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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Dec 07. 2021

 한 번은 넘어가야 해~

아이 한명을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요


시월 둘째를 출산한 서빈이 엄마의  몸조리를 도와주시려고 친정과 시댁 어머니 두 분이 2주간 번갈아 가면서 집안일을 살펴주시고 본가로 돌아가셨다.

'두 분 할머니께서 가셨다면 서빈이가 당분간 유치부에 나오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지난 주일에 서빈이가 아빠 손을 잡고 교회를 왔다.


야무지게 머리를 갈래로 묶고 공주 치마를 입고 온 서빈이를 알아본 사람들마다 잘 왔다며 손뼉 치고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셨다.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에 '반별 모임을 하게 되면 칭찬 많이 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치부 예배가 시작되어도 서빈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영아반 엄마들과 모임을 하려고 상을 펴는 중에도 서빈이는 오지 않았다.



 서빈이가 아빠랑 안 떨어지려고 해서 아빠 옆에 있나 봐요.


기어 다니던 아이가 걷게 되면 매일 조금씩 키가 자라는게 보인다. 키를 재기 위해 아이를 벽에 세우고 1밀리미터 눈금까지 치밀하게  확인하며 부모는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아이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인격이 자라는 모습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어느 날 무릎에 앉던 아이가 혼자 떨어져 앉고, 싫고 좋다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전달한다. 아이가 서툴수록 어른은 아이를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 독백 1



다시 돌아온 주일.

유치부실에는 삼삼오오 오늘 일정을 준비하거나 간식 통에 과자를 담는 교사들. 뛰어다니는 걸 멈추지 않는 아이들과 금방 도착해서 패딩을 벗고 놀이에 합류하는 아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 어수선한 풍경 안으로 아빠의 손에 이끌려 서빈이가 유치부실로 들어왔다. 낯을 가리는 게 아닐 텐데 아이는 아빠 손을 놓지 않으려고 자석처럼 달라붙어 있다. 주위에 있던 교사들이 아빠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 아빠가 서빈이의 손을 떼어내며 벌어진 틈 사이로 원 선생님이 잽싸게 서빈이를 낚아채고서 아빠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춤추듯 이동했다.


춤추듯 움직이면서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는 원샘.
선생님은 지금 춤을 추고 있을 수도...?

 원샘과 서빈이가 한몸으로 흔들리면서 아이의 울음소리는 강약 중강약으로 높아졌다 낮아지기반복했다.






'원샘은 분명 춤추고 있어!' 긴 치마 위에 레이스 달린 앞치마까지 걸친 옷차림도 딱 어울리고 말이지. 그녀는 서빈이의 홀로서기를 도와주는 디딤돌이 되어줄 거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 이유를 고집 피우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을거다. 가끔 그녀가 말했듯 "나와 다른 새로운 인격"으로 자기 아이들 셋을 양육하는 겸손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녀가 아이를 안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작들이 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아름답고 경이로와 보이는걸까?... 독백 2


서빈이는 정말 힘껏 울어 젖혔다. 얼마나 울었던지 목에서 쉰 소리가 다. 울음이 그칠 조짐이 보이지 않자 몇몇 아이들이 서빈이 곁으로 다가갔다. 34개월 서빈이 단짝 친구인 원샘 막내딸 인아는 손에 쥐고 놀던 장난감을 친구에게 건네주려고 발을 세웠다. 그리고 쫑알쫑알 뭐라고 인아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빈이의 모든 신경은 사라진 아빠의 행방에 꽂혀 있으니 인아의 위로가 들릴 턱이 없었다.


원샘이 작심한 듯 의지를 담아서 나에게 말했다. "어쩔수 없어요~ 한 번은 떨어져야 하거든요~"  그녀는 씨름판판승으로 끝내려는 게 분명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서두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싸인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서빈아, 넌 할 수 있어. 오늘 한판승으로 끝낼 수 있단 말이다.'

서빈이의 34개월 인생에서 부모와 떨어져서 혼자 있어야 할 날이 하필 오늘이야.






'원샘에게는 13척의 배가 있던지 아니면, 전통에 화살이 많던지' 서빈이도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은데? 하지만, 아이는 그물 안에 들어왔고 끝나려면 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데.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가 궁금해졌다. 이걸 기싸움이라고 부르기엔 체급 차이가 너무 다. 그러니 이 싸움은 누가 오래 버티느냐(인내)로 판가름이 나지 않겠나 ...독백 3


  "그래, 엄마한테 전화해보자~"며 두 분 선생님이 서로 한명은 이쪽에, 다른 한명은 저쪽에 떨어져서 서빈이의 관심을 끄는 상황극을 두번 째 카드로 꺼냈다. 서빈이는 총명한 아이다. 교사들이 한 팀으로 작전 수행 중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휴대폰을 꺼내 "어머니~ 서빈이 어머니~"를 부르고, 교실 저편에서 다른 선생님이 엄마 대역으로 "아, 네~ 어쩌고 저쩌고~" 대꾸하는 상황극이 정말 웃기고도 살짝 슬펐다. 서빈이는 속고 있는건가? 믿어주고 있는건가?  


음악이 나오고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움직여 표식도 없는 각자 위치로 이동해 율동하거나 드러눕거나 아니면 친구랑 장난치거나 한다. (완전 돗대기 시장이 따로 없어::) 아이들의 행동이 용납되는 모습이지만 그들의 행동이 선하기 때문에 용납되는건 아니다. 일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봄부터 변함없이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 분명 있는데 교사들은 마음에 참을 인자를 새기면서 수행하고 있는지 누가 알까?!

그리고 교사들이 이 상황에서 믿는건 '아이들이 눈으로 보고 있고, 귀로 듣고 있다'는 사실.


아이들 마음에 하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이 쌓이고 있을까? 아이들은 구강을 움직여 소리를 뱉어내기까지 무한대의 보기와 듣기를 연습한다. 한번 말이 터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 동안 쌓이는 타인의 말 속 감정과 존중, 질책과 상벌, 행복과 실망, 내가 아닌 타인의 있음(being)을 거치면서 비로소 빚어져 자기 자신이 되는 한 인격체로 나타난다.


나는 반 아이를 챙기느라 서빈이를 잠깐 잊고 있다가, 옆줄 저편에 청년 교사의 무릎 위에 앉아서 울음을 마치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서빈이의 단짝 친구 인아는 친언니 옆자리 대신 서빈이 옆에서 땀이 나게 율동에 전심이었다.

다시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서빈이는(사실, 서빈이는 율동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다.) 웃으면서 율동을 따라 하고 있었다. 반모임 시간에 얌전히 원샘 옆에 앉아서 지난번에 받지 못했던 선물을 받았고, 엄마들의 칭찬도 듬뿍 받은 서빈이가 (아직 말이 서투니까) 활짝 미소로 화답해왔다. 반모임이 끝날 즈음엔 미끄럼틀로 달려가 맘껏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서빈이. 정말 한판승으로 끝냈구나!


굳이 서빈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한 번은 넘어가야 하는 것"

원샘과 서빈이, 그리고 한 교실에 있었던 모두가 오늘 한 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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