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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Dec 03. 2021

메디치家이야기-예수원-경주최부자

읽기의 연쇄반응


    나는 읽은 책을 정리하고 겨우 감상을 쓰는 정도의 일반인으로서 독서가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사람일 뿐, 읽기의 연쇄반응에 관해서 심오한 깊이까지 논할 수준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우연한 계기로 읽었던 책과 다른 책이 서로에게 말을 걸듯 질문하고 대답하는 경험을 통해 "읽기의 연쇄반응"에 대해 생각했고 그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다.


(제목 해제: '안다는 것'은 정보나 지식으로, 앎의 총량은 중요하지 않다. 즉 '티끌'이든 태산이든 앎은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관심 위'라 함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뜻이며, '싹튼다'라는 사물의 변화를 형용사적으로 표현했다. 다시 말해, 지식은 관심을 가지는 데서 출발하며, 계속 시대에 따라 바뀌듯 싹트고 피고 결실을 맺음을 암시하고 싶었다.)



 ° 도전했지만 시험이었던 다독.

1단계. 한 권의 책이 다.



한 번에 한 권씩 정독하던 습관에 도전장을 내밀고 빌렸던 책들.

 이십 년 전쯤. 갑자기 책을 읽어보겠다는 열정에 후배가 빌려준 책 열 권받아 들고 한참 동안 책 지옥에서 허우적댔다. 읽는 속도가 느리고 찬찬히 을 읽어 왔던 습관이 바뀌게 된 시기가 그때 생겼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장르. 분량. 저자들만의 화법. 편집이 모두 제각각인 책들을 받아 들고 페이지 수가 짧은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가, 내용이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옆에 쌓인 것들 중에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을 읽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다른 책이 끼어들기하면 책 읽기는 고속도로에서 시골길로, 골목길에서 다시 샛길로, 해변길인 듯하다가 어느새 산길을 걷는 등 책이 내어주는 길 위를 정처 없이 걸었다.


그렇게 두렁에서 메뚜기가 뛰듯  6개월 정도에 걸쳐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합독하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러 장르의 책을 읽어도 내용들이 헷갈리지 않았고 오히려 한꺼번에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는 이점도 발견했다. 하지만, 독서를 이어서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 다시 책을 잡고 읽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열 권 중 하나 정도는 기억에 남았는데 바로  《메디치 家 이야기》였다. 


유럽에 명성을 날렸던 이탈리아 기반의 메디치 가문을 배경으로 가문이 만들어낸 부와 권력이 약 300년 정도 이어졌고 탁월한 예술가와 건축, 조각가들을 배출했음에도 세상의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이 기억에 남았던 건 존경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질책하는 마음에서였다. 권력이 있는 곳에 독사과처럼 달리는 부패, 부패한 마음을 가진 힘의 무자비함 한 귀퉁이에서 권력자들의 들러리로 기생하듯 살아야 했던 시민들이 보였다. 그래서 서양 역사에 남을만한 인물들이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라는 말로서 세상을 향해 경고하고 사람의 속마음을 살피라는 메시지를 다시금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도 부(소유)에 대해 경고했다.


메디치 家 이야기 & 금전과도 죄악

ㅡㅡ

  부와 명성을 지닌 사람이 기억해야 할 금기사항이라면 '자신이 소유한 재물로 인해 죄를 짓지 않도록 조심하라.'라고 충고한다.  '금전과도 죄악'이란  물질에 너무 치중해서 세상에 죄를 범한다는 뜻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세상에 힘으로도 통제가 어려웠던 영역이 돈 관리였기에 법률로써 제한했던 것이다.

'금전과도 죄악'으로 가문에서 다섯 명이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메디치 가문은 돈을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부풀리면서 교황들을 배출했다.




강원도 태백 예수원의 봄 정경



°수도원의 호흡. 그 긴 여운

2단계. 수도원에서 책을 만나.



   도시에서 내쉬는 호흡은 짧고 분주한데 수도원에서의 호흡은 길고 여운이 오래간다. 어쩌면 수도원을 찾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긴 숨을 쉬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반면, 자연 속에 있는 수도원이 제공하는 한적함과 고요함 이면에는 새벽부터 드리는 예배부터 노동과 나눔과 행사들, 농사, 손님 접대 등 부지런히 활동하는 매일의 일상이 있다. 잠시 방문하는 손님들이 누리고 가는 깊은 안도감과 수도원이 품은 긴 여운은 공동체 가족들이 매일 살고 받은  같은 선물이다.


 2011년 겨울에 예수원의 평안과 쉼을 누리려고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5개월 정도를 눌러앉아 생활했다. 억새풀로 엮은 예수원 옛 건물 있는 도서실은 새 예배당 건물이 세워지기 전까지 예배처이자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던 오래된 장소였고, 이후 도서실로 용도 변경되어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경주 최부잣집에 대한 책을 발견해서 읽게 되었다.


