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

by 코코조조

영감


어릴 적부터 나는 고집이 겁나 쎘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내게 영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영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게 불편하다고 느낀 건 여러 경험을 하고 나서이다. 그래서 요즘은 공기처럼 살려고 노력한다. 있는 듯 없는 듯.


기적 같은 일을 계기로 영감 같이 절대로 꺾지 않고 유지해온 나의 가치관, 생각, 감정들을 명상으로 걷어내기로 했다. 초자연적인 기적은 아니지만 고집불통 영감 페르소나는 너무나도 나와 동일시되어 있었고 옵션으로 이성적으로 보이기, 쿨해 보이기 능력도 있었다(한 단어로 쿨찐). 그리고 난 그런 나의 성격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가면을 벗어낼 의도를 가지게 된 것 자체가 나에게는 기적이다.


내 마음속 생각과 감정들을 지우려 하기 전에는 내 마음과 나는 운명 공동체였다. 내가 마음이고 마음이 나였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 생각과 감정대로 행동했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마음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관점에서 마음을 바라보자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해 왔던 생각과 그 사고체계가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있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내 마음속에 생각과 감정들을 버리기 시작하자. 내 마음은 소중한 뼈다귀를 입에 물고 주지 않으려는 개처럼 군다. 왜냐하면 마음은 버리려는 생각과 감정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속의 상념(想念) 그리고 죄책감과 두려움을 지워낼수록 이 작업이 내 삶의 최종 목표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내 마음이 자기 걸 내 멋대로 가져가 버리지 말라고 투정하거나 회유하거나 노선을 바꿔 극심하게 나를 비난하거나 겁을 주더라도 나는 간혹 흔들릴지언정 다시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며 그것들이 사라지게 한다.


원래 거기에 그것은 없었다.


이 작업을 하다 보면 더 이상 마음속에 지울 게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여름에 수박을 양껏 먹고 바람 솔솔 부는 정자에서 배를 까고 누워 있는 것처럼 몇 시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있게 되니까. 그러다가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 뭘 먹을지 고민한다.


내 마음속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기억되는 사건들을 포기하지 않고 지워내다 보면 내 마음은 뼈다귀를 보이지 않는 곳에 숨기는 개처럼 상념과 감정들을 내가 쉽게 볼 수 없는 무의식으로 숨긴다.


의식상에 버릴 만한 생각과 감정을 찾기 어려워진 나는 게임광이 게임 속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모두 찾아내려는 것처럼 무의식 속에 숨겨진 생각과 감정을 찾기 시작했다.


우선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시켰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무의식적인 행동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내 마음은 왜 그 상황에서 그런 생각과 감정으로 인한 행동을 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 무의식을 탐색하는 방법은 꿈이다(꿈의 내용이 자신에게 무엇을 상징하는지 수많은 경험 없이는 적절한 해석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결국은 경험이 필요하다). 나는 깨어날 때 꿈이 기억나면 앉아서 눈을 감고 마음을 고요히 한 뒤 내 마음이 왜 그 꿈을 꿨는지 생각해본다.


간밤의 꿈속에 과거 직장 동료들 그리고 친구가 나왔다. 최근에 내가 누군가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 이상 심리 상담을 하려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이것이 반영된 꿈을 꾼 것이다.


꿈속의 나는 과거 상담 센터에서 일했던 시절의 나였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지역으로 갈 참이었다. 동료들이 집 앞까지 찾아와 내게 무슨 말을 했다. 뭐라고 말을 들은 게 있는데 기억이 안 난다. 놓쳐버린 물고기를 다시 잡으려 물속에 들어갈 필요는 없으니(어렴풋한 기억을 믿지 않는 편이다.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을 조작하기도 하니까) 기억이 생생한 친구와 함께 있었던 꿈 이야기를 하겠다.


동료들과 헤어지고 나는 시간에 쫓겨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운전을 내 친구가 해줬다. 나는 조수석에서 그 친구의 운전을 보며 매우 답답해하다가 결국에는 내가 운전을 했고 나는 빗길에도 거침없이 운전을 잘해냈다.


여기서 발견한 내 마음에서 지워내야 할 주제는 내가 상대방의 행동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내가 더 낫다는 걸 과시하려는 태도다. 이미 나는 내게 이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 마음의 판단적 태도를 내려놓기 위해 정말 많이 이 태도를 바라보고 올바른 태도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거의 평생을 경쟁하며 살아온 습성이 쉽게 지워지진 않았나 보다. 그래도 어쩌겠나 다 지워질 때까지 마음을 고요히하고 마음을 바라볼 수밖에. 끝.


추신. 글을 고치다 보니 꿈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내 마음의 급한 성미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급한 성미도 명상하고 바라보며 지워내야겠다. 돌이켜보면 이 성미로 일을 그르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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