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C.S루이스-
어제보다 따뜻한 봄 날씨로 가벼운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명명하고 나서 부모님, 스승, 지인들까지 안부를 묻고 찾아뵙거나 선물을 준비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입니다. 오월? 몰빵 달? 그렇다면 이번 달은 정말 사람도 바쁘고 오월도 과로하지 않을까 싶네요.
네, 저는 대한민국(South Korea) 남동쪽에 위치한 울산시 남구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부작 로데가 있다’(*브런치에서 쓰고 있는 필명으로 짧게 ‘로데’)라고 합니다. 아! ‘브런치’는 통상의 아침과 점심식사 중간의 늦은 오전 시간대에 먹는, 흔히 이곳 한국에서 ‘아점’(아침과 점심을 줄임말)이라고 부르는 식사의 영어 표현이지만, 위에 언급한 ‘브런치(brunch)'는 사실 사전에 없는 인터넷 사이트 계정입니다. 문학 작품이나 사진, 그림, 음악을 가미해서 창작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브런치라는 공간에 글을 쓰는 것입니다. 저도 틈 날 때마다 글을 올리는 중입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2002년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부모님이 계신 울산으로 내려와서 한 달가량 쉬면서 <나니아 연대기> 일곱 권을 대출해서 읽었어요. 다 읽는데 하루 한 권씩 일주일이 걸렸는데 내용이 당시 제 수준이랑 딱 맞기도 했고, 무엇보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물론, 작가님이 출간한 많은 책들이 제겐 흥미로운 내용들이지만 읽을 때마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재차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글을 읽은 이후의 저를 돌아보면 생각하는 힘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략 개인적으로 네 번 정도 읽었는데, 최근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선정해서 다양한 의견과 질문을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 가장 좋았습니다. 31통의 편지를 세 번 나눠서 일주일에 한 번 3주 동안 읽으면서, 회원들이 저한테 책 선정을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셨는데요. 제가 받은 칭찬은 오롯이 작가님의 탁월한 필력 덕분입니다.
‘루이스가 루이스다’라는 명제를 만들어 작가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은 뿐입니다. 사설이 길어졌는데 오늘 제가 쓰고 싶은 글은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에 관한 소감입니다.
‘스크루테이프’ 잘 아시죠? 작가님이 가공한 인물. 아니, 악마 말입니다. 작가님이 스크루테이프가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서른한 통의 편지 형식의 글을 쓰셨잖아요. 물론, 부록 말미에 작가님은 다시는 편지 형식의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하셨지만...
제가 이 책《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처음 읽었던 해가 2004년쯤이었고, 이후에 짬이 날 때마다 한 번씩 들춰봤는데.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저의 모습이긴 한데... 내용이 너무 철학적이고 이성적이고, 작가님의 풍부한 지식으로 인용하시는 문장들이 저한테는 얼마나 생소한지 정보를 찾느라 쏟은 시간이 만만찮게 길었습니다. 솔직한 말로 두통을 유발했던 책이었습니다.
저는 삼촌과 조카가 환자(*사람을 호칭)를 어떡하면 자신들에게 묶어둘 수 있는지 별의별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이야기를 제 입장에서는 거꾸로 생각하고 제 생활에 적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읽어야 했으니 두통이 날만 했지요. 최근 들어서 루이스 작가님의 글 쓰는 법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쉬워진 점은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그러고 보니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셨더군요. 이 책이 영국 ‘가디언’지(The Guardian)에 게재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와중이었으니 ‘전쟁’이라는 주제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 중에 있는데...*네이버 지식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러시아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고 지상군을 투입하는 등 전면 침공을감행한 사태를 말한다.’(*저는 공습! 감행!이라는 자극적인 단어 선정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워낙 정보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서 보고 생각하는 건 사치가 된 것 같고, 다만 얼마나 많은 양의 정보를 알았냐, 들었냐로 유무식이 판가름 나는 듯하니... 시대의 비극은 그 끝이 빠를수록 사회가 건강하겠지요.)
네이버 지식이 예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정도의 정보만을 전달하는 곳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어서 그냥 참고용으로 읽고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전쟁을 미국과 유럽 일변도로 바라보는 뉴스 기사들이 넘쳐나는 언론 환경에서 진실을 말하는 기사를 읽으려면 독자 자신이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저는 개인적으로 전쟁의 역사에 대한 ‘썰’ 말고 ‘팩트’에 근거한 책을 몇 권 읽고 있습니다. 이번 우-러 전쟁으로 세계화는 끝났다!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미 1,2차 세계 대전을 치렀던 유럽의 나라들과 미국, 러시아 등이 보관하고 있었던 당시의 기록들을 정리한 책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꽤 흥미롭고.... 역사에 대한 무관심으로는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무관심은 무지와 거의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에 저 스스로를 멍청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음을 늦었지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님 시대에 일반인들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었나요? 제가 마지막 역사 공부를 의무적으로 했던 게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무조건 암기식으로 연도, 왕들의 이름, 지명, 유물명을 달달달 외우라고 학생들을 볶았던 선생님의 모습만 아련하게 떠오르네요. 정말 역사를 지긋지긋하게 느끼도록 학생들을 가르쳤던 교육부와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참회하길 바랄 뿐입니다.
