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오래 담아낼수록 좋다

서진영. 《또 올게요, 오래가게》 리뷰

by 북청로 로데


추억의 놀이터였던 노포를 소환합니다.

대부분의 노포는 생계를 위해 문을 열었던 곳입니다. 가게 문을 처음 열었던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는 고향에서 일을 시작했고, 나머지는 기술을 배울 목적으로 타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어쩌다 여행차 묵었던 마을이 삶의 터전이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노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일하면서 숨을 불어넣었던 심장 같은 존재인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포의 주인이 가게를 열 때부터 지금의 모습을 상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부모님과 스승으로부터 자녀와 제자들에게로 대를 이어 수십 년 혹은 백 년 가까운 세월을 고목처럼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만약 어느 날 주인이 기약 없이 떠나거나 유명을 달리하면, 매일 살아 있으라고 생명을 불어넣던 호흡은 일순간에 멈춥니다. 이제 그곳을 지나다니는 시간은 의미 없이 버려지고, 집기류마다 쌓이는 먼지에 가게는 폐가가 되어갑니다. 집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들은 마치 늙은 몸에 숭덩숭덩 성긴 뼈마디처럼 삭아 내립니다. 건드리기에도 불안한 허약해진 늙음이 뿌연 먼지로 덮인 모습입니다. 방치된 나이를 복구하는 일이 만만한 게 아니어서 누가 자신 있게 이곳에 생명을 불어넣고 홍조 띤 점포로 새 단장을 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노포의 주인들은 평생 동안 해왔던 일을 천직이라 고백하며 노포와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또한 당신이 떠나면 노포도 함께 사라질까 걱정돼서 다음 생을 동행해 줄 적임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행이라 할만한 주인이 모르는 사실은, 사회성이 뛰어난 노포는 시대가 달라져도 늘 굳건하다는 것입니다. 그곳을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지만 노포의 심장은 누가 되었든 자신을 벗 삼아 세월의 파도를 감내할 사람이 돌아오면 다시 살아납니다. 언제나 그렇듯 노포의 봄은 그렇게 찾아옵니다.





노포에는 느리게 사는 것을 탓하지 않는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사물과 사람, 날짜와 사계절, 정서와 몸, 느낌과 실제에 대해 노포는 열린 마음으로 대합니다. 1900년도 1960년, 1970년.. 노포가 맞이했던 해 중에서 쉬웠던 날이 있었을까요. 여러 모양의 시대가 지날 때 고통이라서 눈 감고, 즐거움이라 눈빛을 반짝 일수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그날 가게 주인이 혼잣말로 주절대는 소릴 들었어도 내심을 감추어온 노포였기에 그곳이 품은 거인 같이 큰 무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한결같은 태도가 멋스러운 건 버텨온 내공이 없이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노포의 밤. 노포의 낮. 처음은 나중이 되어 여기 있고, 나중은 주름 없는 노포의 젊음을 알지 못합니다. 노포의 심장. 숨 쉬게 하는 사람은 그곳의 주인이며 손님입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될 질긴 인연으로 서로를 소개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이었던 어제는 급하고 쉼이 없었더라도 노포는 그곳을 찾아온 오늘 손님에게 그가 원하는 걸 내놓을 수 있습니다. 손님의 걸음은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우주인이라도 된 듯 노포의 맛과 향과 짙은 시간의 밀도에 지긋이 눌리나 봅니다. 질감과 여유를 공간에 빚어지는 장고한 세월에 단련된 건 주인입니다. 그는 노포에서 보낸 시간 정도로 느리고 묵직합니다.


가게마다 물건 종류들이 새것으로 바뀌고 진열했던 위치가 조금씩 이동되긴 했지만 노포에 변혁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늘 그렇듯 노포는 혁명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가 부서지거나 소멸되거나 혹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뿐입니다. 주인이 바뀌면 새 주인이 계획했던 모습이 되니 노포가 지닌 생의 주기는 극단적으로 수동적입니다.

