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수치심의 기원1

나랑 친해지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이야?

by 해븐

어디에서 이 지난한 역사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왜 스스로를 '학대'하는 방식을 오랜 세월 선택하고 지속해온 것일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최선의 선택을 한다."지 않던가.

그당시 나에게는 이것이 왜 '최선의' 선택이었고 생존방식었는지

내가 그런 사고방식을 선택하고 행동한 이유를 알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내 안의 수치심과 공포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공고화 되었는지 오랜 세월 찾아보았다.

그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놀라운 과정이었는데 그렇게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련의 경험들이 의외로 내부에 깊숙히 표식을 남겼기 때문이다.


나는 귀한 장남의 첫 손주였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엄마는 모성애가 강하고 헌신적인 분이었고 아빠는 많은 재능을 가진,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회적응에는 실패한 엘리트였다.

늘 의아했다. 그렇게 나쁜 환경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 안의 눈치보는 아이는 대체 언제 생긴 것일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타고난 기질이 환경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아쉽게도,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자극에 예민한 아이였고, 사람들의 정서상태, 분위기 같은 것들을 나도 모르게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던 부모님이 이룬 가정은 그야말로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처럼 위태로웠다. 늘 고성이 오갔고 술냄새가 났고 아침에 학교를 가기위해 거실을 나설 때 깨어진 유리를 밟지 않기 위해 조심거리며 나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언제 지뢰를 밟고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촉각을 곤두세웠다. 부모님의 싸움이 촉발될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지면 마음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초년 운은 부모운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어릴 때의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우리 부모님을 만나서 운이 좋다고 까지 생각했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정작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객관적으로 알기가 쉽지 않다.

그 속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것밖에 모르니까.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유년기가 내게는 참 견디기 힘든 자극의 연속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유년의 기억 한 조각은, 베란다 밖에서 울고 있는 5살 정도의 아이이다.

무섭고 어리둥절하고 수치스럽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군생활 중이셨고 엄마는 교직에 근무하고 계셨다. 1년간 할머니 손에 자라다 할아버지 병간호로 여력이 없으셨기에 다시 교사로 근무중이셨던 엄마에게 보내졌다. 당시 보모가 있었는데 울지말라고 간난쟁이 입에 수건을 물렸다고 한다.

이리저리 애쓰다 결정적으로 교사를 그만두라는 시아버지 말씀에 엄마는 교직을 그만두셨다.

이것은 여러가지 사정이 얽혀있는데 군에서 막 제대한 30대 초반의 아버지는 신학대를 가고 싶어했고 아들이 법조인이 되길 바라셨던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교직을 그만두게 하고 우리 가족에 대한 원조를 끊음으로서 그 길을 막고자 하신 것이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비실거리는 간난쟁이와 씨름하며 교직 생활하기가 여간 고된 것이 아니었고 시아버지가 내가 너희는 책임지겠다고 장담하며 그래야 네 남편이 제대로 자리잡는다며 설득하셔서 차라리 그만두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의견 충돌로 아이셋을 데리고 빈털털이로 나오게 된다.

운이 좋게 노량진에서 친구에게 방을 하나 얻게 되는데 모임장소로 쓰던 다른 방들을 청소하고 저녁밥을 해주는 조건이었다.

호된 군생활을 하고 나오신 서슬퍼런 아버지는 아이를 이렇게 제멋대로 키웠냐며 나름의 방식으로 훈육하셨다. 한참뒤에 기억이 난 건데 어렸을 때 나는 내 의견을 나름 당당하게 이야기 할 줄 아는 아이였었다.

그 당시 모임을 하던 아저씨 무릎에 앉아서 나는 내 남편을 공처가로 만들꺼라는 둥, 어디서 들었는지 내 말을 강하게 어필하기위해 '분신자살'이란 극단적인 표현도 썼던 것 같다. (그 당시 노동운동을 하던 모임이었다.) 그냥 어른들은 귀엽게 봐주며 박장대소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클 수록 점점 위축되어서 말 한마디를 하고도 괜히 그런말을 했다고 자책하고 검열하고 땅만 보고 다니는 아이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 나를 떠올리고 너무 새삼스럽고 놀라웠다.

그 둘 다 나이겠지만 차이가 심할 정도로 많이 났다.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하거나 불분명하게 하면 지적당하고 창피당하고 혼난다는 생각에 늘 주눅들었고

동생들과 놀 때 이외에 나는 스스로가 그렇게 창피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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