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뇽 델 수미데로, 멕시코 - MEXICO
20141004 오! 강렬한 멕시코의 태양! 모자와 선크림 없이는 관광할 수 없어
약 15일간의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탐색을 끝냈다.
이주가 넘는 시간 동안 뜨끈한 물이 잘 나오고 아침 식사를 꼬박 챙겨주는 저렴한 호스텔에서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책도 읽고, 스페인어 학원을 등록했다. 2주에 150페소, 약 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의 삐걱거리는 기구들로 운동할 수 있는 짐도 등록해 운동을 하고 있다. 살사도 배워보려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막대기 같은 남편과 마음만 앞선 마누라에게는 아직 용기가 필요하다. 학원에서 제공해주는 액티비티로 한번 시도한 후 아직 재도전하지 못 했다. 호강에 겨운 쉼에 쉼표를 찍고 수요일엔 밤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와하까 oxaca로 이동하기로 정했으니 남은 4박 5일을 알뜰하게 보내야 한다.
어제 2주간의 학원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과달루뻬길에 있는 여행사에 들러 까뇽 델 수미데로 Canon del sumidero(수미데로 협곡) 반일 투어를 한 사람당 250페소에 예약했다. 렌터카를 빌려 여기저기 다녀볼까도 했지만 때로는 여행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일 때가 있다.
'토요병'을 이기지 못해 또 늦잠을 자다가 결국은 미역줄기 같은 머리를 따스운 아침 햇살에 말리며 여행사까지 달려갔다. 여행사는 9시 출발이라고 8시 50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9시가 거의 다 되어 도착했기에 여행사 200미터 전부터는 어글리 코리언이 되지 않기 위하여 더 빠르게 달려갔다. 그러나 예상대로 그들은 우리를 길바닥에 30분 가까이 기다리게 했고 마누라는 라티노 띠엠뽀(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시간 개념)를 또 잊어버리고 혼자 아침부터 난리 부르스를 떨었다며 후회를 한다. '아침 먹고 올걸, 아침 먹고 올걸'을 다섯 번은 중얼댄 것 같다.
그렇게 출발해 50분 정도를 달려 치아빠 데 꼬르쏘 chiapa de corzo에 위치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브라질에서 온 중년의 부부와 셀카봉과 한국의 드라마, 가고 싶지 않은 누드비치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나누다 보니 우리가 탈 통통 보트가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에 배에 탄지 3분도 되지 않아 날숨이 뜨끈해진다. 중남미 여행하며 선크림도, 모자도, 선글라스도 안 챙겨온 서로를 심심하게 위로하며 3시간 가까이 진행될 투어를 시작한다.
배를 타고 이삼 분 앞으로 나아가다가 우리를 기다리는 관리자들에게 팔에 두른 노란색 팔찌를 손을 흔들어 보여주는 것으로 정식 입장 허가를 대신한다. 동시에 거대한 절벽들과 우기로 탁해진 강물이 눈 앞에 펼쳐진다.
까뇽 델 수미데로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아주 귀찮은 듯 반겨준 주인은 바로 악어였다. 세워놓으면 내 키만 할 악어 한 마리가 마치 일부러 데려다가 눕혀 놓은 모양으로 어색하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관광지 사는 악어라 서비스 정신을 아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몇십 명의 관광객들이 사진을 빵빵 찍는데도 무거운 몸으로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배를 돌리려 하자 입을 쩍 벌려주는 퍼포먼스를 제공한다. 자연산 악어를 처음 보는 마누라는 '저거 분명 데려다가 양식하는 거야.'라고 남편의 동심을 깨는 소리만 연발한다. 그러나 까뇽 델 수미데로에서 양식으로 하기에는 참 많은 악어 가족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올 땐 '내 맘대로 양식설'을 접고, 관광지에서 사람 머리를 먹을랑 말랑한 훈련된 악어가 아닌 '야생 악어'를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두어 시간이 짧다고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절경이 쉬지 않고 눈앞에 펼쳐진다. 앞뒤, 옆 모든 외국인들도 입을 벌리고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기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전체 루트의 반 정도를 달렸을까, 다들 정신을 놓고 까뇽을 누리는 도중 배가 갑자기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생기 있고 힘차게 흘러가던 강줄기가 더러운 오물과 나뭇가지들이 뒤엉킨 쓰레기 늪 앞에서 멈춰 선 것이었다.
가이드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코멘트를 달기도 전에, 우리가 탄 통통배의 선장님은 아주 자연스레 모터를 확인하며 저 쓰레기들을 지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기가 막힌 모습 앞에 우리 배에 탄 모든 관광객들은 아무 말없이 시선을 고정시키고 가이드의 변명처럼 들리는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악어와 펠리컨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들의 서식지인 이 아름다운 자연의 작품, 까뇽 델 수미데로의 한 구간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린 쓰레기들은, 우기 때마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들이 빗물에 흘러내려 강물을 타고 이곳에 모여 쌓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아니, 우리가 길거리에 무심코 버린 쓰레기가 비가 많이 오는 날마다 조용히 조용히 이곳에 흘러와 자연을 이토록 아프게 하는 것이다.
적막한 가운데에도 이 믿고 싶지 않은 광경에 꼭 잘 어울리는 검은색의 음침한 새들이 쓰레기들 사이사이로 먹이들을 골라 먹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위대한 자연을 누리기 위하여 모인 인간들, 결국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 위에 둥둥 떠있다.
자연은 위대했지만, 인간은 참으로 대단했다.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어 놓은 까뇽 델 수미데로의 쓰레기 구간을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통과할 수 있었다. 아무도 짧은 그 순간 동안 가벼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깊은 반성이 너무 짧아 자연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그 다음 구간부터는 돌아올 때 다시 만날 쓰레기 구간에 대한 염려조차 싹 달아나게 만들 놀라운 절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우리 보트는 곧 좀 전의 숙연함에서 벗어나 활기를 되찾아 간다.
100년에 1센티씩 공들여 쌓고 있는 석회탑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색감의 바위 절벽, 아낌없이 쉬지 않고 내뿜는 폭포의 물줄기와 그 아래 생명수를 맞으며 열심히 일어나고 있는 푸른 생명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때마다 만나는 자연은 정말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생각했다.
인간은 자연에게 어떠한 존재일까.
종일 누린 경이로움 앞에서 마음껏 흥분할 수 없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