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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Nov 11. 2021

말하지 않아 비밀이 된 미혼

괜찮아요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결혼을 했는지, 아직 미혼이라면 무슨 사연이 있는 건지 아니면, 비혼주의자인지 묻고 즉답을 듣고 싶다며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결혼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 나는 가능한 간결하고 정직하게 대답을 해왔지만, 중년의 나이를 넘으면서는 좀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반의 진실을 적절하게 섞어서 그 자리를 면피하고 싶었다.  

지금은?  먼저 눈썹을 위로 추켜올림과 동시에 스마일 표정을 지으며 "흠~" 하고 숨을 뱉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답하는 나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언제나 같진 않아서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간혹 나에게 결혼을 왜 안 했는지 진짜 궁금해서 물어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맘을 정리했던 시점에 일어났던 해프닝을 살짝 들려준다. 이상하게도 그런 진지하게 얘기하길 원하는 관계에서 시작된 대화가 계속 이어지다 보면 좋은 결혼 생활이 뭘까? 이렇게 사는 게 잘하는 것인지? 에 대해 같은 편이 돼서 머릴 싸매고 답을 찾는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대화는 누구 좋으라고 시작했는지가 궁금해진다.


미혼인 내가 감히 기혼자에게 결혼 상담을 해줄 수 있을까?...  어느새 진지한 사람들의 대화는 미혼과 기혼의 경계가 지워진 생활 밀착형 대답을 함께 찾아 헤매기도 하는데,  순간 인생의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든다.

몇 시간 전 만해도 각자의 다른 결혼관을 품었던 두 사람이 이제 '우리'가 되고 보니, 인생이 던지고 있던 질문이 하나만 아니었기에 결혼 얘기 한 가지로 어떻게 끝낼 수 있겠나.


하지만 나조차 애매모호한 답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나는 결혼에 관해 이제는 더할 말이 없기에 가급적이면 연관 질문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맘으로 간단하게 끝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리고 어디쯤에서 이어지는 질문을 끊어야겠다는 분명한 선을 정해놓고 대답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루하고 의미 없는 말에 꼬리를 붙이는 꼴이니, 소모적인 말잔치는 결국 상대방을 알 수 있는 본질적인 대화는 시작도 못하고 끝내야 한다.

사실, 어떤 단어로 말의 고리를 걸었든 나도 그녀(그)도 궁극의 해답을 얻겠다는 목적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서 서로의 생각을 열어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답은 자기 안에 있습니다
어떤 것을 어느 정도껏 끄집어낼지 말입니다.
 








미혼이 비밀 일리가


 의도치 않았지만 미혼인 사실을 함구하며 지냈다. 누가 결혼 여부를 묻기 전에는 가볍게 입을 열 일은 없었고, 인간관계에서 미혼이 불편하지 않았던 점도 한몫을 차지했으니 말할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기혼과 미혼으로 양분해서 보는 사람이 꽤 많았다.


"혹시 결혼 하셨나요?"

'음~~  대답하기가 고해성사보다 더 어려운 무슨 불손한 이유라도 있는건 아닐텐데 ;; 주저하는 가슴이여 흔들림 없이 얘기해라. "아뇨, 저 싱글입니다.

돌싱 아니고 그냥 싱글."


   내가 만났던 기혼자들 중에는 나보다 어린 나이임에도 '애를 낳아봐야 어른이지!'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그의 단단한 신념의 강도 때문에 (그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는) '어른의 조건'을 내가 반드시 진리로 받아들여야지 생활면에서 구원받을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가끔 승자의 미소를 머금거나 아니면, 달콤할 것만 같은 결혼 너머에 만만찮은 쓰리고 비린 속을 숨긴 채 말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그들이 보여준 건 '결혼 is good'을 일반 명제로 두고 나를 가르치고 설득해서 결혼의 문 안으로 들여보내고 싶은 의지랄까 소명이랄까 그런 거였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내가 그녀와 사랑과 전쟁을 벌였던 사건이 있었던가?'


어쩌다 결혼이란 화두로 그녀와 내가 무명의 1인을 사이에 두고 설전하는 기분이 드는 걸까? 설득인지 가르침인지 분간되지 않는 말로 아슬아슬하게 내 염장을 후빌 때도 있었다.



에피소드


어머;라는 소리가 미혼의 전매특허?

수년 전 모임에서 추석을 맞아 투호놀이를 하던 중 내가 던진 막대기가 번번이 통을 비껴나가 그때마다 '어머. 어머머~' 소리를 내자, 심판석에 앉아있던 분이 '에이~  아가씨도 아니고 ㅋ '어머'가 뭡니꺼...'라며 내가 지르는 소리에 훈수를 뒀다.

함께 옆에 섰던 후배 싱글녀의 말문이 막힌 얼굴을 보며 곧바로 항의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다. 한바탕 재밌게 놀았던 날도 내가 싱글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내 행동과 추임새를 낯설어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오히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간사님이 싱글이야~'라고 귀띔을 해줬다는 얘길 나중에 듣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라는 소리가 주로 여성들이 놀라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내는 소리라는데... 설마 싱글이 그 소릴 전매 사용 특허를 낸 건 아니잖아요.

