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책리뷰

케네스 그레이엄(1859~1932)

by 북청로 로데



9쪽 삽화


봄날의 신성한 기운은 불만과 갈망을 가득 품고, 두더지의 어둡고 초라하고 작은 집 속으로까지 스며들었다.(10)



[강둑]

설치류인 두더지가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솔을 패대기치고 땅 위로 올라갔다. 불만과 갈망이라는 양가감정에 낚였는지 정신없이 흙을 파고 긁고 쑤시고 땅 위로 올라가 초원 위를 걸었고. 초원 위로 펼쳐진 모든 것이 행복하고 활기차 보여 땅 속 어둡고 침침한 자신의 작은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두더지는 정확하게 냄새로 집을 찾는다. 그의 아담한 집은 미완성이고 준비되지 않은 자신의 어둡고 초라한 모습의 일면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매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사느니 잠깐이나마 낯선 곳에서 길을 찾다 돌아오는 게 행복한 기분을 더 느낄 때가 있어서다. 무엇보다 낯선 곳을 향해 홀로 움직이면 나에 대한 편견과 왜소함의 알을 깨게 된다.

네비게이션으로 지명을 검색하면 원하는 곳을 거의 정확하게 위치를 찾아주는 편리함 때문에 일일이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나치는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은 나의 행동. 말투. 표정으로 속내를 들키는 익숙함과 얼마나 다른지. 존재감은 인정받으면서도 어느 때든 나를 숨길 수 있는 장소가 생활하는 주변에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다. 그곳이 도서관. 찻집. 쇼핑몰. 옷가게. 산책로 벤치 어디든 내 기분을 흘리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매일매일 이벤트를 기대하면서 생활하는 게 아니라 친구를 찾아가는 맘으로 나에게로 들어갈 장소라면 족하다.



*사귐. 친구 등등

낯선 곳에서도 혼자가 아니길 바라는 여행자. 땅 위와 아래 다른 공간에서 생활해온 두더지가 강물의 재잘대는 소리와 이야기에 마음을 쏙 뺏겼던 강변에서 물쥐를 만난다. 지상에서 만난 첫 친구 관계는 물쥐의 보트에 두더지가 올라타고 강 주위를 빈둥거리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 세상에서 유일한 거. 보트를 타고 그냥 빈둥거리는 것... 그냥 빈둥..." 그 빈둥거림을 삶의 가치로 삼고 자신의 생활 근거지 강변을 돌아다니는 물쥐를 따라 두더지는 주저하지 않고 따라나선다.


여행자의 친구는 아직 친구로 맺어지지 않은 채 동행한다. 이들에게는 공통의 과거는 없지만 출발할 수 있는 지금이 있다. 산을 오를 때와 내려올 때 사람이 바뀌기도 하고, 버스에서 동석했다가도 하차한 후엔 다시 타인이다. 가끔은 우연히 같은 곳을 가던 사람들이 각자의 일정을 조율하고 하루 이틀 함께 여행하기도 한다. 오랜 친구 관계가 어색한 기분을 넘어서는 만남을 이어가면서 서로의 익숙함에 물들듯 여행에서 동행은 익숙해지는 시간이다.



20쪽 삽화
아, 저기는 '원시림'이야. 우리 강둑 동물들은 저곳에는 잘 안 가(21)



[원시림]


*두 개의 세계: 강변과 원시림

강변은 하나의 세계이며 원시림과는 구별된 사회이다. 두더지의 세상이 땅 아래에 국한되었다면 강변은 여러 동물들이 생활하는 넓고 복잡하며 다양한 세계이다. 강변 너머에 원시림은 불안하고 긴장되는 곳이긴 하지만 그곳에 우리 친구 오소리 아저씨가 살고 있다. 족제비, 담비, 여우 같은 동물들과는 마주치면 가벼운 이야기를 나눌 정도이다. 그리고 원시림 너머는 '광대한 세계'지만 제정신이 있는 동물이라면 그곳은 우리와 상관없는 곳이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곳이라고 물쥐가 알려준다.

처음부터 사람이 살 수 없던 동네는 없었다. 동네 마을이란 사람들이 살았다는 걸 지칭하는 단어이다. 오소리 아저씨는 그곳에 머물러 사는 것을 원했을 뿐 장소를 호불호로 나누지 않았다. 동네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사람이 동네를 만드는 걸까? 사람은 내용이고 동네는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하면, 그릇을 만드는 것도 깨트리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물쥐가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면 원시림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질이 안 좋다는 편견이 묻어 있다. 그런 곳에 친구인 오소리 아저씨가 계신데 그가 원시림을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다른 설명은 없다. 현재 강변과 원시림 간에는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왕래하기보다 경계할 지역으로 분할되었다는 인상이다.




*신비로움으로 이끄는 존재

"목신"이 뿜어내는 분위기를 '신비롭다' 라 말함으로써, 신비한 영역에 접근을 어렵게 하는 두려운 영적 기운을 불어넣는다.

특히 소리와 색채, 공기 속에 흐르는 기운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감각적 동물들이 목신의 존재를 변형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긍함으로서 지켜준다.


