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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Nov 01. 2020

P2 인생에서 독일인 할머니와 함께 살 확률

자연과학?학부때 전공.

확률은 자연과학보다 경제. 회계. 통계학에 더 쓸데가 많다고 들었던것 같은데. 기억하는 것은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착각이듯 나한테 확률은 반반, 반에반에반. 코끼리 발톱 크기의 가능성 정도의 의미이다. 말하자면, 나는 확률을 따져가며 인생을 배팅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내가 꾸준히 기도했던 몇 가지 가운데 하나는, '좋은 멘토를 만나게 해주세요' 라는 거였습니다. 기도가 응답되길 기다리다 지쳐서 기도 항목에서 멘토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한 후 얼마 되지않아 호주Aus를 가게 되었어요. 2003년. 오래전 이야기죠.


내가 도착한 곳은 독일 루터회 소속 개신교자매마리아공동체.

그곳에서 일 년 동안 나의 스윗홈이 되어준 베다니하우스에는 뒷 발코니가 있는 네 개의 룸. 샤워실 두 곳. 주방이 딸린 거실. 서재방이 갖춰진 집이었어요. 베다니하우스 바로 옆 열한 시 방향으로 길게 탑가하우스가 이웃해 있었죠. 집앞 화단에는 미스터링컨이란 이름의 꽃대가 큰 장미와 베들레헴의 별(보라빛과 흰색으로 여러개의 꽃대가 한개로 뭉쳐져 부케같은 꽃)이 입구에서부터 방문객들을 맞이했습니다. 이 집 모두 성경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나는 종종 '베다니'보다 탑가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싶었답니다. 성경 복음서 언급되는 '베다니' 라는 동네 문둥병을 앓던 시몬의 집이 등장하는데..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베다니하우스로 걸어갈 때 가끔 나는 시몬 아저씨네 집으로 놀러가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탑가로 방을 옮기고 싶었으나 베다니 집에는 특별한 손님이 머물고 계셨어요.

좌측 탑가/우측 베다니하우스

그곳 자매회 호주지부에는 모두 열두명의 수녀분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그분들 가운데 시스터 크리스토포라는 내 멘토이자 기도파트너였습니다.

크리스토포라 자매님의 어머니 mom Steffuler는 당시 76세의 독일분으로 딸을 만나기 위해 6개월 일정으로 호주로 날아와 그곳 자매회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바로 내 옆방에서 생활하셔서 서로의 기상과 취침시간을 알게 되었고, 나는 할머니에 관한 갖가지 정보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분은 모든 종류의 꽃을 좋아하시는데 특히 장미꽃을 좋아하신다것을 알고나서 나는 3일에 한번씩은 농장 주변에  핀 장미꽃 한 두송이를 꺾어 할머니방 침대 머리맡 화병에 꽂아드렸죠. 그러다가 기독교 절기별 꽃장식에 장미꽃이 필요했을 때 담당 자매님으로부터 '이제 장미를 더이상 꺾지 말라'는 부탁겸 경고를 들었답니다.

그 외에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독일 쿠키 굽는 방법과 재봉틀 사용법. 서양식 식탁 예절까지 할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걸 내게 전수해주고 싶어하셨어요. 마치 내가 양녀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구요.

재봉틀 앞에 계신 맘 스퉤퓰라


스퉤퓰라는 영어도 잘하셔서 다행히 나는 독일어 통역을 구할 필요는 없었어요.

그분이 들려주신 이야기 가운데 여전히 기억하는 한 마디가 있다면, 'God is so faithful. Faithful God'

독일 할머니로부터 2차 세계대전 당시 다름슈타트 하늘에서 공중 폭격이 있었던 날. 유대인 이웃을 숨겨줬던 이야기. 남편이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투옥됐었답니다. 남편이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까지 할머니와 어린 자식들이 고통과 눈물로 보냈던 시간들을 들려주시며 꼭 기억하라고 당부하신 말씀이 God is so faithful. 한 마디.

(듣는 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내 귀엔 한국어 '신실하신 하나님'으로 들렸죠.)


성경에 언급된 베다니하우스 시몬의 집에 한 여인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서는 귀하고 값진 나드 향을 예수의 몸에 다 쏟아 붓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행위를 낭비라고 폄하했고, 다른 어떤 사람은 헌신이라고 했다. 베다니집에 남아있는 귀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어느 주말 오후 할머니와 베다니에서 생활하던 가족들이 염소젖에 빵을 먹으면서 감사했던 이유는 남편의 생사를 알길 없던 한 젊은 여인이 전쟁을 겪으면서도 남편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놓치않았던 믿음의 고백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치 그 말을 내게 들려주려고 한국에서 호주로 날아가게 하시고, 긴 시간 멘토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왔던걸 호주 자매회에서 단번에 응답받고 덤으로 맘 스퉤퓰라까지 만나게 된 상황은 확률 아닌

운명으로만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베다니하우스 클리닝
할머니가 보내주신 엽서 (헤른베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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