세련되지 않은 낡은 책 표지 안쪽에 너덜너덜한 종이는 책장과 분리될 상태를 겨우 모면하고, 책 내용은 사실적인데 과장 없이 투박한 언어들로 담담하게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를 서술한 느낌을 받았다.  남들보다 더 가졌어도 나눔의 정신을 보여주었던 경주 최부잣집의 삶은 한국적 정서로 부와 명성에 대한 전형을 제시하는 듯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 돌아보고 서양식 교육 내용의 영향 아래서 서양식 세계관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봤던 경도된 나의 세계관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였다.





경주 교촌 최부자집 고택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3단계. 경주 교촌을 가다.



 예수원에서 하산하고 십 년 세월이 지났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서울 수도권부터 강화될 때에도 경주는 가장 초기 단계였다. 여름휴가 첫날 후배와 함께 12시간(오전 9시-저녁 9시) 경주 투어를 했다. 8월 초 기온이 가장 높았던 하루 동안 경주 황리단길과 첨성대, 박물관과 월지, 연꽃 연못을 종일 걸으면서도 정작 최부자집 고택은 가지 못해서 10월에 다시 한번 경주를 찾았다. 고택 주변으로는 행상들과 관광용 수레들과 음식점, 카페가 골목마다 가득 찼는데... 왠지 그 모습도 최씨 가문의 나눔과 상생의 가치를 다져놓은 삶의 단상 같았다.

《메디치 家 이야기》 독서 이후, 그 가문과 품격을 비교할 수 없는 최씨 가문의 이야기 속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게다가 메디치 가문보다 훨씬 긴 역사에 걸쳐 부와 명성과 됨됨이를 보여주었던 그들의 흔적을 경주 교촌에서 조금이나마 보고 싶어서 한 여름 경주 여행을 다녀온 이유였다.


자신의 신념을 혼자서만 지키기보다 가문이 이어가길 바라며 살아낸 그 마음이 존경스럽다. 개인적으로 최 씨 가문을 떠올릴 때면, 여러 다른 중에서도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이 가훈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가훈이 마음을 끄는 이유는  '사람으로서 최소한 누려야 할 것을 채워줘야 하겠다.'는  '인간애. 생명존중'에 대한 최부자가 품었던 마음이 느껴져서이다. 그가 속했던 공동체를 향한 착한 마음을 가훈 속에 새기고 삶으로 실천하려 했기에 더욱 빛나는가 보다.


  이십 여년에 걸쳐 한 권의 책과 수도원과 또 한 권의 책이 부와 명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읽기는 나를 역사 속 인물이 살았던 장소를 찾아가도록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당구장에서 큣대로 흰색공을 굴려 붉은공을 쳐서 점수를 올리듯 읽기는 내 마음을 툭 쳐서 깨우고 이야기로 엮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가보려고 최근에는 최부잣집 큰딸 최희 여사님(올해 96세)이 생활하는 모습을 영상과 자료를 통해 살펴보는 중이다.  



사방 100리?
우리의 옛 측량 단위 '몇 리'라는 게 익숙지 않아서 나는 늘 그 뜻을 찾는데. '사방 100리' 범위는 경주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감포, 북쪽으로는 포항, 서쪽으로는 영천, 남쪽으로는 밀양에 이르는 거리이다.



부자학적 '부자'의 정의~


부자학연구회 회장 한동철 교수의 말을 인용해서 최부잣집 소개를 좀 해보고 싶다. 부자학 학술 행사에 한 번 이상 참석한 만 명 이상의 참석자들을 통해 합의한 '진짜 부자의 정의'는 이렇다.


"부자학적인 부자란, 정신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물질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 그 일을 통해서 인정받는 가문을 의미한다."


한동철 교수는, 이 정의에 합당한 가문들 중 진짜 부와 명예를 간직한 최장수 집안은, 경주 최부잣집이 유일하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발렌베리 가문, 독일의 알디 가문, 미국의 록펠러 가문은 5대가 채 못 되는 역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경주 최부잣집은 10대를 넘도록 일관된 철학으로 거의 같은 방식으로 가문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만석꾼 경주 최부자 가암파 가문은 최진립의 손자 최의기로부터 12세손인 최준까지 12대에 걸쳐 약 300년간 지속됐다.



씨 집안의 6가지 가훈.. 육훈六训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벼슬을 목적으로 학문하지 마라)

2.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적정이익 이상 탐하지 마라)

3.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만석꾼으로 1천 석 가까이 과객의 식량으로 소비함)

4.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지나친 욕심을 경계했다)

5.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근검절약을 배우도록 했다)

6. 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공동체와 이웃이 있어야 나도 있다)




#부자학연구회 한동철 교수

#인내천(人乃天) 사상  

#정무공 최진립 장군 

#메디치 가문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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