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으로 향하든지 떠나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게 여행이다.물론 모든 게 생각한 데로 잘 풀리지 않을 수 있지만 여행은 떠나볼 만한 선물 같은 것이다.떠나길 잘했다고 자조 섞인 위안을 할 수 있는 게 여행이다.
라오스 첫 여행의 여운이 모락모락 남아 있는 지금이 그곳에서의 느낌들을 생생하게 말할 때인 것 같다. 인상 깊은 상황들을의식의 흐름대로 기억하는 만큼, 감동받은 만큼필름을 되감듯 천천히 정리해 본다.
라오스에서 5박 6일은서사가 없는 나에게이색적이고도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날이 D-8(7월 2일)이었고,그다음이D-4(7월 6일),그리고7월 10일(월) 출발해서 7월 15일(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5박 6일간의 일정이었다.
구름에 감탄하고, 거미줄처럼 얽힌 전신줄에 놀라고, 도로 차선이 없이도 달리는 차들과 역주행 차들에 더욱 놀라고, 저렴한 값으로 라오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그곳 물가에 놀라고... 라오스는 놀랄만한 일들이 널려있다.그런 걸 보면 사람이 수고하지 않아도 감탄할 일은 정말 많은 것 같다.
다가가면 만나고, 만나면 흔들린다.
낯선 문화에 대한 기대감은 이번 여행에서 후 순위였다. 정다운 친구 얼굴을 보는데 9할 이상을 걸고 준비했던 여행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들뜨지 않았다.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러 마실 가는 기분에 가까웠다.
내 노력이 들었던 건여행5개월 전부터, 필요한물품들을 하나둘 준비하는 것뿐이었다.너무 아는 게 없어서 그랬는지 6월 말이 될 때까지 끝내놓고 가야 할 일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전반기 북청로 독서 모임도 종강했고, 진즉에 약속했던 부산 보수동 책방 투어도 기분 좋게 다녀왔다. 해외여행 갔다 온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낸 덕에 지인들이 대접해 준 맛난 식사들을 투어 하듯 먹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얼굴 볼 건데도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배려를 받으며 라오스 여행에 시동을 걸었다. 혹시라도 라오스행이 취소되면 안 될 이유들이 마일리지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꼭 가야 할 나라, 라오스가 되었다.
나는 관계와 먹방 투어로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라오스에 대한 정보 찾기에는 열을 내지 못했다. 다행히 함께 가는 친구가 부지런한 성격이라 정보에 관한 한 대부분을 친구에게 기대게 되었다.감사하게도 내가 친구 복이 많아서 덤으로 얻은 게 많다. 내가 했던 건 '그래서. 그게 뭔데? 아~~' 정도의 추임새를 연발하는 거였다.여행할 때도 그렇겠지만 여행에서 정말 중요한 요인은 누구와 같이 하느냐 일거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구름이었다.
구름! 구름이 맞다.
모국에서 본 적 없는 구름이 거기서는 어딜 가나 있었다. (*지금도 있을 거다.)
사진 안에, 풍경 속에, 도로 위에, 친구들의 걸음과 함께 구름이 펼쳐졌다. 라오스는 구름맛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내 눈이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계절마다 찾아오는 황사와 미세먼지를 달고 생활하는 한국 사람이 쾌청한 날씨와 자연으로 호사를 누렸던 기회였다. 비록 강렬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구름 아래 걸어가는 게 좋았다.
구름 아래로 언뜻언뜻 보이는 메콩강 지류들 주위로 마을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하늘 위엔 성층권 안에 뭉게구름들이 능선처럼 멀리 그리고 가까이 겹치다가 나뉘었다. 그 구름 덩어리들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하늘 위에서 만들어진 광경은 지나치는 속도가 느리게 느껴졌다. 비행기는 보통 지상에서 10Km 높이를 비행한다고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밀도가 낮아지니 비행 속도는 일정해도 실제 속도는 느리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렇게 지상 위 10km를 한국에서 라오스까지 3,178km를 비행했던 거다.
