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시험 기간, 회사로 그냥 돌아갈래!-1학년 글쓰기 시험, 결과는?
한의대에 입학하고 난 뒤, 처음으로 맞은 중간고사 기간. 가장 만만할 줄 알았던 시험이 있었으니, 바로 '글쓰기' 교양과목의 시험이었다. "매일 기사를 써왔는데, 대학교 1학년 수준 글쓰기 시험정도는 그냥 대충 봐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이 과목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1학년 1학기에는 '글쓰기'교양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했다. 고등학교에 비해 대학교에 입학하면 과제를 할 때 글을 써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글쓰기의 기초, 논문 쓰는 법, 출처 표기법 등을 알려주는 교양 과목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도 스무 살 시절 '우리말과 글쓰기'라는 수업을 들었다. 이른바 '우글'이라고 줄여 부르던 수업이었다. 각 대학교마다 교과목의 이름은 다르지만, 이런 글쓰기 기초를 알려주는 수업은 대부분 1학년 과정에 포함된 걸로 안다.
다른 학교를 이미 졸업하고 온 한의대의 '나사'친구들은 이미 스무 살 때 각자 대학교에서 글쓰기 관련 교양수업을 들었던 터라, 이 수업을 지루해했다. 30대라고 해도, 기자로 일을 했다고 해도 필수 교양수업을 빼줄리는 없다!
매일매일 최소 2000자 이상 기사를 썼던지라, 글쓰기 교양 수업의 시험은 자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시험장으로 갔다. '스무 살 친구들보다 내가 머리는 굳었어도, 그래도 글은 조금이라도 더 잘 쓰겠지'라는 오만한 생각을 안은 채 말이다. 주변친구들도 나에게 "기자로 일했으면, 글쓰기는 공부안해도 되잖아"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그 오만이 문제였다!
시험지를 받자마자 이 생각이 절로 들었다. '와 망했다!' 중간고사 문제는 짬으로 글을 써서 답안지를 작성할 수 없었다. '글쓰기 이론'에 대한 문제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000 학자가 말한 에세이의 세 가지 구성요소에 대해 서술하시오' '글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해 쓰시오' 'APA, 시카고 방식 인용표기법의 순서를 쓰시오' 등이었다.
분명,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수업을 했던 내용이다! 그렇지만, 자만했던 난 저런 글쓰기 이론에 귀를 기울였을 리 만무하다. 그동안 '감과 짬'으로 글을 써왔고, 도제식으로 선배들에게 기사를 데스킹(첨삭) 받아왔던 터라, 학자들이 말한 이론은 안중에도 없었다.
일단, 백지 답안지를 제출할 수는 없었기에 대충 '아무 말'이나 써냈다. 에세이의 구성요소, 글 평가 요소 따위가 내 머릿속에 있을 리 없었지만, 말을 만들어서 써냈다. 그 결과, 대략 60점대의 점수를 받았다! 성실하게 수업을 듣고, 암기를 한 동기들에 비해서 턱없이 낮은 점수였다. 그래도, 할 말은 없었다. 자업자득이었을 뿐.
'글쓰기 수업에서 60점을 맞았다'는 썰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전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종종 안주거리로 올랐다. "네가 아직 회사에서 덜 굴렀구나"라는 말을 던지는 선배도 있었고, "그 교수 누구야? 데려와!"라며 허세를 부리는 전 부장도 있었다. 농담삼아 이런 이야길 나누긴했지만 어쨌거나, 내 실책이고, 내 오만이 문제였다.
이렇게, 첫 번째 중간고사를 얼렁뚱땅 마친 뒤,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 실무와 학문은 다르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모두 실무에서 바로 쓸모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교는 직업학교가 아니며, 학문은 실용성을 기준으로 값을 매기지 않는다! (솔직히 실용적이지 않은 교육방식에 문제의식은 느끼지만, 난 더이상 기자가 아니므로 문제의식이나 비판의식은 접어두기로 한다)
둘째, 겸손해야 한다. 학교에선 성실한 학생이 최고다. 짬으로 어떻게 비벼보려는 자만은 통하지 않는다. 일단 닥치고 암기! 이게 착한 학생의 기본자세다.
첫 시험을 보고 나서야 나한테 필요한 건 '직장인 물 빼기'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내고자 하는 직장인, 일머리가 좋은 직장인은 학교와 맞지 않는다. 교수님의 말이라면 법인줄 아는, 그런 학생의 마인드가 나에게 필요했다. 학교에 들어와서 그냥 공부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체성을 통째로 바꿔야 했다.
'정체성 갈아 끼우기'는 아직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