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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전시회에서 고찰한
IT QA/QC의 미래

by 박샤넬로


서울의 번잡한 도심 한복판, 루이비통의 여정(Journey)을 담은 전시회장에 들어선 순간 바깥세상의 소음은 차단되고 묵직한 정적만이 흘렀다. 그곳에는 10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낸 낡은 트렁크들이 놓여 있었다. 나무와 가죽, 그리고 그것을 이어 붙인 수만 번의 스티치. 조명 아래 고요히 놓인 그 사물들에서 나는 압도적인 ‘밀도’를 느꼈다. 그것은 단순히 값비싼 물건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이 쏟아부은 집요한 시간의 무게였다.


전시장을 천천히 거닐며, 문득 주머니 속 스마트폰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상의 속도를 떠올렸다.

지금 바깥세상은 '생성형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있다. 몇 초 만에 그림이 그려지고, 소설이 써지고, 영상이 만들어지는 초가속(Hyper-acceleration)의 시대. 많은 이들이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인간이 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기술이 인간의 손과 머리를 대체하는 순간, 우리의 노동은 가치를 잃을 것이라고...



동영상 출처 : 직접 촬영


동영상 출처 : 직접 촬영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루이비통의 그 한 땀 한 땀 박힌 바느질을 바라보며 나는 오히려 확신을 얻었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은 '만드는 것(Making)'에서 '바라보는 것(Seeing)'으로 진화하고 있다.

흔히 품질 관리(QC)나 품질 보증(QA)을 단순히 불량품을 골라내는 기계적인 반복 업무로 치부하곤 한다. 그래서 AI가 가장 먼저 대체할 영역이라고 예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전시장에서 목격한 '품질'은 오차 범위 내의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어떤 '결'이었다.

AI는 데이터라는 거대한 광산에서 확률적으로 가장 정답에 가까운 원석을 캐낼 수 있다. 가죽의 재단 오차를 0.01mm까지 줄이고, 수천 줄의 코드에서 버그를 순식간에 찾아낼 것이다. 이것은 '기능적 완성도'의 영역이다.


연구1.jpeg 사진 출처 : 직접 촬영


그러나 그 원석을 다듬어 보석으로 만드는 것, 즉 '감성적 완성도'는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이 가죽의 질감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고독함과 닮았는가?", "이 문장이 독자에게 새벽의 서늘함을 전달하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데이터가 아닌, 삶을 살아내며 축적된 인간의 직관과 감각만이 답할 수 있다.

앞으로의 QA는 단순히 제품의 하자를 검수하는 '관리자'가 아님을 예감한다. AI가 쏟아내는 무한한 결과물 중에서, 우리 브랜드의 철학에 부합하는 단 하나를 골라내는 '큐레이터'이자, 기술이라는 야생마가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도록 고삐를 쥐는 '윤리적 감시자', 그리고 마침내 기계적인 결과물에 인간의 온기를 불어넣는 '최종 승인자'가 될 것이다.




답은 AI가, '품격'은 인간이 만든다


미래의 QA(Quality Assurance)는 더 이상 불량품을 골라내는 '채'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선택지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을 골라내는 '안목'이다.


AI는 데이터에 기반해 확률적으로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결과물을 내놓는다. 0.1mm의 오차를 잡고, 코드를 최적화하는 '기능적 검수'는 AI가 인간보다 월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이 브랜드의 철학에 부합하는지, 이 가죽의 질감이 고객에게 어떤 정서적 울림을 줄 것인지 판단하는 '정성적 검수'는 오직 인간의 몫이다.


데이터는 '평균'을 학습하지만, 명품은 평균을 넘어선 '디테일'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 Bug Hunter에서 Value Designer로


미래의 IT QA/QC는 더 이상 단순히 버그를 찾아내는 '사냥꾼(Hunter)'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AI는 수만 건의 테스트 케이스를 1초 만에 돌리고, 논리적 오류를 순식간에 잡아낼 것이다. 기능적 결함(Functional Defect)을 찾는 일은 기계가 압도적으로 잘한다.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지, 이 인터페이스가 인간의 심리에 닿아있는지를 판단하는 '감성 품질(Emotional Quality)'은 오직 인간의 영역이다.


우리는 이제 기능 명세서의 체크리스트를 지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주는가?"를 묻고 설계하는 '가치 디자이너(Value Designer)'로 진화해야 한다.


# 윤리적 감시자이자, 최후의 승인자 (Final Gatekeeper)


또한, AI가 생성한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AI가 질 수 없다. 자율주행 코드가, 금융 AI 알고리즘이 내놓은 판단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편향되지 않았는지 검증하는 것은 고도로 숙련된 인간 QA의 몫이다.

루이비통의 마스터 장인이 제품 출하 전 최종 서명을 하듯, 미래의 IT 현장에서는 "AI가 작성했지만, 전문가인 내가 검증하고 승인했다"는 'Human Verified' 마크가 소프트웨어 신뢰도의 척도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테스터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야생마가 인간 존엄의 울타리를 넘지 않도록 고삐를 쥐는 '윤리적 감시자'이자 '최후의 승인자'가 되어야 한다.


# 'Human Checked': 새로운 프리미엄의 탄생


결국 직업의 형태는 변화할 것이다. 반복적인 검사는 AI에게 위임하고, 우리는 '최종 의사결정권자(Final Approver)'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QA로 진화해야 한다.


AI가 쓴 글, AI가 그린 그림, AI가 설계한 제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것은 숙련된 전문가가 직접 검수하고 확인했습니다"라는 보증은 그 자체로 루이비통의 로고와 같은 강력한 프리미엄이 될 것이다. 책임질 수 없는 기계 대신,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의 '서명'이 들어간 결과물만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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