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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뜨고 빨리 지는'
단길 공식 해체

by 박샤넬로


부산 로컬 오프라인 플랫폼의 혁신적 설계: 전포사잇길, 서울의 ‘~단길’ 공식을 해체하다


부산의 중심 서면 옆, 전포사잇길과 전포공구거리는 단순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 공간'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넘어섰다. 이곳은 서울발(發) 트렌드였던 '~단길'의 획일적 성공 공식을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지역적 정체성(Locality)과 콘텐츠 생산력을 핵심 동력으로 삼아 '로컬 오프라인 플랫폼 생태계'를 구축하는 혁신적인 마케팅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2020년대 후반 도시 문화와 상업 공간의 미래를 제시하는 중요한 이정표다.



0.jpeg 사진출처: 직접 촬영


큐레이션 된 거리, 플랫폼으로서의 각개전투


전포사잇길을 기점으로 포착되는 가장 날카로운 인사이트는 '개별 점포의 로컬 플랫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의 브랜드들은 더 이상 주변 환경에 기대어 간판을 내거는 수동적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각 가게는 추구하는 방향성의 콘셉트를 인테리어와 간판에 최대치로 응축하며, 마치 독립된 미술관의 아이덴티티처럼 그 존재감을 표출한다.


이러한 개성 표출은 '단순한 판매'를 넘어 '휴대폰 갤러리에 소장될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치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곳에서 얻은 '미적 경험'과 '공유 가능한 순간'이다. 이는 소비자의 SNS 갤러리에 섹션별로 구분화되어 정렬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오프라인 연계 소비 생태계가 된다.


또한, 이 상권은 트렌드를 뭉뚱그리지 않는다. 디저트 카페와 전문 술집이 섹션별로 명확히 구분되며, 특정 국가의 아이덴티티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점들이 모여 수집적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웃 가게들은 서로를 배제하는 대신, 서로의 콘텐츠를 연결하여 시너지를 내는 로컬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방문객은 이제 하나의 목적지(Destination)가 아닌, 큐레이션 된 '로컬 투어 패키지'를 경험하게 된다.


1.jpeg 사진 출처: 직접 촬영



소비의 재정의: 구매가 아닌 '놀이'와 '몰입'


전포사잇길의 가장 흥미로운 진화는 소비 행위 자체의 재정의다. 이곳에서 구매 과정은 '즐기고 게임을 하는' 몰입형 경험으로 안착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예쁜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로컬 맥주 축제와 e스포츠를 결합한 체험형 축제(예: 비어블록 그랑프리), 혹은 스탬프 투어와 팝업 릴레이 같은 참여 기반의 기획을 통해 강화된다.


이러한 '경험적 가치'의 창출은 상권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이다. 온라인 쇼핑이 해결할 수 없는 오프라인만의 희소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 압력에도 불구하고 고객 유입을 유지할 수 있는 내재적 힘을 기르는 것이다. 부산진구 청년상권운영단과 같은 민관 협력 사업이 '트라이얼 스토어'를 통해 청년 창업가들에게 실험 공간을 제공하는 것 역시, 이 거리가 '트렌드를 소비하는 곳'이 아닌 '트렌드를 생산하는 실험실'이 되도록 돕는 중요한 지향점이다.


결론적으로, 전포사잇길과 공구거리는 서울의 트렌디 상권들이 겪었던 '빨리 뜨고 빨리 지는' 수명 주기를 극복하고자, 개성과 연대, 그리고 경험을 중심에 둔 '오프라인 플랫폼 생태계'를 설계하고 있다. 이는 로컬이 도시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시대에, 가장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미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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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jpeg 사진 촬영 : 직접 촬영



서울의 ‘~단길’과 구별되는 전포사잇길만의 브랜딩 DNA


전포사잇길의 진화가 다른 지역, 특히 서울의 '~단길' 공식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지점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략적 접근과 '콘텐츠 생산 주체'의 차이에 있다. 일반적인 '~단길'은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개별 청년 창업가들이 자발적으로 유입되며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상권이 성공하면 외부 자본이 유입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 아래 기존의 로컬 콘텐츠 생산자들은 밀려나 상권의 '정체성 리셋(Reset)'을 초래한다.


반면, 전포사잇길은 이 과정을 구조적으로 설계하고 있다.


'연대'를 통한 공생 플랫폼 전략: 서울의 상권이 개별 점포의 경쟁적 성공에 의존했다면, 전포는 청년상인회 기반의 '청년상권운영단(좋은사잇)'이라는 공동 브랜딩 주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행정(부산진구 청년친화도시 사업)과 협력하여, 상인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예산을 집행하는 축제(예: 비어블록 그랑프리)와 공동 팝업 스토어를 운영한다. 이는 '경쟁'이 아닌 '연대'를 핵심 마케팅 DNA로 삼아 상권 전체의 자생력을 높이는 구조다.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5081316262330187


'정체성 대비(Contrast)'의 브랜딩: 특히 전포공구거리는 기존 공구 상가와 새로운 트렌드 카페가 섞여 있는 '팔림프세스트(Palimpsest, 중첩된 기록)'적인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유지한다. 이는 '무색무취의 트렌디함'으로 귀결되는 다른 신흥 상권과 달리, 거친 산업 유산의 맥락과 세련된 로컬 브랜딩이 충돌하며 독특한 시각적 대비(Contrast)를 창출한다. 이 대비의 미학 자체가 전포만의 깊이 있는 브랜드 가치가 되는 것이다.


전포의 이러한 전략은 로컬 상권의 미래가 '얼마나 트렌디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지역의 맥락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가'에 달려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 초기 브랜드를 위한 3가지 로컬 플랫폼 마케팅 선언


이러한 성공적인 로컬 플랫폼 진화 과정에서, 초기 브랜드가 반드시 내재화해야 할 3가지 핵심 인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공간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 강박적 브랜딩: 브랜드의 콘셉트는 모든 시각적 요소(파사드, 내부, 상품 진열)에 명확히 관철되어야 한다. 모호함은 곧 실패다. 당신의 가게가 방문객의 SNS 갤러리 섹션에 가장 명확한 카테고리로 저장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적'이 아닌 '노드(Node)'로서의 연대 전략: 이웃 가게와의 관계를 경쟁이 아닌 상권 플랫폼 내의 '연결점(Node)'으로 정의해야 한다. 협업 이벤트를 기획하고, 상호 방문을 유도하는 공동 마케팅 구조를 구축하여 '나'의 매력이 곧 '우리 거리'의 매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판매보다 '재미'를 파는 경험 설계: 단순한 물품 거래 이상의 놀이(Game) 또는 몰입(Immersion)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가능한 체험, 미션, 스토리텔링을 통해 고객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경험의 가치가 구매의 가치를 압도해야 생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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