15th. 열다섯 번째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가 하려는 일은 인간을 영원과 현재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신 데 대해서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악마는 사람이 과거에 파묻혀 살도록 유인한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과거의 경험은 한계가 있으니까 미래에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에는 희망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사람을 현재가 아닌 미지의 것에 마음을 두게 하든지, 비현실적인 허상을 생각하게 하는 게 좋겠다.’고 착각하고 살게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작가님이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가정한 상황이 현실이 되었을 때, 스크루테이프는 자신의 양팔 저울에 희망과 두려움을 올려놓고서 사람에게 두 가지 심리상태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는 게 힘들 것이란 판단을 내리게 해서, 결국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마음을 두고 현재를 허비하면서 살게끔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역으로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이 미래를 생각하되, 내일 실천할 정의나 자비의 행동을 위해 '지금' 필요한 만큼만 생각하길 바라실 것입니다.*작가님, 엊저녁에 비가 내렸어요. 봄비가 시원하게 양껏 내려야 올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이 행복하게 밭을 기경할 건데 말입니다.
13th. 루이스 작가님, 책의 순서와 상관없이 제 손이 가는 대로 편지를 쓰는 상황이라서 이해해주세요. 열세 번째 편지에서 ‘개인적 취향’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에 저도 십분 공감합니다. 스크루테이프 삼촌이 조카 웜우드에게 '개인적 취향'을 마치 '죄'를 다루듯 하라는 지시를 내리는데, 사실 '개인적 취향'은 죄라고 할 수 없고, 오히려 특정 형용사를 앞에 붙여서 '중요한, 적합한, 제일 좋은' 등등으로 마치 형용사가 정확하게 수치로 측정되기라도 하듯 애매모호하게 해서 사람들이 기준점을 정하지 못하도록 할 뿐이죠.
스크루테이프가 원하는 건 세상의 기준과 관습과 유행에 따르게 하는 방향으로 사람을 유도하는 데 혈안이 되어서, 세상의 기준과 관습이 마치 절대선이나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사람들을 그 파도에 이리저리 휘청대는 불안정한 삶으로 몰아넣는데 그건 결국, 악마의 소원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저를 돌아보면, 휘청거리는 정도는 아니어도 땅 위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마음이 늘 불안했어요. 2020년 3월부터 2022년 5월 현재까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전 지구적으로 죽음과 경제 위기, 전쟁의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을지 고민을 좀 길게 했던 것 같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지난 한 주간 몸살감기를 앓으면서, 긴 잠을 잘 수 있어서였는지 저 자신에 대한 문제도 발견했고,오늘 하루 제가 할 수 있을 정도까지 힘을 내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락 지었습니다.
......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입니다."1975년 4월 19일 서울 중구 젠센 기념관 연단에서 당시 51세였던 정치인 고 김대중은 시국강연회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찾은 영상에서 그가 미국을 떠나기 전 날, 강당에 모인 동포들 앞에서 정치인 김대중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연설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목에서 울음이 차오르더군요. 귀로만 들었던 그분의 강력한 메시지를 영상으로 보면서 '말은 아무나 뱉어낼 수 있다지만, 말에 따라 행동하는 건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 없이는 힘들다' 그런데, 언제까지 힘들다는 타령만 하고 나자빠져 있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지요.
바로 작가님의 책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13번째 편지 후반부에 스크루테이프가 인간의 약한 고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내용에서 말입니다.
스크루테이프의 의도는, 사람이 어떤 것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막는 일임을 정확하게 서술하셨더군요. 악마가 작가님의 통찰력에 등골이 써늘했을 겁니다. 스크루테이프는 알았던 것이죠. '아무리 생각을 많이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건 문제가 안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악마가 기대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머릿속에서만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뒹굴게 만들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지요. 작가님이 전달하고 싶었던 의미를 제가 잘 이해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그래서 스크루테이프의 속셈을 문장으로 표현해봤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 아니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두거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그것이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 게 없다. 느끼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말은 고 김대중 님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입니다."라는 외침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브런치 앱 사이트 글에서 최근 추동받은 글이 있어서어떤 식으로 동참할지 고심 중입니다.
-- 이 책이 서른한 통의 편지로 구성되었고, 각 편지 분량은 A4 두 세장 정도로 브런치 먹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게 쓰신 데 다행입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듯이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두통에 시달렸는지... 그 두통도 제가 자원해서 얻은 거라 작가님께 짜증을 내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한 가지만 더 얘기하고 편지를 끝맺을까 합니다.
