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가 무너뜨린 영끌족의 꿈

4부 한의대와 헤어질 결심-내 꿈은 한의사가 아닌 영끌족?!

by 코코넛
영끌족이 되고 싶었다.


내 꿈은 한의사가 아닌 영끌족이었다. 정확히는 서울 아파트를 가진 영끌족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한의대에 입학하면서 저 멀리 날아갔다. 냉혹하게도 소득이 없는 학생에겐 '주담대(주택담보대출)'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본가가 경기도인지라, 취업을 하고부터는 쭉 서울에서 자취를 했다. 취업 후 첫 1년은 원룸 월세, 그다음 4년은 오피스텔 전세로 살았고, 그다음 2년은 아파트 전세 계약을 했다. 내 명의의 집은 단 한 채도 없었지만,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점점 집 크기를 늘려가는 데 재미를 붙이던 차였다. 원룸에서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 가면서 처음으로 소파를 사고, 빔프로젝트를 설치했을 때, 나만의 세상을 완성한 기분이었다!


다음 스텝은 집을 사는 것이었다! 월 200~300만 원을 이자+원금으로 내더라도, 내 명의 아파트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이왕이면 한강공원이 가까운 곳이 좋겠지?'라는 원대한 꿈도 품었다.


그런데, 어쩌다 한의대에 들어와 버리니, 내 집마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아니, 일단 최소 6년 뒤로 유예됐다. 월 200~300만 원씩 은행에 가져다 드리고 싶어도, 소득이 끊어져버렸으니 말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 집마련'의 목표가 뚜렷했다. 일한 지 7년 차 정도 됐으니, 모은 돈이 썩 많지는 않아도 적지도 않았다. 영혼까지 열심히 끌어모으면 서울 외곽에 20~30년 된 소형 구축아파트는 살 수 있었다. 또래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한 동기들은 이미 집을 가지고 있었고, 미혼인 동기도 부모님의 도움을 '살짝' 받아 등기를 쳤다.


아파트를 매매한 동기는 무리해서 집을 사느라 외모를 가꾸는 데 쓰는 돈이 아까워 머리를 그냥 기른다는 농담을 했다. 동료에게 축의금 5만 원을 내는 것조차 빠듯해하던 선배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마저 부러웠다.


30대에 접어들다 보니 친구들을 만나도, 회사 선후배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부동산 이야기가 주제로 올랐다. '모 부장은 2015년쯤 용산구 아파트를 3억에 샀는데 그 집이 지금은 15억을 훌쩍 넘었다'는 이야기부터 '모 선배는 청약에 당첨된 동작구 아파트가 분양가보다 두 배 올랐다'는 이야기까지... 흥미로우면서도 부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주변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도 서울에 집을 꼭 사야겠다'는 조바심이 났다. 그 조바심덕에 돈을 모으는 재미를 알게 됐지만, 동시에 '이 월급 받아서 언제 집사나'라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시기, 책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다. 김 부장이 되는 게 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있는 한의대는 총 13곳으로 경희대를 제외하고는 '인서울'이 아니다. 내가 합격한 학교도 지방 광역시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서울살이를 정리했다. 전세로 살던 아파트의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긴급 처분을 했다. 자발적으로 수능을 준비해서 한의대에 간 건 맞지만, 인생 플랜에는 없던 계획인지라 모든 것이 급작스러웠다. (수능을 본 건 꽤나 충동적인 일이었다)


전셋집을 빼면서 서글픈 생각들이 떠올랐다. '서울을 떠나 있는 6년 동안, 집값은 더 오르겠지?' 한의사라는 꿈보단, 내 집마련의 꿈이 더 컸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지난 6년 간의 월급이 모아서 만들어낸 아파트 전세금을 돌려받고, 그렇게 서울을 떠났다.




한의대 입학 후, 학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지방으로 가보니 집값의 단위가 달랐다. 88년도에 지어져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파트라서 그랬을까. 전세금이 1억이 안 됐다. '서울에선 1억 가지고는 5평짜리 원룸 전세 구하기도 어려운데, 이거 완전 좋잖아?'


게다가, 3억이면 학교 근처에 지어진 브랜드 신축아파트를 매매할 수 있었다. 물론 3억 도 매우 큰돈이다. 하지만 10억짜리 아파트는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집값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주변 인프라나 부동산 가치가 반영된 가격일 테지만 말이다)


'김 부장'을 꿈꾸는 30~40대가 아닌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스무 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빨리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은 사라져 갔다. 물론, 자의 반 타의 반. 회사 동료들과 '부동산' '팀장 욕'을 주제로 수다를 떨었지만, 스무 살 친구들과 '학식 메뉴'와 '교수님 욕'을 주로 입에 올리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다.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은 자연스럽게 지워졌고, '어떻게 하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을까' '졸업 후 어떤 분야에 특화된 한의사가 될까' 등의 고민을 더 많이 떠올렸다.




새롭게 터를 잡은 그 오래된 아파트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많이 살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할머니들이 강아지를 무릎에 올리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이런 나날들을 보내다 보니, 그제야 비로소 서울에서 집을 사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득이 끊어진 학생이 되어 좋은 점. 있긴 할까? 굳이 굳이 적어보자면, 금리 낮은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거다. 은행에 가서 전세자금 대출을 받을 때, 회사에서 받은 지난해 연봉이 소득으로 잡혀있었다. 그렇지만, 건강보험납입증명서와 퇴사확인서를 제출해서 무소득자라는 걸 소명해 '백수'라는 걸 증명하니, 금리가 확 내려갔다. 좋아해도 되는거... 맞나? 아무튼, 백수 인증을 받은 덕에 연 금리 2%의 저렴한 전세자금대출 상품을 받았다.


퇴사를 하고 학생이 되면서 지갑이 가벼워졌지만, 그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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