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해놓고 왜 회사를 그리워할까

4부 한의대와 헤어질 결심-그리운 회사 선배들

by 코코넛
"진짜 미안해... 진로 고민을 하는 줄 몰랐어"


공부를 하면서도 가끔 생각나는 말이있다. A 선배는 회사를 떠나겠다는 나를 두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진작 고민을 들어줬어야 하는데, 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동안 혼자 고민이 얼마나 많았겠어"


퇴사 소식을 전하면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참고로, 선배라는 호칭 때문에 A선배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날 것 같지만, 사실 A 선배는 나보다 20살 이상 많다. 내가 태어날 때쯤부터 기자로 일을 해온 '큰 어른'이다. 나이가 몇 살이든 윗사람을 그냥 선배라고 부르는 업계문화 때문에 난 A 선배를 부를 때 그냥 '선배'라고 불렀다.


호칭 덕분이었을까. 꽤나 많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막역하게 지내올 수 있었다. A 선배는 학부 때 메디컬계열 전공을 하고도, 기자가 하고 싶다며 언론사에 들어왔다. 전문면허증은 먼지가 쌓이도록 어딘가 넣어둔채로. 그런데, 까마득한 후배인 나는 언론사를 떠나 서른 넘은 나이에 메디컬 계열 새내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쪽 공부가 네 성향엔 썩 재밌진 않을거야.
그냥 엉덩이 잘 붙이고 앉아서 달달 외우기만 하면돼"


나를 잘 알고있는 A 선배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까지 덧붙였다.


'사과'를 한건 A 선배뿐만이 아니었다. 대학교 선배이자 회사 선배인 B도 "회사 잘 다니는 줄 알았는데, 퇴사를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진작 그 고민을 몰라줘서 미안하다"라고 했다. 이토록 따뜻하고 멋진 사람들이라니! 성숙하고 좋은 사람들과 일을 했구나 싶었다.


A와 B 선배는 밥과 술을 아끼지 않고 베풀었던 이들이다. 그렇기에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없고, 나에게 미안할 일도 없다. 퇴사를 하겠다는 후배 앞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말을 해줄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한의대에 입학한 후에도 이 말들이 종종 떠오른다. 업에 대한 미련? 월급에 대한 그리움? 내 선택에 대한 후회? 모두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멀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고마움이다. A, B선배 외에도 가슴 속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괜히 멋쩍어 퇴사 소식을 널리 알리지 않았는데, 건너 건너 소식을 듣고 나에게 카톡과 전화를 준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도 네 나이 때 의전을 갔었어야 했는데, 너무 잘 선택했어"


"얼마나 재밌는 인생이야? 축하해"


"왜 내가 좋아하는 애들은 다 회사를 떠나? 밥 한번 더 사줄걸"


비록 빈말이었을지라도, 새로운 도전을 앞둔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모른다. 그동안 회사 다니면서 누군가의 퇴사 소식을 들어도 선뜻 먼저 연락해 인사를 건넨 적이 없었는데,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됐다. 퇴사 소식을 듣고 먼저 연락을 해줄걸 싶었다. 그 때, 후회 대신 다짐을 했다. '나도 누군가가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 말이다.



이런 다짐을 한건 아무래도, 나보다 10살 넘게 어린 한의대 동기들 때문일 테다. 스무 살, 스물한 살 친구들과 한 강의실에서 지내다 보니, 그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사실, 좋은 어른은커녕 불편하지 않은 사람만 돼도 성공이다. 꼰대로 안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디인가. 30대 새내기에겐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스무 살 동기들과 잘 지내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선배들을 떠올린다. 단순히 그들이 나에게 마르지 않도록 밥과 술을 사줬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연건 아니다. 대단한 인생의 조언을 줬던 것도 아니고, 매서운 가르침을 줬던건 더더욱 아니다. 그저 멋있게 일을 해냈으며, 미성숙하기만한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줬을 뿐이다.


사실, 아직 그 방법은 잘 모르겠다. 한참 어린 사람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는 방법 말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따뜻함을 보여준 선배들의 행동을 조금씩 따라 하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밥을 많이 사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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