실종된 아이를 찾아다니던 장면에서, 어린 수달을 수색하던 물쥐와 두더지가 아이를 발견했을 때 목신의 모습에서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


{"수염에 뒤덮인 입에서 양쪽 가장자리로 가늘게 미소가 흘렀다. 두더지는 널찍한 가슴을 가로지르는 사나이의 팔에서 근육이 잔물결 치는 걸 보았다. 그리고 위아래로 벌린 입술에서 막 떼어 낸 팬파이프를 들고 있는 길고 부드러운 손을 보았다. 뒤이어 두더지는 당당하고 편안한 자세로 풀밭에 놓여 있는 털북숭이 다리의 멋진 곡선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두 발굽 사이에 누워 더없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깊이 잠든 아이를 보았다. 여느 아이들처럼 작고 둥글고 포동포동한 어린 수달이었다."}

(168下~169上 인용)




○ 여기에 나타난 두 개의 세계로 보이는 강변과 원시림에서 생활하는 구성원을 비교해보자.


○ 강변에는 다수의 정의롭고 선한 기질의 동물들과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망나니 같은 두꺼비(뒤에 등장)가 있다.

반면, 원시림에는 다수의 나쁜 놈들과 정의로운 오소리 아저씨가 살고 있다.


○어느 사회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를 따지면 다수의 정의로운 동물들이 모여 사는 강변일 것으로 생각한다.


○ 그렇다 해도 원시림이 있어야 하는 이유 선한 존재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어서이다.

반면, 강변은 경찰국가로 범죄자의 처벌 수위가 "경찰에게 건방진 죄"가 15년 형이고 "절도죄"는 12개월로 비교도 안 될 만큼 세다. 법률로 동물들의 질서가 통제되고 있는 세계이다.


○ 두 세계의 법적 시스템과 정의 수준은 확연하게 다르다.





강변에 사는 사고뭉치 두꺼비
감히 자기보다 높은 계층한테 그따위로 말하다니!_ 내가 바로 그 유명하고 훌륭하시고 고귀하신 두꺼비님이시다. (238)




[두꺼비의 방황과 귀가]


* 동물은 소리와 냄새를 감지하는 걸로 그 능력이 평가된다.

수달은 어린 수달이 며칠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는 사건을 통해 젖을 먹이는 포유류인 특징을 보여준다. 물쥐와 오소리는 설치류이고 그들의 친구 두꺼비는 양서이다. 두꺼비는 어릴 때는 아가미로 수중호흡을 하며. 성장하면 폐와 피부호흡을 한다. 수중과 육지 두 곳에서 생활하는 양서류의 특징을 감정 변화가 심해 어디로 튈지 모를 즉흥적인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동양에서 부를 불러올 목적으로 금두꺼비를 형상화하여 가정에 두는 풍습과 연관해서 두꺼비를 '상당한 부자'로 설정한 것이 재밌다. 작가는 강 주위에 자라는 나무와 꽃들을 묘사하거나 동물들의 행동과 사건들을 통해 숲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했음을 보여준다.


두꺼비의 천부적 재능이랄까? 그 능력은 새 물건을 발견할 때 솟구치는 무모한 열정과 절도죄로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한 뒤 도망자 신세인데도 거드름을 피우거나 얍삽하게 잔머릴 굴린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친구들을 속이고 도망치는 두꺼비를 보면 연기자의 재능도 타고났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꿈을 찾아가는 친구들 각각의 여정에서 비록 무모하긴 하지만 두꺼비는 주저하지 않고 과단성 있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진취적인 동물의 면모를 보여준다.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에서만 평가하면 가장 월등한 동물이 두꺼비이다.

결말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변화의 의미는 동물적이라는 생태적 기질이 고착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고, 그런 점에서 인격적(혹은 동물적) 관계성이 변화를 유도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동하는데 공감할 수 있다.


두꺼비가 그렇게 다양한 부정적 기질을 타고난 동물인데도 그의 친구들은 한결같이 그를 염려하고 도움이 되어줄 방법을 고심한다. 그들 친구관계가 위기로 치달았던 순간에도 내재적 우정은 변함없이 지켜지는 모습에서 친구라는 정의에 대해 한번쯤 토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친구를 가졌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도 그런 친구 중 한 사람이긴 한가?" 하고 검지 손가락이 나를 지목한다.

젊은 시절 관계의 중심에 내가 있는 듯 착각의 늪에서 허우적대다 곁을 떠난 친구들이 부지기수였고 줄어드는 친구 숫자에 연연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 두더지는 자신이 경작지와 산울타리의 동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 그리고 자신이 잘 다니는 길들이 있으며, 일평생 이어질 나름의 모험을 간직하고 있는 이 즐거운 곳을 떠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03)



[두더지. 집을 떠올리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있는 자기 결정

자기 결정권은 책임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봄맞이 대청소를 하던 두더지가 불만과 갈망의 기운에 이끌려서 집을 떠나 낯선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물쥐를 만난 건 우연이라 해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던 두더지였다. 두 해가 지나도록 땅 속 집으로 돌아가지 않던 그가 집을 떠올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원시림에서 길을 잃고 폭설을 피해 오소리 아저씨의 집을 방문하고 겪게 된 일 때문이다.


