청소를 힌다. 그들이 검은 물체처럼 흔들리며 움직이는 그림이 너무 반가웠다.

비로소 찾았다.

내가 그리던 고향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

월정리해변 일출
창에서 바라본 일출
옥상에서 맞이한 아침


오 년, 육 년, 혹은 십 년에 한 번 발걸음을 했던 월정리 해변이 내다보이는 골목 어귀에 고모가 살고 계신다.

제주시에서 똥통(분뇨처리장인 것 같다.) 확장을 이곳 월정리에 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마을 주민들이 보름 째 시위하러 모이고 있다. 시골 아낙들과 남정네들은 새벽이 밝아오면 밭으로 나가 밭일하며 살아야 하는 데 분뇨처리장 확장 문제가 생기고부터는 잠잘 시간을 더 쪼개야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밭 일. 바닷 . 시위 그런 것들을 다 해야 하는 고모는 오늘도 잠이 모자란 눈으로 정신 차리며 살고 계신다.



두려움

"자본의 속성이 무언가?"

자문하다가 내 안에 두려움을 발견한다.

이곳은 있는 들에게는 헤븐.

없는 자들에게는 좌절 같은 곳이 되었는데.. 그것의 속성을 더듬어 살피려니 소름돋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분위기 좋은 카페, 밤바다 위에 걸린 달, 모래 해변을 휩쓸고 지나가는 바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빈방이 늘어난 숙박시설들, 홍콩의 야시장을 흥청거릴 것 같은 이국적인 가게들. 바닷가를 거니는 육지 사람들의 사투리,

세월이 이렇게 변했다. 

월정리 사람들의  백 년 역사를 모를테지만 낯선 사람들은 이곳의 바람. 하늘. 바다. 공기와 아메리카노. 스파게티. 흑돼지로 버무린 재료들이 행복을 보장하리라는 믿음을 품고 찾아온다. 

다른 이유로 왔다고 설득해도 나 역시 여행자로 고향에 와 있다.

일주일 뒤에 집으로 갈 계획으로...

그 어느 여행자와 비슷한 기분일 줄 알았는데 자꾸만 이곳 월정리와 행원리 언저리를 오가는 오징어 갈치잡이 배처럼 차분해지지 않는 마음과 정처 없음에 불편하다.


아침과 밤의 시간마다

젊은이들과 가족들과 여자들과 남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드륵드륵 소리를 내며 케리어를 끌고 정해진 공간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예정한 공간 밖을 노닌다.

그들에 대한 낯섦 때문인지? 아니면, 정처없이 이곳을 돌아다니는 소리 때문인지? 나는 속절없이 진공 속을 유영하는 미물이 된 듯 불안하다.



"좀 낙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안 되겠니?"


객지에서 집 짓는 일을 했던 목수가 빈집을 오 년, 칠 년 세를 들어 리모델링을 하고 있단다.  일 층은 제주의 검은 현무암을 시멘트로 발라 그럴듯한 이국적 이미지로 만들고, 이층 외벽은 저렴한 자제로 가건물 같은 집과 비가 오면 지붕 위로 콩 털어내는 요란한 소릴 내는 양철지붕 집. 기둥만 남겨두고 내부를 수리하는 집. 세월을 견디다 못해 폭삭 무너져 내린 집.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집들이 동네를 채우고 있다. 목수가 리모델링한 집마다 제주살이 하러 물건너 온 육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니... 그 목수가 손 데지 않은 집들이 얼마나 될지 사뭇 궁금해졌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집 골목을 따라가니 옛날 물지게 지던 바깥채 남겨두고 중간 집터에 그럴싸한 이층 집이 있다.  집 옆에 작은 외조모댁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팔릴 것 같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빼면 손바닥만한 지분도 없는 나는 홀로 텅빈 할머니집 부엌과 변소와 우물터를 걸어보고 사진에 담았다.

부동산 업자가 집을 짓고 팔고 다시 짓고 비싼 값에 다 보니 자기 집을 가진 동네 사람들 인심이 예전과 달리 크게 달라졌단다.

골목이던 길을 막아도 "법대로 해라"는 말이 추임새가 되었단다.

법대로 해서 자기 주머니 불릴 사람이 자꾸 늘어나는 소문에 나는 다시 체기로 가슴이 답답했다.

너도 나도 법대로 ㅎㅎ

웃기다.

그 법은 사람 위에 있어서 사람 사이를 가르고 이간질하는 협잡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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