시대가 지날 때마다 새로운 정책들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노포는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노포만큼 장수를 누리진 못해도 자기 목숨 붙어 있는 동안은 지금까지 해온 데로 앞으로도 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게를 유지하고 단골손님들이 계속 찾아주는 곳을 자식들이 대를 이어오다 보면 백 년 가까운 세월을 먹은 노포가 된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듯, 수십 년을 지나는 동안 가게는 그곳에서 묵묵히 주인의 살림살이를 보태주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노포가 된 건 아닙니다. 노포는 주인의 고단한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가 되었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피할 길을 찾다가 결심한 길이 되었습니다.

노포의 현재도 이전 한 때에 집부터 간판. 지붕. 문짝. 가구들과 소품까지 빛을 내던 처음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시점으로 그곳을 볼만한 여지가 남아있지 않으니 낡고 먼지가 앉은 물건들이 이색적으로 보일 것입니다.


방앗간에는 깨 볶는 냄새와 곡물들이 제분기에 가리는 소리, 뿌연 연기가 치익 소릴 내며 올라가고. 주인의 취향에 따라 원하는 소품들로 장식하고, 가게의 특성에 맞는 향이 배이고, 귀를 자극하는 음악이 흘러나와 길 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게 준비합니다.

노포의 현재를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그곳의 처음과 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나요? 주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빛바랜 사진들. 옛날 간판과 쓰지 않는 문자들이 뒤섞여서 만들어집니다. 점포 한 곳에 옮겨져 조만간 육십 년이나 백 년이 될 거라는 근대식 집과 그 안에 배치된 가구


소품들을 배치하고 손님이 걸음 해주시길 기대하는 주인의 꿈. 노포(老铺)의 첫 모습은 신장개업 화환을 세운 요즘 점포와 다를 것 없는 새것이었음은 물론입니다. 처음이 나중 되고, 나중이 처음 되는 . 세월 먹은 물건과 문틀과 도구들이 첫 모습을 잃어가는 동안 덤으로 갖게 된 주름지고 두꺼워진 늙음이 노포에 남았습니다.

이제 버려진 듯 관심에서 멀어졌던 노포가 사람들 속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되살아나서 돌아온 그곳으로 들어가 보니 '이런 곳이었단 말이야?' 케케묵은 이야기에 마음이 쏠리는 이유를 알고싶습니다.




세월을 버티다 보면 풀어놓을 보따리가 가득 찹니다. 그곳을 찾아오는 이들이 나눠가질 선물입니다. 저는 그것을 '세월을 전수한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잠깐 걸음해 준 손님에게 전할 이야기가 있기에 그는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 행복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다음에 그곳을 찾을지 모릅니다.


since 1915.
천황식당

그림. 천황식당 17쪽

*상호명은, 하늘 천(天)과 봉황 황(凰) 자를 써서 '천황식당'으로, 예부터 봉황은 진주 지역을 상징해온 것으로 일본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제철 나물로 화반을 만들어낸 비빔밥을 먹는 사람의 입에 진주의 역사를 얹어서 대접합니다. 돈을 지불하고 받은 밥상머리에서 손님은 식사 중에도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배우게 될 수 있습니다.

천황식당이 보낸 시간 앞에서 나의 청춘은 수줍은 점 하나 콕 찍을 뿐입니다. 갓 지어낸 밥이 시간과 버무려져 제철 나물로 꽃장식을 하듯 화반을 만든다고 합니다.


미팅에서 만난 남자와 촉석루 성루를 걷던 여자는 아쉽게도 천황식당의 비빔밥을 한 번도 맛보지 못했습니다. 진주비빔밥이 유명하다며 대학 졸업식에 따라왔던 동생이 콩나물 한 가닥마저 싹싹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신기했었지요. 졸업 이후 가지 못했던 진주를 다시 가면 혹시 그곳에서 한 번쯤 나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을 떠날 때 작별했던 사람은 나였나 봅니다.




