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까요 레비사, 어떤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해안도시에서, 그것도 어부의 딸로 태어난 나. 어렸을 때는 바다가 그렇게 싫었더랬다. 매 끼니 밥상 위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해산물에는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그것이 엄청나게 호화로운 생활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대학에 입학해 도시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이후부터는 마치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바다 앓이에 빠지고 말았다.
어찌되었든,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바다를 그리워하다니, 바다 볼 생각에 설레다니!
까요 레비사는 쿠바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된 한 카페에서 본 사진 때문에 와야겠다고 결정한 곳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에메랄드빛 바다 위에 괴목이 떠 있는 사진이었는데, 기이한 풍경에 눈이 커졌다. 실제 풍경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글쓴이의 말에 입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저긴 무조건 가야해!"
첫 데이트를 앞둔 사람 혹은 소풍 전날의 아이처럼 설렜다. 밤새 잠이 안 왔다. 태블릿을 켜고 한국에서 다운받아온 드라마 '또 오해영'을 틀었다. 한숨도 자지 않고 마지막회까지 다 보며 밤을 샜다. 체력이 좋지 않은 편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다음날 아침의 나는 매우 쌩쌩했다.
조식을 먹고 데이투어 예약을 했던 꾸바나깐 사무실 앞으로 갔다. 잠시 후 꾸바나깐의 20주년을 기념하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가이드가 나타났다. 그는 예약증을 확인한 후 버스에 오르라고 했다. 1시간쯤 달려 선착장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오늘도 혼자 온 여행자는 나뿐이었다. 동양인 역시 나 혼자였다.
선착장을 지나 수풀이 우거진 길을 지나니 믿기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호수처럼 잔잔한 파도, 햇빛을 만나 투명하면서도 찬란하게 반짝이는 물결,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 바람은 바다 쪽에서 불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내 뺨을 스칠 땐 물기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것이, 몸에 닿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넋을 잃고 구석구석을 누볐다.
아직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그런지 찾는 사람도 적었다(하루 입장 가능 관광객 수도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유를 모르겠지만, 현지인들은 이곳에 발길 조차 들일 수 없다고 한다. 지근거리에 있는 이들이 누릴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을,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내가 만끽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까요 레비사에서 보낸 시간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두 잊어버렸다. 머릿 속에 남은 거라곤, '아득함'과 '경이로움'이라는 두 표현뿐이다.
쿠바에 오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휴양을 위한 장소로 바라데로나 플라야 히론을 택한다. 두 곳도 굉장히 아름답다고 들었다. 하지만 고요하고 평화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까요 레비사가 내겐 더 잘 맞는 것 같다. 바라데로와 플라야 히론은 너무 많이 알려진 곳이라 사람이 많거든.
숙소에 돌아와 까사 식구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땠냐는 질문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사벨라는 내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보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근사한 풍광에 대한 감탄과 평생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안타까움이 섞인 듯 했다. 지역 자원을 누릴 권리 1순위는 주민이 아니었던가. 내 마음에도 묘한 감정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