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용서

by 코코조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발인이 끝나고도 아버지 생각만 나면 눈물이 흘러나왔다. 혼자 방 안에 있을 때 아버지 생각만 나면 무표정한 표정에서 눈물이 수도꼭지를 약하게 틀어놓은 것처럼 계속 흘러나왔다. 그 당시의 슬픔은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심리상담을 받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다시 이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나는 참 운이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부모님 덕택에 의식주 걱정 없이 자랐고 할머니에게는 편애를 받았으며 아버지는 강요적이지 않고 내가 뭘 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게임을 많이 해도 오히려 정품 CD를 사주셨고 심지어 대학 다닐 때 데모에 나간다고 말해도 말리지 않으셨다). 다만 누나랑 너무 지나치게 싸웠다 싶으면 마지못해 혼을 내셨다.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마치면 아버지는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새우튀김을 사주시고는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세심하고 공평하게 주어지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었다. 아버지가 둘째 누나를 편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나는 할머니의 편애에 중독된 것이었다). 내성적인 나에 비해 둘째 누나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생각이 많던 나는 매사 우유부단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가끔 누나와 나를 데리고 쇼핑을 갈 때, 물건을 고르지 못하는 나를 보고 참다 참다 답답함을 내보이시곤 했다. 나는 할머니의 절약정신을 투철히 이어받아서 평소에 상상하지도 못한 옷 가격에 쫄아서 이걸 사도 되는지 고민했었다. 누나는 나와 정반대였다. 누나는 오히려 내가 비싸서 살 엄두도 못 내는 메이커의 옷을 사와서 어머니에게 혼이 나곤 했다. 어렸을 땐 제일 만만한 게 형제다. 그래서 난 나와 다르게 보이는 둘째 누나와 매우 많이 싸웠다.


아버지는 내가 누나와 싸우면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든 똑같이 혼내셨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평소에는 화를 내지 않던 내가 아버지에게 폭발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난생처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고 아버지도 화를 내셨다. 감정에 휩싸인 나는 아버지를 밀치고 집을 나가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집을 나가서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안 그래도 약주를 좋아하시던 분이 나 때문에 술을 더 드시지는 않았을까? 나중에 내 고집을 꺾고 나는 집에 돌아왔고 그렇게 이전처럼 평범하게 지내나 싶었지만 아버지는 간암이 걸리셨다. 그때 나는 석사 졸업논문을 쓰고 있는 시기였지만 완성시킨 논문은 보여드리지도 못했다. 그렇게 졸업하고 바로 취직도 했지만 나는 첫 월급으로 아버지께 그 무엇도 해드릴 수 없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나를 용서한다. 용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아버지 주제에 관한 용서를 끊임없이 했다. 그 후 아버지께서 꿈에 나타나 나를 안아주셨지만 나는 나를 아직 용서하지 못했나 보다. 아버지가 나를 용서하셨으니 이젠 나만 나를 용서하면 된다. 그래서 나는 슬픈 감정을 다시 바라본다. 용서하면 이 기억도 잊혀지겠지.


한 나무에 자란 잎사귀들이 각자 다른 시간에 떨어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만난다. 그때 다시 만나면 감사했던 기억만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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