since 1976

영주 대장간

그림. <대장간> 81쪽

"이 불에 달궈 나와서는 식기 전에 만져야 돼. 불에 달궈진 쇠는 기다려주지를 않아. 우물쭈물하다 보면 다 식어서 다시 불에 넣어야 하지. 손에 불이 떨어져도 그냥 툭 털고 해야지 내 손 쳐다보다가는 쇠 다 식는다고..." (87쪽 인용)


대장간 일을 한다는 건 먹고살게 없다는 이었습니다. 최고 2천 도씨까지 달궈지는 화구 앞에서 쇠붙이를 두드려 호미, 낫, 괭이 등 전통 농기구들이 만들어지는 곳. 책 저자는 "쇳덩이 고물이 따뜻한 곡기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기술 발전의 가속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대장간에서 태어난 농기구들이 "2018년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 원예 부문 수공구 카테고리에서 탑 10에 올랐던 이후 지금까지 '아마존의 선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77쪽)는 기사를 접하면. 속도전으로 달리던 인생이 떠나왔던 출발지점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0년을 대장간 일을 했어도 호미 하나 만드는 게 어려운 이유는 서너 사람과 대장장이가 힘을 합쳐야 하는 공정이라서 그렇답니다. "화덕에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꾼, 달군 쇠를 쇠망치로 내리치는 메질꾼, 집게를 돌리면서 원하는 형태로 쇠를 조절하는 대장장이."(79쪽)





since 1976

해동라사

그림. <고급 양장점> 91쪽

<해동라사> 양복점으로 이름 바뀐 세월이 언제인데. "라사"라고 써진 간판을 보고 "양복점"으로 읽다니. 아직 내 사전에는 식지 않은 애정으로 "라사는 양복점"이라고 새긴 기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전 양품점에서 새내기들 취향에 딱 맞는 교복을 입는 순간, 십 대 소녀들과 양품점이란 상호의 부조화가 일순간 날아갈 것입니다. 상의 맞춤옷에는 108개 되는 조각을 이어 붙여서 완성하기에 엉성한 데가 없답니다. 1960년부터 기성 양복이 시장에 등장했지만 맞춤옷에 타격을 주지는 못하다가 1980년 초반 제일모직의 '갤럭시'라는 브랜드가 나오면서 양복점이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해동라사 주인 이경락 어르신은 '내 일이다' 하는 일을 갖는 것만 생각하고 일하셨답니다. 그는 교복 덕에 양복점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2015년부터 학교에서 입찰제로 교복을 맞추면서 몇 년 간 교복을 못 만들다가 최근에야 다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1976년이 아주 옛날은 아닌 것 같은데 양복점 거리에 점포들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해동라사에서 알음알음 수선 일감과 양복 일을 하고 계십니다.





since 1923

영촌양조장

그림. <술 빚는 자리> 111쪽

술에 관해 관심이 없어서인지 양조장에 과정이나 도구 이름이 눈에 잘 들어오진 않습니다.


잠이 덜 깬 새벽녘에 발효되고 있는 술을 한입 머금어보며 하루 시작을 알립니다. 입이 말라 있는 그때 맛보는 술맛이 가장 정확하다고 합니다. 탄산이 강한 막걸리는 발효가 덜 되거나 덜 시킨 것이라고 하네요.





since 1957

하이마트 음악감상실

그림 <그 시절, 음악 한 곡> 198~199쪽
201, 202쪽

'하이마트'? 제가 아는 하이마트는 전자제품 쇼핑몰 이름인데... '하이마트 Heimat'는 독일어로 '고향'이라는 뜻이랍니다. 쇼핑몰에 '하이 Hi'는 언어유희인 것 같군요. 음악다방에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팔며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이라면, 음악감상실의 주된 목적은 음악을 감상한다는데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하니 저도 호기심이 발동해서 클래식 음악감상실을 한번 들어갔던 적이 있었네요.





since 1973

포린북스토어

그림 <이태원의 터줏대감> 253쪽과 258쪽

이곳은 2015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뒤로 2018년 서울 '오래가게'에 선정된 곳입니다. (*서울시가 '오래된 가게가 더욱 오래가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노포老铺 대신 오래가게라는 이름을 붙여 30년 넘게 또는 2대 이상 대를 이어 운영하거나 무형문화재 등 명인과 장인이 기술과 가치를 이어가고 있는 매력적인 가게를 발굴하고 있다. -260쪽에서 인용-)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개천을 따라 동대문 방향에 늘어서 있던 많은 헌책방들이 폐업을 했습니다. 그곳을 가본 지 꽤 오래되어서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했는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 가고 있겠지요. 독서인들에게는 헌책. 새책 구분하지 않고 원하는 책을 구할 수 있다면 발품을 팔아서 책방을 찾아갈 것입니다.


