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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Nov 26. 2021

답이 없어도 걸었다 (2)

친절함. 책방 주인의 품격


지난주. KBS 시사기획 창 <책방은 살아있다>를 시청하다가 30년 전 풀무질의 주인이었던 젊은 시절 은종복 씨의 모습이 화면에 보였다. 낡은 7,80년대 사진 속 인문사회과학 전문 책방 '풀무질'의 시간이 화면으로 주르르 지나가는데, 제주 풀무질에서 만났던 은종복가 떠올랐다. 자주 보면 안다고 착각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책이 만들어준 인연이 참 재밌다.


*잠깐의 인연*

 *(10월 15일) 올 가을 제주 당근밭 근처 돌담집으로 지어진 <풀무질>에서 처음으로 제주 풀무질에 주인 은종복 씨를 만났다. 이미 서울 풀무질에 대한 정보를 들은 터라 제주를 방문하게 되면 그곳은 꼭 가보자 맘먹고 있어서 그 만남이 반가웠다. 카운터 뒤 벽에 은씨가 인터뷰했던 빛바랜 신문의 한 면을 오려 붙여놨다. 사진 속 은씨는 실물로 봤을 때 은발 머리에 살이 없는 마른 체형얼굴에는 연신 싱글벙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대표의 실물을 본 적 없던 내가 물었다.  "저 신문 속 사진이 본인이신가요?"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대답했다. "아~  맞아요. 저 사진은 30년 전 젊은 저이고요. 지금 50대의 같은 사람 맞습니다." 놀라운 친화력을 지닌 책방 주인이었다. 카운터 바로 앞자리에 잘 나가는 도서들이 누워있었는데 그의 취향 같기도 하고 독자들의 취향 같기도 한 제목들이었다. 인문사회 전문 책방을 30년 넘게 운영해온 대표답게 이곳저곳 둘러보는 내 옆으로 와서 자신이 서평을 쓴 책을 보여줬다. 최근에 관심 갖기 시작한 장르였는데 추천을 받으니 꼭 읽고 싶은 맘이 생겼다.*


 

책방은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해야 한다.  ㅡ 세화오일장을 둘러보며 엄마의 갈옷 바지. 동생에게 보내는 귤 한 상자. 근처 엽서 가게에서 구입한 제주 풍경 엽서들. 모든 게 다 좋았지만 체력에 한계가 와서 집으로 갈 것인지, 풀무질을 갔다 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서.  대표에게 전화를 넣었다. 세화 도로에서 밭이 있는 안쪽으로 20~30분만 걸어오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를 받았다.

 하지만, 걸어서는 못 가겠고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풀무질을 안 간다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고 해서 책방에 전화해서 주소를 물었다. 그리고 제주 뚜벅이 여행자들이 하듯 배낭을 멘 채 기운 없이 길가에 서서 택시가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갔다.

책방 주인이 밝은 목소리로 위치와 거리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계획이고 뭐고 다 집어 쳤을 거다. 친절한 목소리는 피곤하고 배고픈 여행자에게 '그냥 가지 말고 찾아 와라'고 부르는 손짓이 다.

책방 주인이 아무나 되면 안 되는 걸 알게 된 날이었다. 친절은 당연하고 독서가라는 걸 풍기는 평범한 말. 서평과 책 모임에 대한 열의.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묻는 말에 대해서 정직한 마음을 담은 대답. 책방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유유자적함. 이런 면모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제주도에서 책방을 운영 하기 참 적합한 것 같다.


친절에 끌릴 때, 내가 좀 괜찮은 그러니까. 친절을 받을만한 가치(일종의 배려) 있는 인물이 된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작가가 운영하는 다른 책방에 갔던 다음 날 나는 진한 라테 한 잔에 몇 장 사진만 찍고 나왔다. 친절은 책에 쓴 글이 보여줄 수 없는 인격이라서 예쁜 말이나 장문의 글이 대신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친절에 대해서'는 나도 내놓을 게 없지만, 친절함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친절의 힘으로 끌어당기는 게 상당하다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찾을 때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내가 기대하지 않는 정도로 나에 대해 기대감이 없는 사람도 있을 테고.  기대했던 사람한테 크게 실망맛본 뒤 마음이 회복되지 않아 한참 동안 속앓이를 하기도 다.

사람과 사람 간에 일어나는 기대 심리 이상으로 원하는 책을 구하러 갈 때는 그 책방이 굳이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허름한 헌책방도 좋아하고 화려한 서점도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 사람이 있기를 기대하고 간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 풀무질 은종복씨가 당근밭 근처에 땅을 매입해서 책방과 집을 지었단다. 세화초등학교 옆 월세가 너무 올라서, 아예 전세금에 대출 끼고 땅을 샀는데 한 십년은 빚을 갚아야 한다며 괜히? 앓는 소릴 했다.

카운터 옆 비단 줄에 꽈리를 달아놓은 모양의  책갈피가 색깔별로 하나씩 있었는데, 아내가 한 땀 한 땀 수작업한 책갈피란다. 하루 하나 정도 만들 수 있는데... 사정을 모르고 이쁨에 눈먼(?) 손님이 책갈피를 대량으로 만드심 어떻겠냐 했다는 뒷담 같은 얘길 했다.

물론~  나도 개인 신상과 여행 목적주저리주저리.



풀무질 주인이 서평을 썼다고 추천해준 책
제주 풀무질    / 책방지기 은종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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