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용서해야 하는 주제 중 하나는
나보다 아는 거 좆도 없으면서 가르치려 드는
사람을 혐오하는 나의 태도이다
사실 패버리고 싶을 정도로 싫다
일단 마주치게 되는 그들에 대해 말해본다
그들의 외양은 다양하다
그들은 자신이 뭐라도 알고 있는 양
다양한 철학적 화두를 던지지만
방향성이 없고 일관성도 없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효과가 있다고 믿는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들은 그런 해결책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 대부분은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거나
현상을 자신의 주관대로만 해석한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외양은
과거 나의 외양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영적 원리 중 하나는
자신에게서 제거했다고 믿는 모습이
외부로 투사된다는 것이다
사실 제거된 게 아니라
내보기 싫어 마음 깊숙이 숨겨 놓은 개념이
외부로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드래건 볼에서
용족인 신이 ‘선한‘ 신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악한‘ 자아인 피콜로를 떼어냈듯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내보이기 싫은 모습은
외부로 투사된다
이게 마음의 양극성의 원리이다
예를 들어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데 설쳐대는 모습을 싫어하면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기 마련이다
불결한 걸 싫어하면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이
더 이상 나타나는 게 싫다면
싫어하는 걸 싫어하지 않도록
마음을 훈련 시키는 방법 말고는 없다
피하면 같은 유형의 다른 사람이 나타날 뿐이다
나의 경우는
무식한데 아는 척하는 부류의 모습을
내가 억압하고 있는
나의 다른 모습이란 걸 인정한 뒤
수업의 방식으로 용서한다
그들을 싫어해서 생기는 감정을 원치 않으므로
나는 그들이 싫은 이유를 그들에게서 찾지 않고
나의 내면에서 찾고 교정하겠다
수준 미달인 자가 남의 가르치려 드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기적수업의 성령과 함께 교정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가르치려 드는 것도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도
수준 미달인 것도 수준 이상인 것도
나는 이러한 것들을 용서하여 지나가겠다
(기적수업의 성령은 기독교의 성령과 뜻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