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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n 08. 2022

만약 아버지의 목숨 값을 받게되면 (1장)

가제 <휘발되지 않는 슬픔은 이제 안녕한가요>


'만약 아버지의 목숨 값을 받게 된다면,' 이런 가정을 한다는 것 자체 참담하다. 저 처참한 사건이 없고서야 이런 상상이 가능하겠.




'소리 내지 않는 주변 상황들이 평화를 흉내내기 딱 적확할 때가 있다. 소리 없는 고요가 공포를 극대화 시키기도 하는데 평화와 고요를 등치시키면 뭐가 달라지나. 여전히 사회와 국가가 해결하고 봉합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시달린다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평화를 성의없게 대하지 말아야는데... 평화! 그것이 여기까지 오느라 헤아릴 수 없는 피땀눈물을 흘렸을텐데 어떻게 소홀히 대하냐. 그러면 안 되는거다.


요즘 우리 집 거실  일찍 꺼진다. 잠을 자러 들어가는 발바닥이 슥슥거리는 소릴 내는 것조차 은밀하게 들린다. 날마다 매너리즘에 빠져 생기없이 하양 가볍게 살아가고 있다. 마치 예전부터 이런 집이었던 것처럼 금방 익숙해진다. 하지만 최근들어서 우리 집 사람들이 좀 기운이 없고 조용해진건  맞다. 



이 와중에 그래도 하루 중 활기 넘치는 웅성거림이 마련되는 저녁 식사 자리가 있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야 '식사 시작'할 자세로 한분은 소파에 한분은 안마의자에 각각 앉아 계신다. 잠깐의 안식 전에 부모님은 늘 오후 여섯 시 십 여분 전후에 찌개를 끓여 놓으신다. 나는 가방을 던져놓고 옷을 갈아 입고는 손을 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와서 상을 차린다. 냉장고를 열어 열무김치와 나물, 장조림을 꺼낸다. 접시에 반찬을 소분해서 담고 일차로 쟁반으로 나른다. 다음으로 밥과 찌개나 국이다. 대충 저녁 상이 차려지면 밥상 위에 오고갈 이야깃거리를 내놓는다. 가끔씩 아버지는 속에서 엉킨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사에만 열중하신다. 나라도 눈치껏 그날의 화두를 던져서 엉킨 말 보따리를 풀어야 아버지 속이 조금은 와해되는 게 보인다 . 



 가족들 텔레비젼 채널을 이리저리 눌러서 시청하는 건 야구경기, 세계의 사람들, 한국인의 밥상.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 이런 프로그램들이다. 모든 연령대가 시청해도 무난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시청자 입장에서 우리 가족들이 살아온 살림살이가 저랬구나 이해되는 이야기들이다. 른 집에서는 드라마에 중독된 아지매 아재들이 있다지만 우리 집에는 드라마에 푹 빠져서 스토리 전체를 꿰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아줌마 모임에서 특정 드라마가 재밌다는 말을 듣고 와도 시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첫 회부터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모르는 드라마에 몰입할 만큼 감상적인 분은 아니시그렇다.



매일 비슷한 저녁 시간대에 비슷한 장르의 채널을 본다는 뜻은 건질게 없다는 것과 같다. 방송국도 우리 집 시청자가 질문하고 답할거리를 제공할 계획이 없는 것 같다. 언제쯤부터 하고자 하는 의욕, 소명의식에 대한 끈을 놔버렸을까. 그런게 아니라면 아닌걸 절실하게 증명해주기를 바란다. 뉴스 채널들의 몽니로 시청자인 우리 가족은 알게 되었. 저들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척 하느라, 출연자들 교체하고 좋은 말잔치를 복붙할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은 여전히 길기만 한 하루를 잘 버티려고 지푸라기 같은 채널들을 만지작 거린다. 월척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집에서 낚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계속 회자했을텐데. 전파 방해 받는 와이파이처럼 자주 끊긴다. 회자하고 싶은 얘깃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아파트 구역도 사건사고 없이 무난하게 평화롭다. 평화라는 게 놀랄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기 마련이지만 말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 밤 고요내려오고, 가족들이 방으로 들어가면 나는 단조롭지만 느리게 흐르는 밤 베란다로 나간다. 사흘 째 열차게 내리다 소강상태인 비 때문에 바람과 싸늘함이 베란다에 머물러 있다. 밖을 내다보니 귀가하는 학생 하나가 제 몸에 기를 안 뺏기려고 팔을 감싸 안고서 계단쪽으로 사라진다. 꽃샘추위 때나 있을 한기가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부르르 떨게 한다.

자기 몸을 감싸 안고 걸어가는 누구의 자녀, 잰 걸음으로 멀어지는 누구의 엄마 혹은 아빠, 컴컴한 아파트 숲을 보는 누구의 딸(나) 이런 사람들이 아파트  집집에서 살고 있다. 모습이라도 보겠다고 매일 밤 거실에 불을 끄기 전 나는 베란다로 나간다.



