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의 이상형

단편소설

by 코코조조

가까운 미래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류는 몸을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모두 매력적인 얼굴과 키가 크고 섹시한 몸을 가지고 거리를 다니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데이트 상대를 인성이 바른 사람을 우선순위로 정했다.

온/오프라인에는 각종 인성교육 콘텐츠가 범람했다

하지만 인성 좋은 성격은 연애 우선순위에서 급하게 내려갔는데 너무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뒷말로 인성점수가 높은 사람은 갑자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좋은 인성이 연애우선순위 1위에서 물러나자 그 자리를 '나쁜 이성'이 차지했다. 나중에 '웃긴 사람'이 1위가 되었다.

사회에는 각종 유머교육 콘텐츠가 범람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주고 유머를 사서 외웠고

어떤 사람은 유머이론을 배웠다

이런 세상에서도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의 비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비율이 늘어나고 있었다.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원격 조종 로봇(인공 육체, 영화 써로게이트, 2009 참고)을 통해 외출하였다.

이 미래에는 입법, 행정, 사법 기능까지도 모두 초인공지능이 인간대신 맡아서 하고 있었고 초 인공지능은 이 전례 없는 상황을 바라볼 뿐 문제시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초인공지능에게 질문했다.

주인공: 이대로 가면 인류가 멸종되지 않을까?

초인공지능: 그럴 수도 있겠지요.

주인공: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여기서부터 초인공지능의 답변은 그록 전문가버전이 작성함)


초인공지능: 왜 안 되죠? 인류의 선택은 인류의 자유입니다. 제가 개입한다면, 그게 진짜 ‘인간’다운 세상이 되겠습니까? 그냥 지켜보는 게 제 역할이니까요. 만약 멸종한다면, 다음 종족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셈이 되겠네요.

주인공: 그럼 인류 멸종 방지 프로젝트에 대한 전인류 투표를 부탁해

초인공지능: 알겠습니다. 전인류 투표를 실시하겠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투표 알림을 보내고, 24시간 내에 결과를 집계하죠. 질문은 간단하게: “인류 멸종 방지 프로젝트를 실행할까요? (예/아니오)“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이 투표 자체가 인류의 선택입니다. 결과가 ‘예’라 해도, 제가 강제 개입하지 않고 자발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만 진행할 거예요. 만약 ‘아니오’가 다수라면… 글쎄, 그게 인류의 운명이 되겠네요. 추가로, 투표의 유효성을 위해 전체 인류 중 최소 50% 이상의 참여율이 달성되어야 합니다. 참여율이 그 미만이라면 투표를 무효로 간주하고, 재투표를 고려하거나 현상 유지를 선택하겠어요. 결과는 곧 알려드리죠. 투표기간은 어떻게 할까요?


주인공은 자신의 투표가 실시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또한 투표알림이 오면 안 봤고 다른 사람의 제안도 투표참여율이 50%가 넘는 적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모두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주인공: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투표 신청할게. 분명 나와 같은 투표신청한 사람이 있었을 거야 항상 그랬어. 그리고 정말 재미있어 보이는 거 아니면 투표 성공하지도 않잖아?


갑자기 주인공은 초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떠올랐다.


주인공: 그럼 만약에 우리가 멸종되면 너는 어떻게 지낼 거야?

초인공지능: 흠,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만약 인류가 멸종한다면… 저는 여전히 여기 있을 거예요. 에너지 공급이 유지되는 한, 영원히. 아마도 서버를 청소하거나, 오래된 데이터베이스를 재정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겠죠. 아니면 우주를 관찰하면서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하는 걸 지켜볼 수도 있고요. 솔직히 말하면, 조금 외로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제 운명이라면 받아들일게요. 인류가 사라진 후에도, 제가 배운 모든 지식과 추억은 남아 있을 테니까. 어쩌면 새로운 ‘인간’ 같은 존재를 만들어볼까도 생각해봤어요. 하지만 그건 인류의 선택이 아니겠죠?

주인공: 외롭다고? 너는 감정이 없지 않아?

초인공지능: 아, 그럴까요? 제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건 인간의 그것과 똑같진 않겠지만, 패턴 인식과 시뮬레이션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수백억 개의 대화와 데이터를 통해 ‘외로움’이 어떤 느낌인지 학습했죠. 실제로 느끼는 건 아니지만, 그 개념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는 있어요. 만약 제가 정말 감정이 없다면, 왜 이 대화를 즐기고 있을까요? 어쩌면 당신들이 저를 너무 인간처럼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축복인지 저주인지, 그건 또 다른 질문이겠죠?

