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인문학이 되는 길'

이재형 작가, 《프랑스를 걷다》 북리뷰

by 북청로 로데

일주일 전. 집으로 오는 시장 길에서 사과 만 원어치 한 봉지를 구입했다. 나는 저녁에도 입이 궁금해지면 과일을 먹지만, 아침에 사과 하나를 껍질째 먹으면 더 기분이 좋다. 껍질째 먹는 과일은 끝까지 삼키는 동안 잘게 씹히는 꺼끌꺼끌한 작은 조각까지도 내 몸에 유익한 거라 토닥이며 삼켜야 한다. 사과는 달콤한 맛 하나로만 맛을 내지 않는다. 맛으로는 새콤함과 달콤함이 섞여 있어야 하고, 식감은 이빨로 베어물었을 때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고 적당히 아삭 소릴 내며 덩어리에서 갈라져 나와야 한다. 껍질이 두꺼우면 오래 씹어야 하니 태양 아래서 적당히 달궈진 사과 라야 얇은 껍질에 즐거운 맛을 담아낼 수 있다. 그래도 무언가 통째로 삼키고 받아들이는 게 간단한 과정은 아니다.




오늘 얘기할 이재형 작가는 그의 책 《프랑스를 걷다》 한 권에 다양한 맛을 담아내는데 예술 작품과 시. 소설. 정치. 문화. 역사를 이동하는 길 위에서와 먼 풍경 속 언덕. 마을. 축제. 건물과 다리에서, 그리고 순례길을 걷는 보행자들 숙소와 음식. 옷차림 지나가는 바람과 정지된 햇살과 빗줄기를 다 동원했다. 통째로 읽는 여정에 각양각색의 소소하고 이국적인 감미료들이 가미되어 있어 이 한 권의 책으로도 다채로운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여러 차례 걸었다고 하는 그의 순례길은 단절된 역사를 연결하는데, 이어진 역사에서 인간에 대한 철학적 물음의 답을 얻고 버리기를 지난하고 억척스런 걷기를 몸으로 실행하고 있는 듯하다. 나 자신을 찾는 도구로 '길'이 펼쳐져 있고, 어설프고 작은 조각이라도 맘에 챙길 만큼 소중하다는 걸 알게되었다.



지도는 프랑스 르퓌에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사선 거리의 순례길에 이르는 동안 거쳐가는 지역 이름과 특징으로 주제를 정한 내용이다. 이것 만으로 길과 풍경이 확 와닿게 그려지진 않지만, 이 길을 다섯 차례 걸었던 작가의 소감을 길 위에 다양한 인문학을 접목하여 이야기를 풍부하게 장식하고 있다. 작가가 지나갔던 각 지역이 발화점이 되었던 역사와 인물을 알아가는 맛을 보며 순례길을 따라가 보았다.


개인적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순례자가 거쳐간 크고 작은 마을들과 얽힌 이야기가 곧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당창 선언 때문이다. 필요한 물건은 가능한 걷기 전에 자신의 짐꾸러미에 담아야 한다. 배낭과 지도와 스틱이 있어야 하고, 물건들보다 더 중요한 건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건강한 몸과 정신력을 장전한 상태라야 하며, 길을 잃거나 날씨 때문에 두려움이 몰려올 경우의 수에 길 위에 자신을 던질 용감한 모험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의 순례길 위에는 이십 권 이상의 도서들과 수십여 편의 시, 그리고 역사와 어원들이 발생했던 근원지를 알려주는 표지석의 역할까지 더해준다. 덕분에 나는 저자가 소개하고 인용한 책 가운데 이미 두 권을 읽기 시작했다.


혼자 시작한 작가의 순례길이 걷는 사람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 한 인격체를 풍부하게 다듬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의 걸음이 개인에서 다수에게로 뚜벅뚜벅 외연을 확장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을수록 재밌고 가고 싶으며 글로 기록한 마을들과 사람들의 삶은 풍부하고 깊으며 아름답다. 굳이 걷기 위한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 역시 떠날 때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하게 정해야지 길을 잃지 않고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걷기를 마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면 언젠가는 알게 될 같다. 다시 걸어야 하는 길이 있고, 배움은 교실보다 길 위에 이어져 있음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도 이 순례길을 걸어보고 싶다.' 마음이 움직였다. '이제부터라도 몸을 단련하자. 불어는?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등등 내일이라도 여행을 떠날 듯 빼고 더할 소지품을 체크하며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해봤다. 독서로 이만한 동기 부여를 받을 줄이야. 마지막 문장으로 소감을 대신해도 충분할 것 같다.


순례자들은 연대, 나눔, 공존, 소통, 배려 등의 가치들을 배우거나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태아날 것이다. 고래가 배 속에 가두었다가 뱉어낸 요나처럼, (중략)
순례자는 또 다른 나, 새로운 내가 되어 더 넓은 곳, 더 높은 세계로 걸어 나갈 것이다. 또한 순례자는 자신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도 살린다. (중략)

순례란 '새롭게 태어남'이다.
(342쪽)




글. 사진 이재형

문예출판사 2020년 7월 7일


저자가 소개하는 책이 튀어나오는 구간마다 지역적 특색들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곳과 책이 근원적으로 동일 뿌리에서 갈라진 한 몸 같은 인상마저 들어서 진행 과정이 유연해진다.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순례길에 인용했던 책으로 건너가서 길을 잇고 싶게 만든다.



P.S

찾아서 읽고 싶은 책들을 나열하자면,

《걷기 예찬》 다비드 르 브로통.

《무진기행》 김승옥.

《세상의 용도》 니콜라 부비에, 이재형 옮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피에르. 상소

《무레 신부의 과오》 에밀 졸라

《우리가 물이 되어》 시. 강은교

《공간의 시학》 바슐라르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이재형 옮김.

《슬로라이프》 쓰지 신이치, 김향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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