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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l 30. 2023

그대로의 얼굴로 만나라

라오 여행의 기록 4


    *반가운 얼굴들을 추억하는 시간은 지구 자전주기를 따라 돌아가고 있다. 거의 매일처럼 라오스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난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2주 차인 오늘.

5월에 라오스 기온이 40~45도씨까지 올랐었다는데 혹서기의 더위를 어림 추정해 볼 뿐이. 한국으로 귀국하던 7월 15일 낮 기온 39도씨화기경험했는데. 지금 이곳이 이른 아침부터 작열하는 태양에 데워지고 있다.  내 몸에는 멀미 증세 울렁울렁 일렁댄다.





비엔티엔 여행자 거리 풍경 1
풍경 2


그 많던 전신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아는 다 누가 먹었나》라는 소설이 있다. 코끼리 뼈 '상아'가 아니라 '싱아'라는 여러해살이풀을 말한다. 시골길에서 흔하게 봤음직한 풀은 1미터 정도까지 자라고, 6월에서 8월 사이에 흰꽃을 피운다. 시골아이들이 주로 먹었다는 싱아를 샐러드나 쌈 싸 먹기도 한단다. 

여러해살이풀마저 세월과 함께 사라지거나 누군가 다 먹었거나. 비엔티안 여행자 거리에서 볼거리는 사진 속 전신줄이 아니었나 싶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전봇대가 가로수를 대신했던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풍경이었다. *저렇게까지 심하게 얽혀있진 않았던 것 같지만...  

축축 늘어진 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풍경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면,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풍경이기에 그럴 이고, 대한민국이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많던 전신줄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내가 살았던 과거가 곳 비엔티엔 거리에 이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후지다거나 가난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라 저 풍경 그대로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이 나라도 몇 년 혹은 몇 십 년 후에는 전신줄에 얽힌 이야기들을 추억처럼 풀어놓을 그날이 올 것이기에. 여행자로서 저런 풍경은 꼭 찍어야 할 아이템이다.


    상점이 생겼다 사라질 때마다 전신줄 몇 가닥이 연결되기도 끊어지길 반복했을까? 아무튼 대단해 보이는데 놀라움 반. 걱정 반이다. 우기에 비라도 많이 내리면, 번개라도 치면, 운전자의 감으로 도로를 주행하는 차가 저걸 들이받기라도 하면, 등등. 폰에 담아내는 동작과 불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전봇대 옆에 오밀조밀 이웃해서 달아맨 배전함은 열려있든 말든 행인들의 관심 밖이다. 그 무심함 속에서도 거리는 경극의 검보를 바꾸듯  얼굴을 계속 바꾸고 다.


    그리고 전신줄 위로 떨어지는 햇살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비단실마냥 걸쳐진 전봇대마다 번쩍번쩍 광택이 흘렀다. 낯이 익은 전신줄을 보면서  가에 미 머금었다.  잔잔한 즐거움의 출처는 과거로부터 왔을 테고, 그래서 그대로를 보여 라오스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나는 즐거이 쳐다볼 수 있었다.


맨몸으로 지붕 수리하는 라오스 아제







해가 저물거나, 해가 떠도 시간을 예측하기 어렵다. 사진 으로는 이런 풍경이 몇 시에 연출되었는지 아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고 과장된 뻥을 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낙조처럼 짙게 깔리는 어둠의 밀도로 보아 앞엣 것은 일몰 이후에. 뒤에 것은 일출 이후에 풍경이 확실하다.

빛은 참으로 대단한 위력을 품고 있다. 출현할 때는 가벼우면서 경쾌한데, 소멸할 때는 어둠의 밀도를 높이며 여한 없이 사라지니 말이다.

