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한의대와 헤어질 결심-너무나도 어려웠던, 뇌빼고 공부하기
한의대에 입학 후, 새삼 '인복'이 넘쳤다. 나에게 속마음을 터놓고 얘기해 주는 스무 살 새내기 친구들,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나사' 친구들, 언니는 술 잘 마시는 인재라며 동아리에도 껴준 의료봉사 동아리 친구들까지... 덕분에 제대로 새내기다운 새내기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복에 겨운 사람들이 주위에 한가득이었음에도, 한의대 생활 자체는 100% 만족스럽진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맞지 않았던 게 아니라, 한의대의 교육방식이 나와 맞지 않았다.
종종 한의학이 과학적이지 않다며 거부감을 갖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다. 한의학은 지금도 흥미롭다. 근육 통증이 있을 땐 지금도 한의원에 먼저 간다. 그런데, 이 흥미로운 학문을 배워가는 과정은 꽤나 시대착오적이었다. (물론, 전국에 한의대가 10개 넘게 있으니 각 학교마다 사정은 다를 거라 생각한다. 내가 다닌 학교에 한정된 얘기다.)
예를 들어, 요즘 흔히 처방되는 ‘다이어트 한약’에는 ‘마황麻黃’이라는 약재가 쓰인다. 이 약재가 살을 빼는 기전을 아주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마황 속 에페드린 성분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우리 몸을 운동한 것처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마황’을 획 하나 틀리지 않게 한자로 써야 하고, 약성가藥性歌에 나온 ‘마황미신 해표출한 신열두동 풍한발산 麻黃味辛能出汗 身熱頭疼風寒散’라는 구절을 통째로 외워야 시험에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자면, 한의학에선 우리 몸에 ‘삼초三焦’라는 장기가 있다고 믿는다. (물리적으론 실재하지 않지만, 실존하는 그런 존재다) 삼초의 실존여부를 떠나, 있는지 없는지 모호한 그 ‘삼초’라는 장기를 한자로 외우지 못하면 시험에선 그냥 틀려버린다. 한자 획 하나를 빼먹었다면, 틀린게 된다. 어떤 의미에선, 한의학이라는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의식의 통과의례 같았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한자 암기와 시험 필기체계에 목을 매는 교육이 유지되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현대 의학이 히포크라테스로부터 시작이 되었으니, 고대 그리스의 언어를 공부해서 히포크라테스의 저서를 해석하고, 시험을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이 느껴졌다. 의대에선 히포크라테스 뿐 아니라 갈레노스나 베살리우스가 의학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저서를 공부하진 않는다. 하지만, 한의학은 여전히 그러고 있다.
내가 기대했던 건, 전통 의학을 현대적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 과학과 연결 지어 재해석하길 기대했건만. 현실은 달랐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고작 예과 1학년만 다녀놓고 무슨 건방진 소리냐고 하겠지만, 본과라고 현실이 크게 다른 건 아니다. <본초강목>에 나온 약재 몇 백개를 '한자 그대로' 외워야 하며, 우리 몸에 있는 경혈점 몇백개도 죄다 한자로 외워야 한다!
이렇게 6년을 꾹 참고 버티면, 어쨌거나 한의사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의료봉사를 하고, 한의원을 돌아다녀보니 한의사라는 직업은 나랑 제법 잘 맞는 것 같은데, 공부방식이 전혀 맞질 않았다. 6년만 그냥 죽은 척하고 버틸까? 정답은 '아니요'였다.
이 때, 갑자기 회사 다닐 때 어떤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뇌를 빼고 일하면 편해.”
아주 건방지게도,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땐, 그 말을 하는 선배가 안타까웠다. 자는 시간을 빼고나면, 하루의 절반 이상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뇌를 빼고 살다니? 그게 행복한 인생일까 싶었다. 하지만 사회초년병 시절을 지나, 사회물을 먹고 나니 그 말이 조금씩 이해됐다. 뇌를 빼고 일하는 방법은 회사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나는 깔끔하게 ‘뇌를 빼고’ 일하지 못해서 퇴사를 고민했던 것일 테고.
한의대 공부도 비슷하다. 뇌를 빼고 교수님이 외우라고 한 걸 그냥 다 외우면 된다. 가치판단 없이, 실용성을 따지는 건 뒷전으로 하고, 오직 ‘시험에 맞는 답’만 외워내는 것이 학점을 잘 받는 길이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됐다.
‘이걸 왜 외워야 하지?’
‘이걸 외우는 게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투입 시간 대비 수입은?’
이런 생각이 자꾸만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사회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학점 잘 받는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그걸 무시하기 힘들었다. 스스로 자의식 과잉이라며 자책도 해봤다.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가', '왜 나는 단순히 암기하지 못하는가', '혹시 내가 공부하기 싫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이 길을 선택한 것도, 다시 흔들리는 것도 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퇴사하고 한의대에 진학해 처음으로 시간이 많아졌고,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버틸 수 있고 무엇에 무너지는 사람인지 돌아볼 수 있었다. 그 경험이 내게 준 건 한의학 이상의 배움이었다.
분명히 배운 게 있다면, 나는 ‘뇌를 빼고’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다. 아주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가슴 뛰는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 어쩌겠나! 이런 생각무덤 속에서, 서른 넘어 시작한 한의대 생활을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ps. 이 브런치북을 읽고 응원의 메시지를 주셨던 한의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의원에 놀러오라며 친히 연락을 주신 선생님도 계셨고 따뜻한 조언과 응원을 베풀어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만, 선뜻 답변을 드리지 못했던 건 바로 이런 복잡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혹여나 예과 1학년밖에 안 한 한의학도의 글이 불편하셨나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