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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n 14. 2022

도토리가 (1)

가제. <예기치 못한 힐러>



    작년 늦가을 산책을 다가 상수리나무 낙엽 더미에서 도토리 한 톨을 주워서 집으로 가지고 왔었습니다. 그 전년에도 숲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도토리 몇 알을 갖고 와서 화분에 심었더랬죠.


싹은 나지 않았고, 화분갈이를 하면서 나무들을 다른 화분으로 옮기는 사이에, 도토리를 어디에다 묻었는지 저는 영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무심한 사람의 손에 잡혀 저희 집으로 왔지만 실종된 도토리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요.


몇 년 동안 줍고 심은 도토리들이 저희 집에 와서 무덤을 만들고 썩어져 좋은 토양이 되는 듯했습니다. 똥 손이 따로 없다며 생명을 창조하지 못하는 제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도토리를 줍는 행동이 죄를 짓는 것처럼 무거웠습니다. 도토리를 줍는 행인들의 행동을 제지하고 싶은 바른생활(?) 어른이 되려고도 했답니다.



 최근 저희 집 화분에서 상수리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작년에 도토리 한 톨을 주워다가 심었나 봅니다. (과연 제가 심은 게 맞겠지요? 그렇게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확실히 저희 부모님이 그랬을 리는 백 퍼센트 아니라고 장담합니다. 그러니 제가 심어둔 도토리가 맞겠죠.)


기대하면 나지 않고, 무심하게 잊고 있었을 때 가지를 올려준 그 도토리는 저에게 예기치 못했던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작년에 심었던 아보카도 열매 옆에서 나란히 연한 줄기가 올라오더라고요. 잡초라고 하기엔 단단한 가지와 연초록 그물맥 잎이 나무라고 직감했죠. 5월이 지나자 위로 올라가는 줄기에 다섯 장의 잎이 돋아났습니다.


잎은 분명 상수리나무의 그것과 똑같은 모양. 두어 달 잎이 진해지기를 기다렸다가 화분에 옮겨도 될 듯싶어서 조심스럽게 흙을 파보았습니다.줄기는 도토리 열매를 뚫고 나온 게 확실했고, 그 열매를 화분에 옮겨 심었습니다.


 생태 환경이 바뀌자 1,2주 정도 상수리나무 줄기 맨 위에 잎이 시들시들 까무러치려고 해서, 이를 어쩌나, 괜히 옮겨 심었다가 죽이게 된 게 아닌가, 여러 생각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다행히 지금은 끝에 매달린 이파리도 짙은 녹색으로 제법 질겨졌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상수리나무 특유의 거친 질감의 잎이 느껴집니다. 게다가 모체와 같은 모양의 잎들을 보니 대견스럽네요. 당분간 여름을 날 동안 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요.





'진리(truth)는, "나는 언약을 지킬 것을 당신에게 맹세합니다" (I pledge thee my troth)라는 고대 영어 표현에 나오는 '언약'(troth)과 동일한 게르만 어근을 가지고 있다.


도토리가 싹을 틔워 상수리나무로 자라고 있습니다. 어두운 흙 속에서 몇 개월을 어떻게 지냈는지 들을 수 없지만, 어둠을 뚫고 빛이 있는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가진 지식의 말을 낮추고 찬찬히 도토리의 여정을 되돌아봅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맡게 된 유치부 내에 영아반을 올해도 맡았습니다. 유치부 전도사는 '한 번 하시면 최소 3년을 해주시는 거죠.'라며 영아반 담당 기간을 웃음으로 연장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계속 맡는 거죠. 별일 없으면 영아반을 하면서 나눔 내용들을 글로 정리해서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다음 담당자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다면 말예요.)


올해 시작하면서 진즉에 육아에 관한 책들을 열 권 빌려놨습니다. 하지만 한 번씩 책을 펼칠 때마다 낯선 느낌이 들고, 글을 읽지만 육아의 실재에 대한 환경들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파고들었던 것 같습니다.


 머리는 책에서 읽었던 내용들로 커지는데, 마음은 자꾸 냉랭해지는 거예요. 유명한 오은영 선생의 영상도 엄청 많이 시청했고요.


 저는 마치 제가 의지하고 도피할 수 있는 권위 있는 말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재가 아닌 난무하는 지식들을 의지하면 육아를 알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이제 그런 식으로 육아를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조금씩 비워내기로 했습니다.


 육아는 실재이고, 저는 지식을 원했고, 서로 다른 길에서 해법을 찾던 을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도토리가 어두운 흙 속에서 지냈던 밤처럼 지식 없이도 약속된 시간에 상수리나무가 되어 나타난 사실을 떠올려봅니다.


말하지 않는 모험, 지식을 낮추고 실재를 보게 될 때를 기대하되 천천히 가 보기로 했습니다.



아보카도 옆 어린 상수리나무

예기치 못한 힐러,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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