해저무는 비엔티엔 여행자 거리 풍경
스콜이 내린 후 이른 아침 풍경


   밤낮 기온차는 약간, 아주 약간 느껴지는 라오스였다. 에어컨을 약냉방으로 맞추고 잠들었던 숙소에서 나는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밤새 냉장실에서 시원하게 식힌 몸을 일으킬 때는 아주 느리게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였다. 시원한 아침이라며 꽃놀이패를 거머쥔 가진 자의 여유를 부렸지만 문 밖은 아프리카 숨막히는 찜통 더위가 아니었던가. 조식도 일등으로 먹어야 직성이 풀렸던지. 아침 여섯 시 반 식사를 준수하려고 1층 식당으로 내려와서 규칙적으로 조반을 먹었다. 


 여름철이면 실내 에어컨 아래서 폭염을 피하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말하건대. 훅하게 찌는 도로를 걷는 건 (사진처럼) 운치가 있다. 도심 속 건물들의 실루엣과 지난밤 스콜로  질퍽해진 거리를 누가 저렇게 근사하게 연출할 수 있겠나. 그냥 걸었을 뿐인데 르와르 장르의 멋진 장면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냥 찍어도 괜찮아 보이는 사진들이 나와주니 비가 와서 습하건 말건 낭만적이다. 라오스에서 받았던 선물인 것 같다.


그곳에서 맘에 들었던 점은, 대만 홍콩과 비교해서 도시 전체적으로 눅진한 향불 냄새가 안 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묵었던 호텔 인근  블록마다 사원들이 근거리에 위치했지만 향을 피우거나 초를 분향하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왜 강한 향을 피우지 않으시나요? 왜 붉은 양초를 태우지 않나요라'라고 오지랖 넓게 묻지 않았다. 그냥 라오스 불교가 생활 속에 밀착되어 있어서 불자들이 유난을 떨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넘어갔다. 다지 중요하지 않아서였다.

삶이 영성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겉치레를 앞세우지 않는다는 점은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우리 앞에 나타나신 승려들은 외람된 말이지만. 화투에 우산 쓴 비광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장면 역시 놓칠 수 없었기에 폰카에 담아왔다.


그동안 잿빛 승려복만 봤던터라 저렇게 눈에 띄는 주황색 승려복에 우산까지 코디한 모습은 정말 이국적이다.






낯선 곳은 이상한 곳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나다른 전통에 편입된다는 점에서 여행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직 그곳을 모른다는 방증일 것이고, 이상하다는 것은 자국의  문화에 대한 과도한 만 아니겠나. 그곳에서 나를 초대하진 않았지만 여행하기로 선택한 장소의 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낯설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자는 자세이다.

 사람은 익숙한 곳을 벗어나고 싶을 뿐 아니라, 낯선 곳을 향해 동경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다. 그렇지만 여행 영상을 통해 배운 건 조족지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게 여행이기도 한 것 같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제목으로 여행 프로그램이 나. 눈으로 만족했다면 걸어서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여행은 오감으로 체험할 때라야 내 안으로 그 세계가 들어옴을 경험할 수 있다.



빠뚜싸이 앞 분수대와 구름이 너무 멋지다
대통령궁 앞에서 빠뚜싸이까지. 프랑스 개선문과 라오스 양식이 혼제된 건축물. 직선 길을 샹젤리제 거리라고 부른다.


라오스 역사를 덤으로 배운다.


    이번 여행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내용이 없다는 게 아쉽다. 하지만, 마음만은 최선으로 건강하게 즐겁게 여행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가서 부딪혀 보고 실수하면 반복하지 않도록 정신 차리면 될 테고. 사람 사는 곳이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생각했던 것 같다.

   혹자는 인도차이나 트라이앵글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 사회주의 국가 체제라서 '공산주의'라면 질색하고 그 아름다운 문화와 경치를 구경할 마음을 갖지 못한다고 한다. 세상이 아무리 하나의 지구촌이라고 구호를 외치고 개방을 해도 이데올로기 국경을 넘기란 그렇게 쉽지 않은 결단인 거다.