12th. 편지 후반부에 작가님이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것이 쌓여 인간을 ‘빛’으로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으로 조금씩 조금씩 끌어올 수 있으면 그만이야. 만약 도박으로 그런 효과만 낼 수 있다면 살인을 유도하는 것보다 못할 게 없다.”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동물에게는 없는 ‘양심’을 가진 존재인 사람이 동물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장치이자 경계선이 바로 ‘양심’이지요. 인간으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자를 향해 ‘양심에 화인 맞았다.’라고 지적하기도 하잖아요. (*‘양심에 화인 맞았다’라는 표현은 불에 달궈진 인두로 양심을 지지면 뜨거운 열로 화상을 입어 원상복구가 안될 지경으로 망가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양심이 인두 불로 지져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에게는 악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작가님이 쓰신 내용을 이해해보겠습니다.
양심을 자극하는 죄의식이든 거리낌이든 이것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습관'입니다. 그리고 '습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결정적 요인은 중간 단계에서 작동하는 ‘각 사람의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이 각 사람마다 다르니까 반응이 다를 겁니다. 반응하는 그때가 기회의 때이기도 하다고 봐요. 사실, 습관은 이미 보였던 반응이 고착화되어 어떤 일(상황)에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면 각 사람에게 찾아오는 기회는 작가님이 사용하신 ‘빛’이라고 가정할 때, '빛으로 드러난다. 빛으로 나아간다.’라는 행동일 것입니다. 이 행동 명령은 단순한 듯해 보여도 간단한 요구가 아니라고 보는데. 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확장성을 갖기에 ‘어둠’ 혹은 ‘범죄’의 깊은 곳까지 비추게 될 거예요. 그런데, 아까 말했던 ‘양심’이라는 기저가 작동할 수 있으려면 반응하는 당사자의 ‘의지 혹은 의도’가 일종의 양심의 문을 열고 닫는 작동장치가 되는 겁니다. 이건 굉장히 자율적이고 적극적인 당사자의 결정에 의해 내려지는 책임 있는 반응이 되는 거죠.
그래서 ‘습관’이라는 덩어리 안에는 선한 의도(의지)에 따라 형성된 가치들도 있지만, 불편함. 허영심. 흥분. 경박함 등등의 것들도 섞여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악마가 사람들이 덫에 걸리도록 하려면 ‘거리낌 없는 양심’으로 유도하기 위해 인간이 불편해했던 ‘거리낌’을 제거해주겠죠.
악마가 제공하는 일종의 대가 혹은 달콤한 그 무엇들(뇌물. 권력. 정욕 등등)에 의해 사람은 거리낌으로부터 해방되기도 하겠고요. 이런 거래를 ‘검은 거래’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불의한 인간이 정의롭다고 행세하는 걸 나무라지 않으면 불의함에 대해 일종의 무감각. 괜찮음. 거리낌이 제거된 이상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국가적 수치로 느껴서 언급하지 않았음 했는데. 프랑스 르몽드 지 기사에 대한민국 차기 정권의 수장이 될 아내가 ‘콜걸’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걸고, 디테일하게 ‘콜걸’의 지식 정보까지 썼던 소식을 접했거든요. 그래서 남의 사생활이라 입을 댈 필요가 없다 여겼지만... 콜걸 출신이라는 것뿐 아니라 주식 통정거래 정황, 허위경력 등등 그녀에게 걸려 있는 딱지들이 해소되지 않은 채로 대통령 부인이 되는 상황이라서. 너무 쪽 팔리고 더러워서... 작가님이 12번째 편지에서 말씀하려던 내용이 이런 게 아닐까.
스크루테이프가 그렇게 말했지요. “아무것도 아닌 것이야말로 정말 강하다.” 악마의 최종 목적을 위해 '아무것도 아닌 것'이 강력한 미끼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사람답게 ‘빛’ 가운데 당당히 나갈 수 있어야 하는 존재 아닌가요?
p.s : 루이스 작가님께 이렇게 한 번이라도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작가님의 글 가운데 <편지> 형식으로 집필하신 책이 있어서 저도 편지를 써봤네요. 작가님이 세상에 남기신 많은 작품들을 더 많이 읽고 삶에 교훈이 될 내용들을 찾고 실천하면서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부록에서 스크루테이프(Screwtape)의 이름의 효과가 아마도 스크루지(Scrooge), 꼬인 나사(screw), 손가락을 비트는 고문기구(thumbscrew), 관료적 형식주의의 상징인 빨간 끈(red tape) 등이 어느 정도 일조했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악마들에게 붙인 이름들은 그저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이름을 만들려고 했을 뿐이라고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웜우드. ‘쑥’이라는 뜻. 쑥은 쓴맛, 고난, 고뇌를 상징하는데. 조카이자 신참 악마의 이름으로 쓴 것을 보고 금방 알아들었어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목적은 환자(곧 사람)의 관심이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성경에서 지옥(음부)의 고통을 쑥에 비유한다는 점에서 연관성을 갖고 있으니까 조카 웜우드를 작명하셨더군요.
*patient. 각각의 악마들이 맡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
*악마의 입장에서 ‘원수’는 예수 그리스도다.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의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1963년에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