한 시간 전의 구름부터 일분 전 구름까지 일일이 모두 담아내진 못해도 내 눈에 예쁜 구름들을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애를 썼다. 기내에서 내가 가장 활동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일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 안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구름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7월이 라오스에서는 우기라지만 여행 기간 동안 큰 비를 만났던 적은 방비엥에서였을 뿐이다. 수도 비엔티엔에 위치한 여행자 거리 근처 숙소에서 사흘 째 되는 저녁에 두어 시간 스콜이 쏟아진 것 외에는 계속 날씨가 좋았다.우기에 대비해서 여름 장화를 미리 구입했던 친구는 챙겨 오지 않았고, 현지에 장화가 더 다양하겠지 하고 방심하던 나는 결국 장화를 구입하지 않았다.
*준비했다고 다 챙겨가는 건 아니다.
라오항공기가 7월 10일 오전 9시 25분에 이륙해서 서쪽 방향으로 날기 시작했다. 기내 좌석 앞 모니터는 ON이 되지 않은 채로 구색만 갖춰져 있고, 다리를 접고 앉아도 반쯤은 붕 뜬 다리에 지가 날 것 같은 좌석은 그냥 힘들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좌석이 나란히 6A와 6B였으나 한 끗 차이가 아쉬웠던 자리였다. 바로 앞자리 숫자 5로 시작하는 5A, 5B ~5F는 스크린 앞이라서 발을 몇 센티미터 더 뻗을 공간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돈 몇 센트에, 여윳자리 몇 센티미터에 맘이 상하기도 기쁘기도 해서, 사람이 단순해지고 유치해지는 게 여행이기도 하다.
*혹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찍 자리 배정을 받는다면, 5 라인에 앉을 수 있을 텐데...
몸을 돌릴 틈이 별로 없는 자리에서 친구랑 구멍가게에서 물건 찾듯 테이블을 내려서 식사를 받고, 음료를 놓고 먹었다. 다섯 시간을 뒤로 젖히지 못하는 의자에서 직각으로 앉아서 잠을 청한다는 건... 여건이 허락되면 그나마 잠들 수 있는 그런 잠을 불렀다. 점점 몸이 경직되어 갔다. 내릴 때 자리에서 일어서기도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막막하거나 자유하거나, 그 중간 어디쯤
우리 두 사람은 용감하게 로밍서비스를 받지 않고 탑승했다. 최소한 기내 좌석 모니터로 이동 경로를 확인할 수 있을 거니까. 그런데 너무 당연한 옵션이 에러가 났던 것.
내가 앉은 좌석 정면 모니터는 모형은 있고 스위치는 켜지지 않았다. 풀옵션으로 달아놔도 작동되지 않는 장치들은 그야말로 그림에 떡이다. 이 항공기가 라오스로 운항 중이고 그게 사실이라면 도착할 때라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항공기 운항에 관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기장이승객들이 가려는 목적지인 라오스 공항에 내려줄 거란 믿음이 필요한 시간이다.
믿음이 있어도어디쯤 하늘을 날아가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중국 영공을 지났는지, 윈난인지 베트남인지동서남북이 막힌 테 없이 탁 트인 하늘에서 문명의 혜택이 없을 때 찾아오는 건 막막하거나 자유하거나. 둘 사이를 진자의 구슬처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어느새 항공기가 라오스 영내로 진입했는지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다섯 시간가량 자기 좌석에 붙박였던 승객들이 하나둘 짐을 내릴 움직임이었다. 그 상황에서 도착시간을 확인하니 예정보다 한 시간 빨랐다.
'기류를 잘 탔다'하나? 공기가 항공기 뒤를 밀어준 덕분에 LAO 항공기는 Wattay 공항에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짐을 찾으면 곧바로 나갈 수 있어서 바로 근처 환전소에서 라오스 낍(화폐단위)으로 바꿨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한국화폐 단위로 읽으면 우리는 어쩌다 부자가 되었다. 사실, 몇 백만 원의 지폐를 받아 든 현실은 계산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지폐마다 한국보다 동그라미가 한 개씩 더 붙었을 뿐인데. 겨우 한 개가 아니라 엄청난 혼돈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