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시험 기간, 회사로 그냥 돌아갈래!-그냥 둘 다 안 하면 안 되나요
회사를 그만두고 한의대에 갔다는 소식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두 부류로 나뉜다. "이제 일 안 하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해서 너무 부럽다" 혹은 "어떻게 다시 공부를 하냐. 난 못한다". 전자는 '일보다 공부가 낫다'는 판단이고, 후자는 '공부보단 일이 낫다'는 속내일 거다.
공부와 일, 둘 중에 어떤 게 더 힘들까?
딜레마다. 회사 다닐 때는 "제발 직장인들한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난 일을 하면서 얻는 만족감과 성취감이 꽤나 높았고, 일을 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뇌검사를 해보면, 원하는 성과를 얻었을 때 엄청난 도파민이 분비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어쨌건 직장인에게 휴가는 다다익선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직장인은 휴가를 길게 써봐야 5일, 앞뒤 주말을 붙이면 9일 정도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10년 넘게 다니면 1개월 안식휴가를 주긴 했으나, 그 휴가를 받기 전에 스트레스로 골병이 들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방학이 있는 학생이 되고 나니 100% 만족스럽진 않았다. 회사다닐 때는 내 스무살 시절이 말그대로 찬란하고, 행복으로 가득했다.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도 즐거웠고, 유학을 다녀온 교수님들의 썰을 듣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했다. 친구들이랑 학교 앞 맛집을 다니는 것도 행복했다. 그런데, 다시 돌아와보니 이게 웬 걸? 이미 '노는 맛'을 알아버린 탓일까.
장시간 앉아서 공부를 하기엔 온몸이 쑤셨다. 10년도 더 지난 고3시절에는 엉덩이에 뾰루지가 날만큼 엉덩이힘으로 공부를 했었는데, 지금은 좀이 쑤시다. 게다가 대학교 1회차 시절엔 PPT에 있는 글자라는 글자는 모두 머리속에 짚어 넣었다. 그 당시 어린 나에게 교수님의 말은 법이었으니까. 지금은 머리가 커져서 그럴 수 없다. 한의대에서 가르치는 대다수 과목들은 '이걸 굳이 외워야 할까'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예를 들자면, 한의대의 공부는 음양오행과 오장육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외우고, 수태음폐경 등 경혈맥을 한자로 쓸 수 있도록 한자의 획 하나하나를 다 외워야 하는 식이었다. 한의대는 예과 1학년 때부터 한문공부를 많이 시키는데 암기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탓에 한문들은 머리에서 튕겨져 나갔다.
빨리 침을 놓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교수님들은 일단 한문을 먼저 외우라고 한다. 한 교수님은 "학교는 학문을 정진하는 곳이지 술기를 배우는 곳이 아니다. 술기는 학교 나가서 따로 배워라"라고 말했다. 정말 학자 같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시험기간만 되면 '나사(나이 많은 사람들)' 친구들과는 "이럴 거면 우리 그냥 회사 다니는 게 낫지 않냐?"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아니, 농담반 진담반이다. 그렇다고 다시 회사에 돌아갈 사람은 없었겠지만 우리의 푸념은 꽤나 진심이었다.
월급을 따박따박 받다가 못 받게 된 것도 지긋지긋한 회사원 시절을 그립게 한 작은 이유 중 하나였다. 휴가만큼이나 월급도 다다익선이니까! 어쨌거나, 공부는 돈을 내고 하고, 일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기에 금전적인 문제도 고민 안 할 수 없었다.
한의학은 학문의 특성상 예과 1학년 때 만족감을 얻기란 쉽지 않기에 이런 푸념을 했는지도 모른다. (한의학이란 학문에 회의감을 느끼는 예과생들이 적잖이 많은데, 이에 대해선 추후 따로 서술해보려 한다) 반면, 나와 같이 기자로 일을 하다가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 A는 대학원 공부가 너무나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친구 A는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게 되고 주변인들에 대한 이해폭이 넓어졌다고 했다. 또래들보다 일찍 결혼을 해서 이미 자녀도 있는 친구였는데, 심리학 공부가 육아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 번은 그 친구에게 "공부보다 회사 다닐 때가 나았던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그러자 곧바로 나에게 "기억이 미화된 것일 뿐, 정신 차리라"라고 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 맞는 말이었다. 몇 년간 시달렸던 역류성 식도염이 퇴사 후엔 깨끗하게 사라진 걸 보면, 내 몸뚱이는 '일 보단 공부가 낫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늘 남의 떡이 커 보일 뿐. 공부와 일 둘 중 쉬운 건 없다. 공부와 일, 둘 다 그저 적당히 하면 행복하련만. 하루에 일 3시간씩, 공부도 3시간씩만 하면 일과 공부로 스트레스받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가당치 않은 소리인 건 나도 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일과 공부 둘 다 안 하고 맨날 노는 거다. 그렇지만, 그럴 팔자는 아니기에 공부나 일 뭐든 해야 한다. 그중 나는 공부를 택했고, 나에겐 이 길이 최선이라 믿는다. 나이 80살쯤 됐을 때, 행복하게 먹고 놀려면 지금 그냥 닥치고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