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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l 02. 2023

자연스러운 건 익숙해졌다는 것

라오 여행의 기록 1


라오스 여행을 8일 앞으로 다가왔다.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짐을 싸기도 하고 짐이 된 먼지들을 털어내기도 한다.


하나.  자연스럽다지만 알고 보면 익숙해지는 것

능소화 핀 창밖

     후천적 독서 훈련 앞에 무너진 건 없던 것 같다. 이전에 없던 그리고 앞으로 생길까 의심했던 책 읽기 습관이 완숙 토마토처럼 익어갔다.

    독서에 관한 한 세워놓은 구조물도 규칙도 없던 시작이었기에 허물기도 쉬웠다.  가방에 한두 권의 책을 챙겨 넣고 묵직하게 걸어야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걸음도 괜찮았다. 매일의 읽기 분량을 정하지 않고 읽을 가능성 만으로 덤빌 수 있는 자유로움도 괜찮았다.

    남이 기록한 문장 속 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을 향한 낯섦이 '괜찮아지기'까지 잃어버린 시간이 얼만데. 졸았던 시간은 또 얼마이고. 그래도 '괜찮아'라는 한 마디를 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일종의 반가움이자 자신에 대한 기특함.


    자연스러움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로 부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럽다는 건 의식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을 때 나타나는 자기다움. 책을 덮고도 나대로의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그만한 자연스러움은 없을 것 같다.






     



둘. 하늘을 넣기도 하고 나무를 넣기도 하고


   독서는 읽기 나름이다. 책 읽기가 자연법칙이 아닌 이상 독서는 수만 가지 이름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독서는   ○○이다'라는 식으로 정의하는 한 줄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속마음과 정확하게 드러내야 하는 심경이 응축되어 있을 거다. 아직 나는 독서에 대해 이름 짓지 못하겠다.

   책마다 다르니까. 저자마다 다른 세계를 쓰고 있으니까. 그리고 저자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책이 태어난 시대가 다르고 장소가 다르고 장르가 다르니까. 책에도 신분을 구분한다면 신분차 때문에라도 나는 당분간 '독서는  ○○이다'라고 말하기를 미루고 싶다. 조금 더 읽어보는 것이 지금 나의 역할이다.



   

"어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전부가 오는 것이다."라는 문구에 마음이 갔다.


   이 한 문장을 들여다보면서 말을 따라가지 못하는 삶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마치 싹을 틔우지 못하는 죽은 종자를 뿌리고 추수할 날을 기다렸던 농부  허한 마음이다. 좋은 문장을 빌려와서 내가 저 마음을 품고 어떤 사람을 맞이하면 좋겠는데. 잘 될 것 같지 않아서 말이다.



   내 옆을 지나가던 학생들 몇 명이 욕을 주고받는 소릴 들었다. 성능 좋은 고화질 스피커에서 욕하는 소리만 들어야 한다면 나는 쓰지 않을 거다. 그들에게서 말을 못 배운 학생들과 제대로 말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선생이 보였다. 욕은 말이 아니라 '욕'일뿐이다. 








셋. 철만 녹스는 건 아니다.


     봄이 끝나고 여름으로 넘어가는 사진 속 연못에는 초록초록한 연잎들이 올라오고 있다. 연못물을 빼고 흙으로 덮어 땅을 만들지 않는 한 연못은 앞으로도 연못으로 남을 거다. 부식되는 철이 녹이 잔뜩 끼면 녹은 독이 되기도 한다. 연꽃은 녹 대신 시들고 말라지는 죽음을 선택받았다. 녹이 끼는 대신 자기가 죽고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책을 많이 읽어도 녹슨다. 잘못 읽어서 녹슬고 잘 읽어도 녹슨다. 좋은 책도 나쁜 책도 사람에게만 가면 자꾸 녹스는 것 같다. 글 그대로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서 사람이 녹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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