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친해지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고백하건대, 어느 때였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 자신을 학대해 왔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그것을 직면하고자 한다.
학대(虐待)는 사람이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어린이와 노인이 학대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는 주로 부모, 이모 등 친한 사람이다. 학대의 형태로는 권위의 남용, 불공정 또는 부당 이득 및 이익, 신체적 및 정서적 폭력, 상해, 성폭력, 위반, 강간, 부정행위, 불법 행위 또는 사용자 정의, 범죄, 기타 구두 침략 등 여러 형태로 볼 수 있으며, 학대를 당한 피해자는 심리적 외상과 불안을 포함해 만성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출처 위키백과
내가 스스로에게 가한 신체적 폭력은 뺨을 때린다거나 자주 다친다거나 하는 정도의 경미(?) 한 것이었던 것에 비해 정서적 폭력은 그 폐해가 심각했다.
그것은 실로 교묘하고 집요하고 자극적이어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비난과 힐난을 넘어 폭언과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자존감을 짓밟고 망신창이가 되게 뭉개버렸다.
끔찍했던 것은 피할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로부터 어디로 도망칠 것인가?
무간지옥 그 자체였다.
'도대체 왜 이 지경이 된 것일까. '
그렇게 되묻을 여유도 없이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면서도 어느 순간 그 자리에 끌려와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의 쾌감을 동반하기도 했는데 스스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때리고 나면 견디기 힘들었던 그 순간의 수치심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학대에 중독되어 갔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깊고 어둡고 은밀한 세계.
세상의 감각들을 되도록 차단했다.
어떤 감각을 느끼고 감정을 알아채는 것은 두렵고도 감당하기 힘든 자극이었다.
무엇인가 느끼면 문제가 생긴다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
컴컴한 동굴 속 더듬이를 잘린 개미처럼 나는 방향을 잃고 여기저기 헤매었다.
그러나 나는 간절히 길을 찾고 있었다.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헤매다 보면 어딘가 출구가 있을 것만 같았다.
나를 이 곳에서 꺼내어 준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가 되었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결혼을 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만나면서 다 괜찮았다. 좀 어른이 된 것도 같았다. 웬만한 일쯤 아무렇지도 않게 치워버릴 수 있는 스스로가 담대하고 의젓하게 느껴졌다.
나로부터 벗어나 아이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내겐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아이는 나의 온 집중과 관심을 요구했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물속에서 익사할 지경이다 뭍으로 나와 숨을 쉬는 것처럼 나에게는 안도감과 쉼을 주었다.
그 사랑스러운 생명체는 나의 불안함과 온갖 요동치는 감정들을 열 달 동안 함께 느껴서인지 무척이나 예민한 편이었다. 30개월 가까이 잠을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밤에 5~6번을 자지러지게 울면서 깼고, 걸을 수 있게 되면서는 자다가 울면서 뛰쳐나오고 그러다 넘어져서 거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한의원도 여기저기 다니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며 수면 무호흡인가, 코가 작아서 밤에 숨을 잘 못 쉬나, 검사할 수 있는 연령대가 되면 ADHD검사를 해봐야겠다는 등 별별 생각을 해봤다. 숙면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귤껍질 말려서 따뜻한 물에 족욕도 시켜보고 머리에 양파도 놓아보고 다리를 너무 아파해서 함께 살던 친정엄마와 교대로 마사지도 참 많이 해주었다.
밤에 그렇게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들들 볶다가도 새벽이면 눈을 반짝 떠서 놀이터를 가자고 했다.
(그 와중에 임신 동안 늘었던 10여 kg의 체중이 몇 개 월 만에 쏙 빠져서 흐뭇하긴 했다.)
어렸을 때부터 잠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던 내게 보초 서듯 잠자는 법을 훈련시켜 준 아이이건만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주변에서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흡사 은인을 공양(?)하듯 아이를 대했던 것 같다.
내 안의 껍질에 갇혀 스스로를 향해 쏟아붓던 뜨겁다 못해 데일 것 같은 따가운 눈초리가 아이에게 가면 그처럼 온화하고 부드럽고 자애로울 수가 없었다.
어떤 희망을 느꼈다. 내가 가진 본성은 원래 이렇구나.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 자신도 이렇게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함께 길을 걷던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본인도 추운데 자기 외투를 벗어주는 장면을 보면 정말 1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저건 어떤 마음일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가식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리고 저런 행동을 은근히 강요하는 분위기로도 여겨져서 하는 이나 받는 이나 보는 이나 어색하고 민망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이해되지 않아 불편했다.
아직도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는 신뢰가 많이 가지는 않지만, 나보다 상대를 더 아끼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은 동의가 된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길을 제대로 찾고 싶었다.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림 출처
https://corea0415.tistory.com/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