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비밀 4부

에세이

by 코코조조

만약

할머니가 폐병에 죽어가셨을 때

내가 나서서 할머니를 치유하지 않았더라면

할머니는 더 살았기 때문에 받았던

어머니의 구박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할머니의 뼈를 부셔

할머니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늦게 돌아가셨을 것이고

나는 할머니에게 매번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준 수명으로

할머니가 겪은 불필요한 고통은

위에 적은 것만 있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남이 내게 도와달라고 해도

나의 목표와 관련이 없으면 그냥 무시한다

인간의 시야는 매우 좁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나의 도움이 나와 그 사람의 인생을

절망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걸

할머니의 수명을 연장함으로써 배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할머니는 내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고

할머니의 수명 연장은 오로지 나의 욕심이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내게 준 사랑을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순수한 사랑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할머니가 성별에 구애 없이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았더라면

손자의 성별에 집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다른 형제처럼 대학까지 졸업하셨다면

나의 별명은 ‘조박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면

‘영감’도 나의 별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 대한 어머니의 조종(사랑)이 서툴렀다면

할머니의 조종(사랑)은 매우 능숙하여

나는 그게 통제의 다른 모습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어머니, 할머니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이 자아의 지배 아래 있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

나는 과거에 남겨진

그리움, 죄책감, 후회, 원망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내 마음을 바라본다

그리고

자아가 제작해 놓은 그럴듯한 신파극을 부정한다

과거에는

아름다운 것도 그리운 것도 비극적인 것도 없었다

나는 일어나지 않은 가공의 스토리를

진짜로 여기며 웃고 울기를 반복한

관객이었을 뿐이다

이젠 영화를 진짜라고 여기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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