용산구 녹사평대로 208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포린북스토어의 시작은 이곳 주인 기웅 씨가 1966년 군 복무 중 폐결핵 판정을 받고 의병 제대를 하고 난 뒤였다고 합니다. 미군 물자들은 모두 돈이 됐던 시절, 일자리를 찾고 있던 그는 고물상에서 '칼라 책' 잡지에 매료되어 맘에 드는 페이지를 뜯어 그 위에 시를 썼데요. 그의 시와 잡지 속 그림은 멋진 도판이었고 액자로 만들어 한 장씩 팔기도 했답니다. 기웅은 봉지로 버려지는 책이 참 아까웠다 해요. 그래서 뜯겨 나가지 않은 책을 미군부대 인근 고물상과 쓰레기장을 돌면서 수거한 뒤에 명동골목 책방에 대는 '나까마'라는 중간상인 일을 했다고 합니다.

기웅 씨는 자신의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물건을 자식 같이 다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큰딸이 노포 책방을 이어서 맡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since 1968

이디오피아집

<빈티지 카페> 218~219쪽
222쪽. 226쪽 그림

온 세계가 대립하던 냉전의 시대에 1968년 문을 연 로스터리 전문점 에티오피아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덕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다는 뉴스를 접한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자기 근위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칵뉴 대대를 유엔군 일원으로 파병했습니다.(217쪽) 1951년 5월~1965년 3월까지 황제의 정예군 총 6,037명을 파병하였고,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를 낳았지만, 휴전 후에는 한국에 남아서 보육원을 세워 전쟁고아들을 위한 구호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칵뉴 대대의 전쟁사를 기억하고 있던 춘천 시민들이 1968년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를 건립을 위한 제막식에 맞춰 황제는 에티오피아 문화를 알릴 장소를 마련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기념관의 이름은 '이디오피아 벳(이디오피아어 '집')으로 명명하였고, 춘천 공지천변에 카페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시그니처 커피는 황제가 즐겨 마신 하라르와 이르가체페, 시다모 세 종류로 황제는 외교 행낭에 생두와 함께 커피 전문가를 파견했습니다.


에티오피아어 커피를 뜻하는 '분나' 정신의 전통으로 '분나 마프라트' 즉, '커피 세리머니'라는 의례가 있는데. 볶은 커피콩을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제베나'라 부르는 도기 주전자에 넣어 끓입니다. 끓인 커피를 '시니'라는 잔에다 각자 세 잔을 마시는 의례인데. 우애의 잔. 평화의 잔. 축복의 잔이란 의미를 담고 교우하는 것입니다. 에티오피아 커피에 담은 나눔의 의미가 새롭습니다.

저희 집 주위에도 꽤 많은 카페들이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카페에서 독서하는 날이 늘긴 했지만 커피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을 덜 가졌던 것 같습니다. 커피가 우리 고유의 차가 아니기에 그 물건이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알아보진 않았는데. '이디오피아 집=이디오피아 벳' 그 이름을 얻기까지 겪은 세월이 전쟁과 복원이었군요.




이 책에 담아낸 노포 스물네 곳 가운데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살펴본 몇 곳에 대한 감상을 간단히 적어보았습니다.

작가가 발품을 팔고 스케치와 글을 써서 노포의 가치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첫 잔은 '너의 이야기를 듣는' 우애의 잔. 두 번째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평화의 잔. 세 번째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번영을 기원하는' 축복의 잔을 마시는 이디오피아식 커피 세리머니로 글을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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