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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song Sep 14. 2015

셀라의 밤 공기는 너무 차

께찰떼낭고, 과테말라 - Quezaltenango, Guatemala

20140905 여전히 춥고 스산하고 비 오는 날씨

 




쉘라에 도착한 지 사흘 째.


백인 시골 할머니 댁 같은 호스텔은 가끔 밟는 곳 바닥이 퍼더덕 주저앉는다. 신랑이 열이 많아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밤에 얼어 죽을  뻔했다. 할머니 (white house이라는 호스텔)이 영 맘에 안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하루 2만 원 돈 하는 130 케찰을 매일 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 뜨자마자 집을 구하기 위해 굽이굽이 이어지는 쉘라의 뒷골목을 두손 꼭 잡고 휘젓고 다닌다.








오늘 안에 한 달짜리 저렴한 집을 구하지 못한다면 스페인어 능력 시험을 포기하든지 홈스테이로 들어가든지 하기로 하고 두 볼 위로 다크서클을 사뿐히 올려놓고 걷고 있는데, 촉이 좋은 부부가 municipio(시청?) 앞에 멈춰 무언가를 발견했다. 위삘을 입은 인디헤나 아주머니들이 바닥에는 솔잎을 뿌리고 아저씨들은 지독한 향을 피우며 돌아다니시기에 '여기 무언가 있구나!' 하며 고개를 빼꼼 내미니 'Pase adelante! 들어오세요!' 라신다.







시청의 연회실 같은 곳에 아름다운 연주가 울려 퍼지고 초코 라떼와 예쁜 빵도 나누어 주기에 나는 누군가의 결혼식이 있구나, 방해하지 말고 어서 나가야지 했는데 자꾸  앉으란다. 알고 보니 오늘이 주일에 있을 Flor nacional del pueblo maya플로르 나씨오날 델 뿌에블로 마야, 말하자면 '미스 인디헤나' 경연대회의 후보 등록일이다. 듣고보니 더 보고싶어 조용히 나란히 앉아 이 생소한 풍경들을 지켜보았다.

 



 



앞쪽에서는 전년도 레이나(reina-왕비:미스코리아 진선미와 같은 개념이다)들이 왕관을 쓰고 접수를 받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인디헤나 마을의 대표 참가자 소녀들이 사람들의 소박한 박수갈채를 받고 등장해 인디헤나들의 정중한 방식으로 인사를 한 후 후보 등록을 한다. 







뜰에서는 등록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인디헤나 아가씨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인디헤나의 위삘을 수집해 오면서 그들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순간들이 정말로 많았지만, 여전히 사진기가 영혼을 뺏어간다고 믿어서인지, 혹은 다른 이유에서 일지라도 사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들에게 덜컥 렌즈를 들이대면서까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가까이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왔던 순간들이 숱하다. 

 



산 뻬드로 쏠로마의 '레이나'. 나중에 산 뻬드로 솔로마를 지나갈때 아주 우연히 행진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곳 아가씨들은 흔쾌히 포즈를 취해주기도 하고 덜컥 본인들의 갈라용 위삘을 벗어 입어 보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아드레날린이 900퍼센트 올라간 상태로 조심스레 셔터를 눌러댄다. 중학생이 되어 에이치오티 오빠들과 대면한 기분이었다. 충분히 너무나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이 대회는 주일 오후 7시, 께찰테낭고 시립 극장에서 진행되고, 과테말라 전국의 117개의 크고. 작은 인디오 마을 중 약 60여 개 인디헤나 마을의 레이나가 참여한다고 한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인디헤나 아가씨는 이곳, 인디헤나들의 수도인 께찰테낭고(원래 과테말라의 수도는 씨우다드 과테말라 Ciudad de Guatemala)의 가장 큰 행사인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제일 높고 화려한 곳에 앉아 수많은 사람들에게 레이나의 미소와 인사를 선물할 것이다. 과테말라를 지나가길, 그리고 여기 께찰떼낭고에 들리길 참 잘했다. 과테말라 시티의 위삘 박물관에서 산 지도에 나온 위삘중 60개 이상을 그날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기분이 참 좋다.


 

우린 이렇게 아침부터 큰 '은혜'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오후엔 월 20만 원짜리 좋은 방도 구할 수 있었다. 3개월째 축구팀의 콜을 기다리는 캐나다인과 쉐어 하는 아파트인데, 깨끗하고 뷰도 끝내주고 께찰떼낭고의 맛있는 커피까지 무료로 언제나 마실 수 있다. 







아, 정말이지 사람에게 집이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단 두개 남은 오징어 짬뽕을 끓여 먹고 잤더니 광대만 남고 푹 들어간 얼굴살들이 다시 올라오기 시작한다. (축구 오빠에게 한 입 권했더니 맥시코께 더 맵다고, 하나도 안맵다고 그러다가 나중에 사래걸려 화장실로 튀어갔다. 한국인의 매운맛을 너무 얕잡아 보았어!) 



그래도 여전히 쉘라의 밤 공기는 너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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