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부산역 앞을 지나다 낯선 듯 익숙한 풍경을 마주했다. 붉은 벽돌로 치장된 '부산당' 앞, 길게 늘어선 줄의 절반은 놀랍게도 중국어와 대만어를 쓰는 관광객들이었다. 캐리어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갓 구운 빵 냄새가 뒤섞인 그곳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하나의 관광명소처럼 보였다.
사실 이곳은 1983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동네 빵집 '백조제과'가 전신이다. 40년 넘게 동네 주민들의 생일 케이크와 간식을 책임지던 투박한 빵집이, 최근 '부산당'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고 부산을 찾는 글로벌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장면은 나에게 강렬한 질문을 던졌다. "가장 낡은 것이 어떻게 가장 힙(Hip)한 글로벌 콘텐츠가 되었을까?" 이제 브랜드의 생존은 단순히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견뎌온 시간을 어떻게 동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느냐에 달려 있다.
"동네 빵집 백조제과, 로컬 브랜드 부산당이 되다"
오래된 브랜드가 살아남는 방법은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Core)을 유지하되 표현 방식(Tone & Manner)을 현대화하는 데 있다. '부산당'의 사례는 이 지점을 정확히 관통한다.
만약 이곳이 여전히 '백조제과'라는 옛 간판만 고집했다면, 지금처럼 외국인들이 열광하는 '힙 플레이스'가 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43년간 축적된 제빵 기술이라는 '본질'은 지키되, 공간과 패키지는 1900년대 개화기 풍의 레트로 감성으로 과감하게 '재해석'했다.
시간의 시각화: 낡은 것이 아니라 '고풍스러운 것'으로 인식을 전환시켰다. 붉은 벽돌과 클래식한 서체는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함을, 기성세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영리한 장치다.
서사의 확장: 단순한 동네 빵집에서 '부산을 대표하는 선물(Souvenir)'로 포지셔닝을 변경했다. 이는 대전의 성심당처럼, 지역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인증샷 성지'로 자리 잡게 한 결정적 전략이다.
소비자는 완성품이 아닌 '시간의 결'을 산다
소비자는 이제 공장에서 찍어낸 완벽한 공산품보다, 사람의 손때와 시간이 묻어있는 브랜드에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물성이 아닌 '압축된 시간'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부산당 앞에 줄 선 중국인 관광객들이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빵이 아니다. 그들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역동성과 역사성'을 소비하고 있다. 비록 부산당이 1983년에 시작되었지만, 그 뿌리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 부산에서 구호물자 밀가루로 시작된 '부산 빵의 역사적 맥락'과 닿아 있다.
나는 이것을 '맥락의 계승'이라 부른다. 직접 겪지 않은 시대라도, 그 공간이 품은 공기와 분위기를 통해 소비자는 브랜드의 역사에 동참하고 공감하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로컬이 가장 글로벌한 콘텐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오래된 것'에 대한 열광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관광객들에게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부산역 부산당의 북새통은 명동의 화장품 가게 풍경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날것의 매력(Raw & Real): 최근 외국인 관광객들은 잘 정돈된 면세점보다, 한국인들의 실제 삶이 녹아있는 '로컬'을 원한다. 그들에게 부산당이나 깡통시장, 전포동 골목은 꾸며진 세트장이 아닌 '진짜 한국(Real Korea)'을 만나는 접점이다.
입소문의 힘: 공급자가 쏟아붓는 광고가 아니라, 여행객들 사이의 알음알음(Word of Mouth)과 SNS 인증샷이 이들을 불러 모았다. 인위적인 K-Pop 마케팅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가장 한국적인 '빵집'이라는 콘텐츠가 세계인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며
결국 브랜드의 생명력은 물리적 시간의 길이보다, '그 시간을 현재의 고객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가'에 달려 있다. 40년 된 동네 빵집이 글로벌 관광객의 핫플레이스가 된 부산당의 반전. 그것은 오래됨을 낡음이 아닌 '헤리티지'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