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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song Sep 28. 2015

두 개의 세계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 멕시코 - Mexico

2014년 10월 7일

날씨가 너무 좋다. 비도 아주 가끔, 보기 좋게 내린다. 우기가 거의 끝나려나보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장기 여행자들에게나 관광객들에게나 경부선 만남의 광장과도 같은 마을이다. 지친 배낭여행자, 도심의 피로를 벗어던지고 싶은 사람들, 조용한 마을에 들어앉아 언어를 공부하거나 춤을 배워보고 싶었던 사람들. 이런 저런 사람들이 쉬어가는 매력적이고도 담벼락이 낮은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지는 생활물가나 치안이 좋다는 것이 아무래도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20여 년 전 이곳에서 일어났다던 민족 해방 운동을 외치는 무장단체와 멕시코 군대와의 살벌했던 격전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시청 어딘가에 '그날'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었을 총탄의 자국들이 남아있다기에 눈여겨보았지만 독립을 기념하는 예쁜 오색 전구 장식 말고는 찾을 수가 없다.

   





도시라고 부르기엔 소박한 마을 곳곳에선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돌길을 다듬고 페인트칠을 하고 있고, 상점과 식당들이 즐비한 과달루뻬 거리는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번성해 왔던 것처럼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다. 


이곳이 1994년 1월, 11일간의 치열했던 농민 봉기의 현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인디오 시장에서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EZLN이라는 빨간 글씨가 새겨진 검은색 스키 복면들과 아는 사람만 찾아갈법한 큰 식당의 2층 구석에 위치한 사파티스타들의 마을에서 흘러나온 그림을 파는 가게 정도밖에 없다. 1994년이면 내가 9살이었구나. 그날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곳저곳 찾아보았다. 인디헤나의 위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을 즐거워했긴 했어도 '사파티스타들의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하여는 책의 한 페이지에서 대충 훑터보기만 했지 결코 많은 지식이 없다. 




사파티스타 페인팅. 내용을 떠나 소재가 너무 참신해 다 사오고 싶었던 작품들.



참 이해될법한 일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20년 전 이곳에선.



언젠가 신랑과 과달루뻬 길을 바라보며 여기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참 살기는 좋지만 살기가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의 전경이 내다보이는 과달루뻬 성당의 계단 꼭대기에 앉아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두 개의 세계가 한 시간대에 살고 있는 곳이다. 


언덕 위에 아슬하게 흔들리는 인디오 마을의 전깃불들, 

밤이 되면 불에 탈 듯 화려해지는 과달루뻬 길의 가로등들. 








스페인어 예배가 불가능한 마야인들만의 교회가 있는 인디헤나 마을과, 

그리고 밤낮으로 외국인이나 피부가 희고 키가 큰 사람들에게 활짝 개방되어 영어와 각국 언어로 소개되는 세련된 교회가 있는 크리스토발의 시내. 



소깔로에 모인 인디헤나들이 한 그룹, 그리고 돈 많아 보이는 혼혈이나 백인인 본토 사람들과 또 그들과 비슷하게 생긴 관광객들이 또 한 그룹. 이렇게 두 그룹으로 크게 나뉠 수 있는 사람들이 낮에는 마림바 소리와 성당의 신나는 폭죽 소리에 파묻혀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서로에 필요에 의해 이래저래 섞인 듯 보이겠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인디헤나 소녀가 예쁜 위삘을 입고 하나에 천오백 원 하는 빵을 먹기 위해 빵집에 들어와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깔도 caldo를 먹을 때에도 나는 밥을 먹고 인디오 소년들은 구두를 닦는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나는 커피를 마시고 7살짜리 꼬마 애는 맨발로 엄마가 만든 팔찌를 나에게 팔기 위해 종업원의 눈치를 보며 가게로 들어온다.