두더지도 동물적 충동에 의해 여행을 시작했지만 충동적인 기질의 동물은 아니다. 그는 따뜻하고 조심스럽고 호기심이 발동하면 답을 찾아 나선다. 결국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곳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집이라는 현실이다.


모든 신호들이 뜻하는 집으로 향하라는 손짓이 있어도 떠나온 뒤로 찾지 않은 옛날 집. 두더지가 기억하는 모든 향취와 인상과 언어들 그 모두가 응축되어 있는 곳. 두더지는 자기 집 냄새를 맡았다! 고 말하는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를 따라 귀가한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호소하는 두더지처럼 여행자는 다시 집으로 간다. 그렇게 집을 떠나고 돌아가는 모든 일이 여행이 된다.


여행을 하던 두더지는 자기 집과 주변 관계 안에서 일평생 이어질 일들이 모험이요 여행들이 될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절박하게 집을 찾는다.

일의 경중과 관계없이 무조건 괜찮은 건 없다. 아무리 큰 사건도 경우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기도 하고, 사소한 일이 큰 화가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흔히 운명의 장난이라고도 하는 그런 일. 두더지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되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는 걸 우연이라 해도 말이다.




224쪽 삽화
다른 여행자를 따라 남쪽으로 가려고 해. 일단 바다로 가서 배를 타고, 나를 부르는 해변을 찾아갈 거야!(225)



[물쥐의 마음이 흔들리다]

아직 겨울이 오지도 않았는데 이삿짐을 싸는 들쥐들과 새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불만을 토로하는 물쥐가 들쥐에게 말한다.


"도대체 지금 무얼 하는 거니? 겨울을 보낼 곳을 신경 쓰기엔 아직 너무 이르잖아!" (205쪽 인용)



육지 꽃 버들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제비들이 물쥐에게 말한다.


"지금 떠나려는 줄 알고 그러나 본데. 그렇지 않아. 계획을 세우며 준비할 뿐이야. 그냥 의논하는 거라니까. 올해는 어떤 길을 골라서 날아갈 건지. 어디서 머무를 건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이야. 이러는 것도 꽤 재미있어!" (207쪽 인용)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없고 줄곧 불안한 물쥐는 이삿짐을 싸는 들쥐들과 제비들에게 불만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흔든 결정적 동물은 바닷쥐의 등장이었다. 오랜 여행에 지쳐 보이는 야윈 몸. 눈가에 잔주름. 털실로 짠 빛바랜 푸른색 셔츠에 얼룩진 바지를 입고 푸른색 손수건에 싼 초라한 소지품이 고단했던 여행자의 삶을 대변했다.


바다쥐의 항해 무용담에 혼이 쏙 빠진 물쥐는 사실 강변을 떠날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는 동물이다. 늦바람이 든 건지? 제비들이 날아가려던 남쪽을 향한 갈망이 물쥐를 흔들었다. 친구들에게 쏟아낸 불만을 주워 담지도 않았는데... 그곳으로 나도 가볼 수 있지 뭐?! 라는 소리를 들었던건가.


두더지가 겨우 물쥐를 진정시키기 위해 연필과 종이를 들고 와서 얘기한다.


"시를 써 본 지 꽤 오래잖아. 오늘 밤에 한번 써 봐. 너무 골똘히 생각만 하지 말고. 무언가를 쓰다 보면 한결 기분이 나아질 거야. 시를 쓰면 딱 좋을 것 같아."



두더지는, 시를 쓰는 동안 물쥐가 회복되는 것을 알아챈다. 작가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작가의 아들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동물이 물쥐라고 한다. 정신줄을 놓고 자꾸 여행을 떠나려했던 물쥐가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길 바랐던 마음은 아픈 아들에 대한 것이기도 했을거다. 정신줄을 놓았던 동물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글쓰기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차분히 급하지 않아도 되니 정상적으로 예전처럼 건강하기만 바랐던 아버지의 마음 말이다.






이제 글을 끝맺으려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동물들은 떠날 때와 같은 동물이 아니었다.

강변과 원시림으로 분열되었던 두 세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실마리는 초대였다.

정중하게 인격적으로 손님으로 와달라는 요청에 원시림에 살던 악당 같은 동물들이 초대에 응한다.

그건 작은 시작이었지만 시작도 않고 알아지는 게 어디 있겠나.

두꺼비가 겸손한 동물로 변한 건 기적 같은 사건이어도, 그 시작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물들의 삶이 전설이 되어 강물처럼 흐른다.





*이 책은 1908년에 출간되었으니 백 년이 넘은 소설이다. 동물들의 생활을 통해 산업혁명 이후 파괴되었던 강변과 원시림에 대한 향수. 동물들의 본능에 따라 이동하는 계절의 주기에서 자연이 보호되길 바란다. 그리고 결국엔 동물들이 돌아갈 곳은 집이라는 사실에 그들의 보금자리가 떠나왔던 옛 집에 남아있기를~


작년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고도 다 나누지 못했던 내용을 다시 읽고 남은 숙제를 끝내게 되어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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