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다가 끝내 내일이 오는게 두렵고,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인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 침울한 상황이 변하지 않을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일 때. 청년 자살률과 자살시도가 다른 연령대에 비할 수 없이 높다고 한다.
그 이유를 짐작컨대 청소년이 되기 전 유아부터 초등중등시기를 지나며 이 사회가 끊임없이 이미지를 주입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최고가 되야하고 아무도 널 지켜주지 않으니 자기먼저 살고 보아야 한다는 강한 메세지.
방송은 서로를 보듬고 사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보여주지 않고, 죽이고, 벗고, 먹고, 마시는 유흥문화를 공중파는 물론 종편채널과 넷플릭스 등 OTT에서도 버젓이 내보낸다. 전체적인 기류가 이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도 모르면 또래에서 대화가 안되고 바보가 되어버리니 정말 어렵다. 내가 자랄 때와는 비할 수 없이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
자극적인 영상을 팔아 떼돈을 버는 유튜버들과 겸업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들. 때때로 공포와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도 자살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죽으면 에너지가 0 이 되어버린다. 세상에서 살아있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나는 누구고, 내 주위에는 누가 있고, 어려운 사람들도 보여주고, 내가 이런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고, 어떻게 이바지하고 어떤 의미를 찾고.
어릴 때부터 살아야 하는 이유부터 가르친다면 청년 자살률이 왜 높아지겠는가. 자살률을 수치로만 내내 떠들게 아니라 교육의 종착지점과 평가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삶을 교육하자. 살아만 있다면 세상을 1도라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