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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Jul 20. 2023

보이지 않는 몸을 위한 식사

여행과 맛




야채연어덮밥.

라오스에서 돌아온 사흘 뒤 병원에서 채혈을 하고 나서 먹은 점심이다. 초고추장을 대충 뿌려 양념이 고루 묻도록 몇 번 휘휘 버무렸다. 이젠 야채비빔밥이 맛난 것을 보니 내 미각이 채소에 익숙해진 것 같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침샘을 자극하는 메뉴들 가운데 겨우 찾아낸 음식이 야채연어덮밥이라니.

끼니때마다 과일, 육류, 생선, 곡류, 유제품 등 먹어야 하는 음식들 앞에만 서면 자동적으로 검색을 한다. 정보 리스트에서 음식과 혈당, GI지수, GL지수 중하위권의 음식들을 검색해서 메뉴를 결정할 때 이용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는 토마토와 사과는 물론 제철 과일에 지수 커트라인 안에 드는 종류를 주로 정한다.

간신히 한 가지 음식을 선택했어도 흰쌀밥이 보이면 절로 숟가락 삽질로 밥그릇 귀퉁이로 치워둔. 이러다 보니 나의 식사는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장기들을 위한 일종의 돌봄다.


6년 전 급성당뇨가 왔고 그때는 당뇨가 이렇게 길어질지 몰랐다. 2주마다 의사 면담을 하면서 나는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의사는 과할 정도로 금기시할 식품군들을 일일이 읊었다. 직업상 당연히 할 말을 하고 환자에게 주의를 주는 업무인데도 수개월이 지나면서 의사와 면담 시간이 잔소리처럼 들렸다. 그때쯤 폭발한 것 일터.

철저한 채식주의자인 의사가 나한테 금지한 음식을 빼고 나면 먹을 게 없었다. 결국은 의사한테 화풀이를 했다.


 "대체 이것저것 먹지 말라고 하면 먹을 수 있는 게 뭐예요?"  

의사 왈: "아니~환자분이 병을 얻어서 음식을 먹지 말라고 얘기한 건데. 왜 나한테 그래요?"


 그렇게 작은 충돌이 있은 후 그 병원엘 가면 간호사들 눈치가 좀 그랬다. '저 아줌마, 원장한테 따지던 환자였지...'라는 시선. 

그래서 갑상선암 수술 이후 지속적으로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울대병원으로 당뇨 치료도 함께 받고 있다. 올봄부터 나는 의사의 진료 대신 병원을 옮겼고 간단히 필요한 말만 하는 의사를 만난다.



보이지 않는 몸을 위해 보이는 음식들을 삼가야 한다. 움직이는 내 몸은 보이지 않는 기관들이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기에 몸속이 필요로 하는 음식을 넣어줘야 한다. 내 몸이 원하면 입이 아무리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식욕을 절제해야 한다.


대리만족으로 먹방 프로그램을 보진 않는다. 고칼로리. 고단백.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의 세계로 다가선다는 건 앞으로도 계속 환자로 사는 것일 테니 음식을 보는 게 즐겁지 않다.






여행 전에 라오스 현지 음식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 식당에 가면 최대한 칼로리 낮고 심심한 양념의 메뉴를 찾는데 고민해야 했어서 그랬다. 다행히 라오스 현지 음식은 양이나 양념이 과하지 않고 괜찮았다.


한국 재래시장에서도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것처럼 그곳도 비슷하게 포장해 준다. 라오스 여행을 하면서 한 두 번 야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와서 고추장을 묻혀 비벼 먹었다. 라오스 서민의 밥상에 한국 고추장이면 호사를 누리는 거다. 우리가 투숙했던 찬타판야호텔 조식은 잘 차려져 나왔다.  이곳을 '조식맛집'이라 칭찬할 만했다. *지극히 주관적 입맛대로 평가했지만 그 정도면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여행자 거리 내에 야시장에서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 베트남식 춘권과 국수와 상추, 고추가 한 상 차려진 저녁. 원색의 파란 테이블 비닐 위에 펼쳐놓은 식재료들이 입맛을 당겼다. 상추에 각종 재료와 양념을 넣어 쌈으로 먹는 음식인데 땅콩 맛 나는 양념이 감칠맛 났다. 북쪽 방비엥 식당에서 먹었던 샤부샤부에 곁들여 나온 나물이 한국에 봄날 시장에서 흔하게 보던 나물이어서 반가웠다. 반갑고 익숙한 맛을 라오스 사람들도 먹는다는 동질감이 잠깐 느껴졌던 식사였다.



도시락 크기는 한국보다 작았다. 그들의 한 끼니 분량은 배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은 딱 적당한 양이었다.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니 서민들의 식사하는 양이 많지 않단다. 밥 위에 반찬 몇 가지 올려먹는 정도라고 한다.


나한테 이곳 음식이 건강식이라고 느껴졌다. 소박한 음식, 과하지 않은 찬거리들,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밥상머리 교제가 있어서 좋았던 식사들이었다.


여행 온 이방인이 현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예의를 차리는 모습이다. 타국에서 한국과 똑같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보다 현지 상황에 동화되는 것도 여행자의 멋이 아닌가 생각한다.



배부르게 먹지 않아도 좋은 여행이었다. 매일 커피 서너 잔씩을 마시면서 라오스 커피 맛에 듬뿍 빠질 수 있었던 기회는 행복이었다.


이른 아침 조식을 먹은 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카페들이 골목마다 있었다. 커피 맛 투어를 해도 될 만큼 다양한 카페 가게 앞 테이블에는 유럽인으로 보이는 여행자들이 드문드문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커피 무식자이던 나는 코로나 기간 동안 커피드립을 배우게 됐다. 아직 커피맛을 평가할 수준의 감별사는 아니어도 라오스 커피의 풍미와 산미, 무엇보다 신선한 맛에 반해서 하루에도 몇 잔씩을 마셨던 것 같다. *라오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여행자 거리에 있는 카페를 투어 하며 커피를 마셔보길 권하고 싶다.






아침 일찍부터 로스팅한 커피 한 잔의 여유여행자에게 건네줄 준비가 되어 있는 라오스였다. 날씨 때문인지 대부분의 카페가 오전 7시 30분부터 영업을 한다. 조식 때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이른 아침부터 카페에 앉아 점점 기온이 올라가는 라오스의 거리 풍경을 볼 수도 있다.


거리를 지날 때면 한 무리의 여행객들을 쏟아놓는 차량들이 도로를 막고 있는 경우를 보았다. 여행자 거리에 도로들이 일방통행인걸 고려하면 길에 중앙 절반쯤을 걸친 채 손님을 부리는 차들 때문에 짜증이 날 법도한데. 그들 문화에는 중국의 만만디와 비슷한 정서가 그득했다. 빵빵!! 클랙슨을 누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여유는 모국으로 챙겨 오고 싶은 장면이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그곳의 음식을 맛보면 그곳 사람들의 생활도 보이고, 그곳에 채워져야 할 삶의 질량이 체감된다. 동시에 이미 가득 채워져 넘치는 내 생활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많은 부분들을 누리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더더더' 가지고 싶다고 불만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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