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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n 06. 2023

어쩌다 하루

하루의 표정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하루



    자기감정에 예민해지면 아름다울 수 있는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버린다. 감정이 현실을 끌고 가도록 방심하는 순간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급하게 속도를 낸다. 그리고 격렬하게 흔들리는 진동을 견뎌낼 근력이 없는 체력 저하가 온다. 오늘이 그랬다!  

'평탄한 길 위에 돌부리'

'머리카락을 치고 달아나는 바람'

'기상예보를 빗나가는 날씨'가 되는 오늘.


   점심 반찬으로 해삼과 멸치볶음을 조심조심 씹었건만 부실한 이빨 한 귀퉁이가 쪼개졌다. 멸치를 먹는데 돌 같은 것이 혓바닥을 건드렸다. 처음엔 '멸치에 웬 돌?' 했는데... 그게 아니라, '웬일이니... 부러진 이빨!'이었다.

 

이런 황당한 순간에 사람들은 보통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하다. 기겁을 하던지, 겁을 먹던지, 아니면 누구에겐가 이 비보를 전하던지 그렇게 하지 않을까?

나는 몇 초 한 줄기 숨을 뽑고는, 부러진 이빨을 옆에 치워두고 먹던 밥을 마저 먹었다. 그리고 돌이길 바랐던 이빨을 살피면서 혓바닥으로 부러져나간 이빨의 정도를 가늠해 봤다.


'하아~ 오늘 하려고 했던 일정의 절반은 날려야겠다!' 급한 불부터 꺼야지.

(내가 다니는 치과에 전화를 해보자. 혹시 징검다리 휴일일수도 있으니까.)

정상 진료한단다.



이빨을 금으로 덧씌우는데 드는 비용은 무엇인가?

나는 당장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그건 '한숨'이다. 긴 한숨이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소중한 내 치아를 위한 측은지심꿈틀대면 좋겠지만, '씌울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찰나의 순간에 그 마음은 후순위로 났다.

'멸치를 원망하랴;; 해삼을 원망하랴;;'

'다 내가 짊어질 수밖에 없는 일 아닌가 ㅠ'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평화를 구하는 첫 기도에 떠오른 성경 구절이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염려한다고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자라게 할 수 있나.'  


한 시간 반 가량 치료를 받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가라앉은 기분이 다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날은 환하고 가방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두둑하게 들어있다. 그러니 어디로 가야겠나. 내 사무실이 아니라 북까페로  가야겠지.

숟가락 쥘 기운도 없는 사람은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 사람들이 왕래하고 이야기 소리도 들리고 커피 향이 풍기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나를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본다.


작년부터 시작한 직장인반 독서그룹 모임이 전반기 종강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두 번째팀 독서그룹과 만날 예정 준비할 게 많다. 덕분에 나는 책 읽기 부자가 되었다.

'깊게 파기 위해 넓게 삽질하고 있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평화의 기도문.

'로데, 지금 네 속을 들여다보고 있지. 시선을 밖으로 뽑아내봐라. 눈을 들어봐라. 그래야 평화가 오고 답이 온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아니, 화려할 이유가 없는 나의 나머지 하루는 괜찮다. 안녕하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게 아니다.

신호등이 깜빡이듯 횡단보도 건너에 있으니 조금만 참고 만나면 되는 거다.

내 마음이 분주해서 답을 볼 수 없을 때에도 "아름다움'은 늘 그곳에 있다는 사실. 저기 있는 현실.

그래서 가끔 당황스러운 일을 당하면 먼 곳을 보려고 애써보자. 감정의 노를 젓던 손을 놓고 그냥 둥둥 떠내려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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