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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n 17. 2023

영혼이 없고서야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가던 길



잠수


   

     수부가 몸을 거꾸로 처박고 바닷바닥을 훑어가듯. (울산) 삼산의 바다 아래(지하 1층) 교보문고에서 해삼을 줍고, 미역을 뜯고, 지나가는 물고기들을 슬쩍 곁눈질했다.


    필요했던 건 검은색 볼펜 한 두 자루. 볼펜심이 블랙이어도 볼펜 껍데기는 현란하고 다양하다. 그들의 다른 모양새들이, 그들의 다른 이름들이 지나치려던 영혼을 불러 세웠다.  나이 듦과 무관한 문구류에 대한 애정은 어디 묻혀 있다가 이렇게 난데없이 고갤 드는지.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 바깥외출 여부는 마치 전쟁 중 행동지령이 떨어져야 가능하듯 세상이 돌아갔다.

갇혔음에 대해. 중앙의 지령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수동성에 대해 병이 날 것 같았던 상황이었기에,

울산에 입점했던 '영풍문고'와 '반니 앤 루니스'가 폐점한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어느 날 나는 '얼른 서점에 갔다 와야겠다'며 은밀하게 이동하면 되리라 판단하고 나섰던 서점 나들이가 아니었다면 3년이 지났어도 몰랐을 거다.





서점이 있다




   공업탑로터리를 돌아 삼산동으로 향하는 버스 정거장 앞에 '처용서림'이 간판만 남기고 지하로 들어갔다.  편리함 때문에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하는 형편이지만 고등학교 적부터 봐오던 서점이 갑자기 지하 공간만 유지하게 된 사실에 나는 겁이 났다.


 그곳에서 자습서를 샀던 기억도 없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 책 한 권을 구입한 게 전부.

이건 마치 '표현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상대방이 모른다.'라며 결론이 내려진 현실 앞에 나의 진심을 말해보는 . 보탬이 되지도 않는 하나마나한 뻔한 말이다. 


'누가 왜 이런 곳에서 책을 살까?'라는 질문이 '누구라도 이유를 막론하고 이런 데서도 책을 사겠지?'로 바뀌진 않겠다.



     '처용'이라는 이름은 '울산'과 짝패라고 할만하다. 6월에 '울산처용제'가 거행되는데, 처용이 나타났다던 바닷가 '처용암'주위는 사방이 공장들이고 조선소들 뿐이라 이름만 남은 행사이다.


 처용서림과는 애달픈 인연을 만들래야 만들거리가 없는 내가 두 개 층으로 운영했던 그곳이 축소되는 모습에 왜 리도 애틋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중고책방들이 개발의 바람에 밀려나면서부터 예견된 미래였던 것 같다. 구 시가지 시장통 골목 안, 스무 걸음 남짓 걷다 보면 허름한 70년대식 건물에 중고책방들이 꽤 차지하고 있었다. 발전과 기계화를 핑계하면서 기분이 찝찝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다 밀어버리고 다시 니 말이다.







좋아서 좋은 마음은...

     




    후발주자! 책 읽기에 후발로 뛰기 시작한 계기는 6년쯤 되었다. *이덕무를 간서치로 불렀던 이유를 알게 된 것도 6,7년이 지나고 있다. 책이 나를 여러모로 깨우고 이끌어주었다. 그래서 책방을 꿈꿨던 어느 중학생의 꿈을 이룰까 고민하기도 한다. 꿈에 다가설 수 있는 샛길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책을 좋아하는 건지, 책방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책 냄새가 좋은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장르별 도서를 각기 다른 매장인 듯 꾸민 곳. 잡화 품목에 포함시켜야 할 물건까지 문구 코너 진열대를 채운 곳. 지상에 밝은 낮 빛을 피해 한 계단 밑으로 내려앉은 이런 문고. 휘발되는 기분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지하' 공간.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리고 지하 매장에 차려진 물건들이 다채롭고 형형하다. 영혼이 없고서야 이런 곳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나. 오히려 영혼이 반쯤 털리지 않고서는 벗어나기 힘든 파놉티콘 같은 장소다.

 모든 사물의 시선을 받으며 요리조리 피해도 발을 멈춰 세우는 화려한 서점을 벗어날 때 지치지 않는 건 기분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상으로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한 시간 단근질 당한 몸이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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