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왜 그랬어요?

마음속으로 그들의 반성을 요구하고 증오했던 십수년.

by 임수정

한 살배기 아이를 키울 때, 다섯 살 짜리를 키울 때는 알지 못했던 부모의 마음을 아이가 아홉 살이 되니 조금 더 알 것 같기도 하고. 이해의 폭이 아이를 키우는 시간만큼 더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이 들으시면 "알려면 아직도 멀었어 이것아"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것 같지만 가장 알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을 나는 너무 알고싶지 않아했던 건 아닐까. 그 분들도 퍽 외로웠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알고 싶어하는 것까진 할 수 있었잖아. 남의 얘기도 들어주면서 난 왜그렇게 야멸차게 굴었던걸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도 시시때때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배우자의 관심이나 잘해주는 것의 정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원래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 닮아있지만 어딘가 다른, 예상 가능한 것 같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는 존재. 그러나 단지 '가족'이라는 단위로 묶여있다고해서 당연히 서로를 잘 알고 외롭지 않을거라고 착각하게 되는것 같다.


지난 날에는 부모가 어렸던 나를 왜 그렇게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는지 따지고 싶고 원망하고 싶었다면 이제는 이해하고 싶다. 미처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의 부모를. 처음이라 미숙했고 지금의 나보다 가진 것 없어 매일을 투쟁하듯 살아야만 했던 부모를. 그들만의 사정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죽고싶어도 자식 얼굴이 어른거려 죽지못해 살아내고, 배우자에게 화가 나서 현관 문을 박차고 나갔지만 엄마밖에 모르는 사랑하는 아이들이라서 다시 들어올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 왜 없었겠는가. 자식 키우는 부모라 남에게 자존심 구기고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던 순간 왜 없었겠는가. 그 모든 순간을 살아낸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이제서야 든다.


나에게 무엇을 잘못했고, 섭섭하게 했든 이번 생에 부모가 처음인 부모인지라 몰라서,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을 나는 왜 그렇게 오랜시간 원망하며 살았을까.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니까. 인생의 남은 시간동안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타인의 '처음'에 너무 냉담했던것 같다. '가족'이란 이유로. 아직도 모든게 처음같아 매일을 헤매는 나와 마찬가지로 모든게 처음이었을 그들에게 세 번째 생, 네 번째 생 정도의 노련함을 요구했고 완벽한 부모가 되어주기를 바랐었다. 얼마나 숨이 가빴을까. 얼마나 삶이 고되고 숨이 턱턱 막혔을까.


모두 사랑의 크리스마스.

온세상에 전쟁없는 평화가 깃들기를.

+ 엄마, 아빠. 너무 오랜시간동안 미워해서 죄송하고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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