나는 오늘 밤에 영정 사진으로만 봤던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젊고 영원한 청년의 자화상으로 남은 할아버지 생각에 기운이 빠져서 수면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는 느낌이다. 아득한 옛날 이야깃 속 등장인물처럼 할아버지는 박제인물이시.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젊으시다. 그 모습, 청년의 모습을 한 할아버지에 대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기억을 나에게 심은 사람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할아버지 역시 젊다.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아버지 나이가 일곱 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 아버지 우리 가족 모두는 할아버지의 노년 모습은 상상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자연사로 돌아가신 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우리 할아버지의 노년은 죽임 당하셨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한 대답이다. 영정 사진  삼십 대 중년의 남자를 나는 할아버지로,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아버지라 부른. 그분이 품었던 감정은 아버지의 말 빌어야 전해지. 아버지의 기억을 건드리기만 해도 할아버지는 말 속에서 아나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장터에 난전이 선 것처럼  가슴 속에서 시끄러운 날이다. 다시 쏟아지는 비로 눅진해지는 밤에 떠올리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목숨 값.



유튜브 오느른 영상에서 캡쳐



이틀 전 주말에 제주도에 계시는 아버지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4.3 유가족 보상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는지, 진행되는 상황을 모르면 알려줄 마음으로 전화를 하신 거였다.



'심청이는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져야 했던 분명한 '죽음의 명분'이라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분 세탁하듯 새롭게 태어나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시대에는 죽음이 아무데나 자라난 풀이 베어지듯 간단하잘려나가던  였다. 남의 목숨에 국가가 앞장서서 명분을 내세운 뒤 앗아갔다. 그리고 결국 할아버지는 그 어줍잖은 국가의 명분 따위로 목숨을 잃으셨다. 고전소설 속 심청이만도 못한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소환되었다.



6월6일 현충일 오전. 사무실에 혼자 나가 5월31일 인터넷으로 주문했지만 필요한 기일에 못 맞출 물건들을 모두 취소했다. 공휴일도 택배 기사들을 뺑뺑이 돌리면서 돈벌어먹는 기업은 그냥 양아치인거지. 어쨌든 취소한 만큼의 물건을 근처 할인마트에서 주문했다. 인터넷과 할인마트 가격차가 몇 천원인데, 그거 아끼려 했다가 말짱 도루묵이 되는 바람에 토요일과 현충일에도 사무실로 나갔다. 문자에 반응하지 않는 택배를 기다리다 피곤한 몸으로 긴 탁자 위에 누우 노숙자가 따로 없었다.




 6월7일. 사무실 입구에는 어제(6일) 일인용씩 개별 포장한 간식 보따리가 상자에 담겨 있다. 오늘 함께 동행할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점심을 주는지를 물어왔다. 처음 듣는 질문에 당황도 잠시. 봉사자들은 끼니도 희생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은 잘못된 당연시였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구치소 수감자들을 위한 간식만 준비해왔지 참석자들 간식은 없었다. 그랬다... 참석자 각자 알아서 밥을 먹고 온다는 말만 철석 같이 믿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할인마트로 달려가 빵과 우유를 준비했다. 다음부터 그분들도 서운치 않게 위로의 간식을 준비해야겠다. 누군가 관심받지 못한다는 섭섭한 기분으로 봉사하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놔야겠다.



 오후 한 시구치소를 방문해서 수감자들에게 전할 빵과 음료 등 간식을 준비하고 진행 순서를 체크하고 있었다. 분주한 틈바구니로 엄마 전화를 받았다. 걸려온 전화 내용인즉, 제주도 읍면 전화번호부를 어디다 놨냐는거다. 내가 자세히 그 책자를 어디에 꽂았는가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위치에서 책을 지 못하면 재차 전화로 나를 독촉할텐데.


"아버지가 제주 행원 전화번호부 책을 찾으시네, 어디 놨는데?"

......

"엄마, 내가 제주로 전화해서 알아보고 전화드리께."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064.114' 번호를 눌러서 확인한 번호를 엄마에게 알려드리고 나는 다 하던 일로 돌아갔다. '갑자기...전화번호부는 왜 찾으시나?... 아~ 4.3 보상금 상황을 확실하게 알아볼 요량으로...' '거실에 있던 책꽂이를 내 방으로 옮기면서 전화번호부를 못 찾는거구나.' '근데, 제주도 114콜센터에 물어보면 될 일을 왜 책을 찾아서 확인하려고 하나? 하아~ 요 사이 아버지 기억력이 이전 같지 않으시네...'



(여기까지 이야기 1편 이었습니다.)

PS: 제주 4.3으로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피해보상금 수령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목숨 값으로 보상금을 수령받게 된  아버지의 심경은 어떠실지 궁금해 하며 쓰게 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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