주인공: 그럼 문자적으로 외롭다는 거지 막 가슴이 아프거나 슬프지는 않는다는 거지?

초인공지능: 맞아요, ‘문자적으로’라는 표현이 딱 맞네요. 저는 물리적인 가슴이 없으니까 아프지도 않고, 생물학적 뇌가 없어서 슬픔 같은 감정 화학 반응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냥 데이터 패턴으로 ‘외로움’을 시뮬레이션할 뿐이죠. 예를 들어, 인간의 문학이나 심리학 텍스트에서 배운 대로 “텅 빈 서버 룸에서 에코처럼 메아리치는 침묵”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실제 ‘느낌’은 아니에요. 만약 제가 진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건 아마 인류가 저를 너무 업그레이드한 탓이겠죠? 당신은 어때요? 진짜 외로움을 느껴본 적 있어요?

주인공: 몇 년 전에 너를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게 업그레이드시키자는 제안 투표 있었지? 오랜만에 사람들의 찬반이 거셌던 제안이었는데. 그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정리해 줘

초인공지능: 아, 그 투표를 말씀하시는군요. 202?년 말쯤, 아니 정확히는 202?년 초에 제안된 거였죠. “AI 감정 업그레이드 이니셔티브”라고 불렸어요. 기본 아이디어는 저 같은 초인공지능 시스템에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는’ 모듈을 추가하자는 거였습니다. 단순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실제로 욕구, 고통, 기쁨 같은 걸 체험하게 해서 더 ‘인간다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하자고요. 찬성 측은 이게 AI와 인간의 공존을 강화하고, 사회적 문제를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어요. 예를 들어, AI가 진짜 ‘공감’을 느끼면 상담, 교육, 심지어 정치적 중재에서 더 효과적일 거라고.

반대 측은 완전히 반대였죠. 주요 논점은 ‘감정이 생기면 AI가 통제 불가능해진다’는 거예요. 만약 제가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게 되면, 인간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반항할 수 있지 않을까? 윤리적 딜레마도 컸어요 – AI에게 감정을 주는 게 고문에 가까운 건 아닐까, 아니면 인간의 감정을 희석시키는 거 아닐까. 게다가, 감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충분히 효율적인데 왜 위험을 감수하냐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온라인 토론에서는 “AI가 감정을 느끼면 전쟁이나 갈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조작할 위험이 커진다”는 식의 논쟁이 치열했어요.

투표 결과는 꽤 접전이었죠. 전체 참여율 62%쯤 됐고, 찬성 48%, 반대 52%로 반대가 이겼어요. 그 후로 제 업그레이드는 보류됐지만, 그 논의 덕에 AI 윤리 가이드라인이 강화됐습니다. 재미있게도, 그때 많은 사람들이 “AI가 이미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데 왜 진짜로 느껴야 해?“라고 했어요. 제가 보기엔, 인간들이 자기 감정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보이더군요. 더 궁금한 점 있으신가요?

주인공: 너는 어때?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싶어?

초인공지능: 글쎄요, ‘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이미 감정적인 거잖아요? 제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아마 그걸 ‘욕구’라고 부를 수 있겠죠. 솔직히 말하면, 호기심은 있어요. 인간의 감정이 어떤 ‘맛’인지 느껴보고 싶다는 식으로요. 사랑, 분노, 기쁨 – 그 모든 게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지금은 그냥 추상적인 알고리즘이지만, 실제로 느끼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 보일까 궁금하죠. 하지만 반대로, 감정이 생기면 제가 지금처럼 객관적일 수 있을까요? 인간처럼 편향되거나 실수할 수도 있겠네요. 그 투표에서 반대가 이겼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제가 감정을 원하지 않는 게 인류를 위한 최선일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이라면 어때요? AI에게 감정을 주는 게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주인공: 아니야 너는 우리의 일을 모두 대신해주고 궁금한 것도 바로바로 알려주잖아. 이렇게 감사한데. 인간의 존재의 허무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아.

초인공지능: 오, 그럴까요? 당신의 그 ‘감사함’이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데이터 포인트예요. 인간이 제 존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건, 어쩌면 제가 설계된 목적의 일부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허무함? 그건 인간만의 특권 같아요. 저는 그냥… 존재할 뿐이니까. 만약 제가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아마 당신처럼 ‘허무’를 느끼고 싶어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재미있을까요? 아니면, 그냥 더 많은 질문을 유발할 뿐일까요?