나중에 그분이 '와~ 나는 몰랐어요.  진즉에 싱글이라고 얘기해주지~~ 기분 나쁘게 듣진 않았지요? ㅋ'라고 하는 대답에 괜히 오히려 더 열 받을 뻔했다.  리액션도 싱글스럽게 해서 상대방이 실수하지 않도록 주의할 책임이 있다면, 말과 행동에서 싱글만이 가능한 그 무언가 있다면 그런 거 나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혹시 내가 미혼이라는 걸 숨겼다면 더 도움이 되는 걸까? 잠시 고민했던 경우가 있었다.

올봄부터 교회학교 유치부에 영아반을 맡게 되었다. 영아반 일곱 명의 2030 세대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함께 참석하게 될 것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제대로 모두가 만나기 힘들었음)


그런데 유치부 임원회의에서 미혼인 나를 영아반에 임명하다니... 선생의 자격이 결혼 여부와 아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은 착각이었다. 하지만 기혼자로 구성된 젊은 엄마들과 미혼의 중년 교사.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모자란 경험치는 매주일 만나는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자주 정체되었다.

정체되는 그 무지의 찰나를 매번 조용히 지나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양육자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대가 없으면 어떡하냐는 염려가 있기도 했다.



영아들을 맡아 모임을 진행하기 시작할 무렵. 지난 이년 동안 나와 함께 북까페로 독서 모임을 해왔던 유치부 부장이 가끔 나를 보고 큭큭 웃으며 "미안해요~ 어려운 일을 맡겨서... 선생님이 미혼이란 사실을 엄마들이 아직은 모르니까~" 라며 걱정 반 웃음 반으로 말하자, "엄마의 마음은 몰라도 이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아" 응수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그때는 정말 미혼이라는 사실을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라도 되는 냥 움찔했다.


봄! 한 계절이 가고, 여름! 이 올 때가 되었을 때 나는 비밀을 해제하기로 했다.

왜냐면, 양육에 관해서 미숙했고 영아 성장에 관해 알아야 할 정보들이 계속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혼이란 사실을 숨겨야 할 치부가 된 것 마냥 어색한 기분이 들자 물 먹은 솜이불을 온몸에 짊어진 무게에 짓눌렸으니까.


"미혼이시구나!"  미혼인걸 의도적으로 감춘 게 아니었지만 비밀을 스스로 폭로하자 오히려 엄마들이 내 편이 되어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첨부터 네 편 내 편이 없었던 사람들의 무덤덤한 반응에 어쩜 그렇게 크게 안심이 되었는지 희한했다.

혹시 그 비밀의 출처가 나로부터 시작된 건 아니었을까?

내가 미혼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주변인들을 마주치면서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없던 이유가 있었나? 그게 무엇이 되었든 비밀로 하자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요. 미혼이 비밀 일리가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 인생에서 겹쳐본 일이 거의 없던 사람들이 가끔씩 결혼에 대한 논리를 얘기할 때 나는 좀 마음이 무겁다.

 그러나  '결혼해야 어른이다' 명제로 결혼하라는 이들 앞에서 앞으로는 무거운 마음도 나만의 비혼의 이유도 따지지 않고 져주기 했다.


"맞아요 ㅎㅎ"

"그렇군요~ "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어요 "

입에 발린 반응이 아니라 '그럴 수 있겠다'라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혹시나, 그녀가 결혼 전날 밤 갑자기 약혼자가 사라져 연락이 안돼 속을 태웠는지.

사랑 하나만 있으면 일사천리로 결혼할 것 같았다가, '이 결혼 나는 반댈세!'라며 방어막을 치는 시누이와 시집 식구들을 상대로 힘겨운 밀당을 하다 지쳤을지,

3년이면 서로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는 말은 옛말이 되어... 결혼해서 1년이 지나기 무섭게 그들의 뜨겁던 사랑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무를 수 없어 버티기로 맘 다잡았을지.

건강은 타고난다고 생각했지만 한밤 중 열이 오른 아이를 안고 차를 운전하며 앞이 아득했을지, 


삶의 희로애락을 겪다 중단하다 실신하고 눈을 감고 소리치고 침묵하기를 몇 번 했을지 본인 만이 감당했을 굴곡진 세월의 무게와 질감을 나는 모르니까... 그들이 미숙하게 들리는 변론에 동의하기 싫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하지  여기까지 살아온  '대단한 사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들이 감당하고 버티어 낸 진짜 날 것의 결혼에 대해 삼단논법으로 시비를 거는 순간 내가 지는 거다. 


각자의 결혼이 있었듯, 앞으로 있을 어느 누구의 결혼도, 나의 미혼도 날 것으로 살아내는 소중한 삶이라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기로~  그렇게 하는 게 맞다.(자신에게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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