   좋은 말로 표현해서 '라오스 지역에 대한 전략적 관심을 프랑스가 가졌다고' 백과사전적 용어로 마사지를 했지만. 남의 나라를 빼앗고 분할하고 식민 통치했던 프랑스 입장에서만 기술한 내용으로 읽힌다.

   1893년 시암(현 태국) 왕국과 (강압적) 조약을 체결하여, 메콩강 동편에 라오스를 보호령으로 귀속시켰다. 프랑스는 1905년 비엔티엔을 행정 수도로 삼고 라오스를 12주로 나누어 분할 통치했다.

    1953년 10월 22일 라오스는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이루며 입헌군주제의 왕립라오정부를 이루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 공산 정권이 수립되기까지 22년 동안 라오스는 외세, 연립정부의 부침과 내전을 겪으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참고. 네이버 백과사전)


   라오스 대통령 궁에서 직선 도로가 뻗어 있는 반대쪽에 빠뚜싸이가 보인다. 마치 파리의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을 갖다 꽂은 구조들이다. 인도차이나 지역인데 유럽풍의 건물들과 문화에 녹아 있는 프랑스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라오스 정부에 대한 비난은 자국민의 몫으로 남겨두자.






 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까지 여행은 끝난 게 아니다. 방심은 금물이다. 예기치 않았던 복병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여행하고 돌아와서 여독이 풀리기까지 시름시름 몸살을 앓기도 한다.

사무실을 비웠던 일주일간 바람 때문에 화분 한 개가 넘어져 깨졌다. 당분간 저 파편 조각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 겨우 새 화분에 녹보수 나무를 옮겼다.
새 화분에 심긴 녹보수에 꽃이 피었다. 7월의 태양을 뜨겁게 받은 뒤 기어코 꽃을 내놓았다.


해프닝마저 타임 테이블넣었어야 했다.


* 14일 자정에는 출발해야 할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방송에서는 한국 날씨 때문이라고 하는데, 두 시간 전에 출발한 제주항공은 어떻게 설명이 안 된다. 라오스 공항 출국장에서 하염없이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제대로 해줘야 하는데... 라오스 이미지 좋았는데. 끝이 이러면 안 되지~'  간절함이 반복 후렴구가 되었다.

그렇게 두 시간 지연된 비행기가 보딩 타임은 새벽 1시 반이 지나서였다. 잠 때를 놓친 몸이 천근만근. 눈을 감았다 뜨고 기내 식사도 받아먹었지만 비몽사몽 기내에서 일은 가 하노라~!


어쨌든, 다행히 우리는 인천공항에 아침 8시 30분께에 도착했다. 새벽 한시쯤엔 라오스를 뜨지 못할까 발을 동동 굴렀는데 중요한 건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몸이 노곤해졌다. 인행 직행버스를 기다릴 친구와 헤어지고 나는 서울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했다. 리고 몇 정거장 못 지나서부터 나는 상모 돌리듯 머릴 흔들다가 살짝살짝 깨기도 하면서, 정신이 멀쩡해질 때 반대쪽 창밖으로 넘실대는 수를 보았다. 번 호우로 호수처럼 바뀐 들판이 된 것 일터. 또 어떤 참사가 발생한 건가...  


5일 동안 텔레비전과 뉴스의 홍수를 벗어났다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뉴스마저 에누리 없이 다 쏟아주겠다는 듯 범람하는 뉴스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시 국내 뉴스와 사건 사고를 접할 면역력이 생겼는지를 점검했다. '멘털, 괜찮나?', '당분간 뉴스 들으면서 욕 안 할 수 있겠나?' 자문하고 자답했다. 뉴스가 재난이 된 것 같아서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 방어 기제를 어떻게 해소해얄 지 숙제를 받아 안았다.


도착한 15일 아침 ktx를 타고 울산으로 내려왔다. 다소 자유로운 직장이지만 매인 몸이라 서울에서 며칠 더 뭉갤 상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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