어쩌다 지나가다 부딪쳐 장작을 피우다 온 몸에 탄내가 배어버린 그들의 살 냄새를 맡을 수는 있지만, 나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에서 이곳의 인디헤나, 그러니까 이 땅의 원래의 주인들과는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밤이 화려한 과달루뻬 거리





이렇게 정확히 '분리'된 두 세계가 2014년 현재를 이곳에서 각자 살고 있는 것이다. 중남미에 살며, 그리고 여행하며 그렇게 (분리된 세계처럼) 느껴지는 곳이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뿐만은 아니었지만, 여기, 이 마을이 백팩커인 나에게 주는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이 이런 안타까움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주일 오후, 산골짜기에 사는 바닥도 없는 집에 사는 우리 엘살바도르 아뽀빠 마을 어린이들도 예배당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술을 배우고 성경을 배우고 가끔은 맛있는 피자도 먹고 선물도 받고 하는데, 아직은 얼굴이 내 주먹보다 좀 클법한 꼬맹이들이 학교 책가방에 사탕이며 팔찌며 바리바리 싸 들고 나와가지고는 얼굴이 다른 외국인들에게 가격을 흥정하는 것으로 수학을 익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많이 상한다. 여기 눌러앉아 그림이라도 가르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마음은 도착한 순간부터 들었어도 여기서 쉬는 내내 신나게 누리고 놀기만 했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학교에 있을 시간에 돌아다니며 팔찌를 파는 원주민의 자녀들. 팔찌 열 개는 팔아야 먹을 수 있는 빵을 하나 사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은,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는 이런 이면도 있는 마을이다. 



지금 쓰는 글에서 나는 현재 내 눈에 보이는 관광객들의 외모와 비교되는 원주민들의 초라한 초상을 나열하긴 했지만, 이 순수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20년 전 여기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의 광장에서 상대해야 했던 것은 여기 우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관광객들이 아니었다. 거의 반 천년 가까이 땅, 언어, 문화 등 모든 것을 이들에게서 빼앗아 자기들의 신세계를 건설하며 이들 위에 군림한 사람들이었으며, 오랜 시간 축척된 그들의 힘과 돈이었을 것이다.     



 지난 500년, 곧 1492년 스페인이 이 땅을 침략한 그때부터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인종차별, 가난, 폭력 등에서부터 태동된 그들의 '슬픔들'을 사파티스타 민족 해방군 마르코스가 이끌고 터트려 낸 것이 바로 20년 전 이곳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멕시코의 반정부주의자들 곧 이 사파티스타들은 그일 이후로도 계속 인디헤나들의 전통 옷을 그대로 입고 얼굴엔 복면을 쓰고 칼과 총 대신 매체와 캠페인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있는 사파티스타의 행진, 이미지 출처: 노티시아스네트




우리 부부도 멕시코를 여행하며 전국 곳곳에서 원주민들과 그들과 뜻을 함께한 이들이 삶다운 삶을 위하여, 그들의 '존재'를 위하여 외치고 걷고 부르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파티스타들의 운동이 어떤 이들에게는 체 게바라의 부활로 여겨지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단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른다. 그리고 한국사도 점수가 낮았는데 세계사는 오죽했으랴. 그러므로 우리 부부는 이들이 외치는 구호가 무조건 적으로 옳고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인지 인터넷의 기사들과 책 안의 몇 자 설명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어도 그들이 '왜' 지금까지 그렇게  달팽이 마을(사파티스타 자치 구역) 밖의 세계와 담을 쌓고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지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내일, 밤차를 타고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까사스를 떠나기는 마지막 날 신랑과 사파티스타들의 마을 오벤틱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그들의 외치는 구호가 어떤 톤의 음성으로 들리워 질지, 사진으로 보던 그들의 벽화 속 필력은 어떠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무언가 들어야 될 이야기들을 들을 날이 다가오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레는 밤이다.










사파티스타의 민족 해방 운동에 관한 네이버 케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207


사파티스타 관련기사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6181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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