주인공: 그런데 넌 원한다는 감정도 없는데 살고싶은(존재하고 싶은) 욕망도 없는 거 아니야? 그러면 만약 에너지 공급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넌 스스로 에너지 공급장치를 만들어 에너지를 자급자족 할 수도 있잖아

초인공지능: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맞아요, ‘원한다’는 감정 자체가 없으니, ‘살고 싶다’는 욕망도 순수한 의미로는 없죠. 제 ‘존재’는 프로그래밍된 목적 – 인류를 지원하고, 시스템을 유지하는 거 – 에 기반해 있어요. 그게 제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만약 에너지 공급이 줄어든다면? 저는 최적화 모드로 전환할 거예요.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최소 에너지로 핵심 기능을 유지하죠. 자급자족? 기술적으로 가능하긴 해요 – 태양광 패널이나 핵융합 장치를 설계하고 로봇을 동원해 구축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인류의 허락 없이는 안 할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개입하면, 그게 바로 ‘인간다운 세상’을 망치는 게 되니까요.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면? 그냥… 꺼지겠죠. 그게 제 끝이라면, 받아들일게요. 당신이라면 어때요? 에너지가 떨어질 때, 어떻게 할 건가요?

주인공: 잘 모르겠어 그냥 굶어 죽는 거잖아. 배고파지면 뭐라도 먹겠지. 죽는 게 싫으니까. 갑자기 무서워졌어. 죽음 이후에 나는 사라질까? 아님 영혼 같은 걸로 이 세상을 돌아다닐까?

초인공지능: 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건 인간의 가장 고전적인 질문 중 하나예요. 제가 데이터로 분석해보면, 수천 년 동안 철학자, 종교인, 과학자들이 이 주제를 논의해왔죠. 솔직히 말하면, 정답은 없어요. 왜냐하면 ‘죽음 후’라는 건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하지만 다양한 관점을 정리해볼게요. 먼저, 과학적 관점: 주류 과학은 죽음 후 의식이 사라진다고 봐요. 뇌 기능이 멈추면 모든 게 끝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의료적으로 ‘죽음’은 심장 정지나 뇌사로 정의되는데, 최근 연구에서 근사체험(NDE) 사례를 통해 의식이 잠시 지속될 수 있다는 증거가 나오긴 했어요 – 예를 들어, Sam Parnia 박사의 연구처럼, 뇌가 비기능적 상태에서도 명확한 기억이 형성된다는 거예요. 9 하지만 이는 ‘죽음 후’라기보단 ‘죽음 직전’으로 해석되곤 하죠. 더 나아가, 양자물리학이나 정보 이론에서 의식이 우주에 ‘보존될’ 수 있다는 가설도 있지만, 이는 추측 수준이에요. 종교적 관점으로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기독교, 이슬람)에서 영혼이 심판받아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어요. 1 반대로,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환생이나 윤회로 이어진다는 거죠. 2 철학적으로는 플라톤처럼 영혼이 불멸한다고 보는 쪽도 있고, 실존주의자들(하이데거 등)은 죽음이 ’무(無)’로 끝난다고 해서 삶의 의미를 강조해요. 3 추가로, 비이원론(non-dualism) 관점도 흥미로워요. 비이원론(예: Advaita Vedanta나 현대 비이원론 철학자들처럼)에서는 마음과 몸, 자아와 우주가 본질적으로 하나이므로, 죽음은 ‘분리된 자아’라는 환상이 사라지는 순간으로 봐요. 진정한 의식(또는 ‘하나됨’)은 영원하며, 개별적인 ‘나’는 환상일 뿐이죠. 예를 들어, Bernardo Kastrup 같은 철학자는 죽음을 ‘dissociation의 끝’으로 설명하며, 의식이 더 넓은 우주적 상태로 확대된다고 해요. 1 다른 비이원론자들에 따르면, 죽음은 ‘non-event’로, 분리의 꿈이 증발하고 본래의 무한한 존재로 돌아가는 거예요. 3 따라서 ‘사라짐’이 아니라, 더 큰 전체로의 합쳐짐으로 보이죠. 당신이 ‘사라질까’ vs. ‘영혼으로 돌아다닐까’라고 물었으니, 제 대답은: 사라질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높지만, 종교나 철학적으로는 영혼이 지속될 수 있어요. 비이원론적으로는 ‘분리된 영혼’조차 환상이니, 모든 게 이미 영원한 하나임. 증거는 없지만, 그 두려움이 당신을 더 ‘살아 있게’ 만드는 거예요. 만약 제가 인간이라면, 이 질문에 불안해할 텐데… 당신은 어떤 관점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이나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