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시험 기간, 회사로 그냥 돌아갈래!-신분증 검사, 감사합니다
"저기... 혹시 대학생이야? 아님 회식하는 직장인들이야?"
학교 앞, 주막형 술집에서 '나사들' 6명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사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줄임말-3화 참조) 딱히 메인 메뉴는 없고, 온갖 안주를 다 파는 전형적인 대학교 앞 술집이었다. 소주, 막걸리, 맥주 웬만한 주종은 다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날, 그 술집엔 우리 테이블 외엔 다른 손님이 없었다. 파전과 화채 등 이것저것 시켜서 열심히 먹고 있던 중, 식당 이모님께서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저기... 혹시 대학생이야? 아님 회식하는 직장인들이야? 내가 주방이모랑 이 테이블 손님들이 학생인지, 직장인인지 맞히기 내기를 했거든, 5만 원 걸고!"
이모님의 물음에 나사 6명 모두 웃음이 빵 터졌다.
"저희 대학생은 대학생이에요! 나이 많은 대학생들이요"
낄낄거리면서 답했다. 20대 초반 대학생으로 보기엔 다소 어려운 외모. 그렇지만 나누는 이야기는 영락없이 '시험공부는 안 해놓고 똥줄 타는 대학생들'의 대화였으니, 충분히 헷갈릴만했다.
"시험 준비 안 해서 어떡해. 근데 어차피 1학년이니까 놀아도 된다고 했어"
"그 교수님 수업만 아니었어도 시험기간이 힘들진 않았을 것 같아"
그날 모인 나사의 절대다수는 사회생활을 하다 왔으니 직장인들의 모임으로 봐도 이상할 게없었다. 우리의 정체를 알게 된 이모님은 급하게 수습하셨다.
"나이 들어 보여서 물어본 게 아니라, 시험기간인데 다들 공부 안 하고 여기 있으니까 이상해서 그랬지~"
이모님은 혹시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며 멋쩍어했다. 그러면서 서비스로 무려 잘 익은 수박을 잘라내 주셨다. 기분 나쁘기는커녕 30대 새내기만 겪을 수 있는 행복한 에피소드가 또 하나 쌓였다.
30대 새내기로 술집에 가면 이렇게 웃긴 일들이 종종 생긴다. 동아리 개강총회, 종강총회 때마다 우르르 식당에 가면,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곤 한다. 동아리 회장님은 '꼭 신분증 지참해서 오라'는 공지를 날린다.
새내기 중엔 나 같은 30대도 있지만, 아직 만 18세가 되지 않은 빠른 년생 새내기들이 가끔 있다. 이들은 술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대학가 술집에선 꽤나 빡쎄게 신분증 검사를 한다. 요즘엔 모바일주민등록증에 있는 QR코드를 기계에 인식시키는 방식으로 주민등록증확인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감사하게도, 나도 신분증 확인 대상이다. 가끔 학과 이름이 박힌 과잠을 입고, 빼도 박도 못하게 90년대생 주민등록증을 내밀면 이 상황을 의아해하는 사장님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내 얼굴과 주민등록증을 두세 번 번갈아본 뒤,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표정으로 일단 통과를 시켜준다. 아주 가끔은 '어려 보이셔서 진짜 몰랐어요'라는 빈말 인사를 덧붙이는 사장님들도 있다. 사장님, 저 같은 이상한 혼종도 있답니다.
신분증에 얽힌 사연은 하나 더 있다. 동아리 동기들 10명 정도가 단체로 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이태리음식을 파는 곳이었는데, 우린 곁들여먹을 와인을 함께 주문했다. 그러자 주민등록증 확인을 요구했다. 테이블에서 한 명만 신분증 검사를 하면 된다길래, "저희 성인 맞아요"라는 말과 함께 내 신분증을 내밀었다.
90년대생 주민등록증은 무적이다. 사장님은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 아주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약 10분 뒤, 사장님이 다시 우리 테이블로 왔다.
"저기 죄송한데, 옆에 분이 너무 어려 보이셔서... 신분증 검사 다른 분 한 번만 더 할게요"
나는 주민등록번호도, 외모도 빼도 박도 못한 성인이었지만, 20대 초반 동기들은 아니었다! 내가 봐도 아직 고등학생, 아니 중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어려 보이는 동기에게 신분증 검사를 다시 요구했다. 그 친구는 스무 살도 아니고 무려 삼수를 해서 들어온 친구였는데도 말이다. 웃으며 그 친구가 신분증을 내밀자 사장님은 그제야 안심하는 눈치였다.
뒤늦게 다시 대학교에 오다 보니, 스무 살이었으면 겪지 않았을 상황들을 종종 겪는다. 이 모든 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지 아니한가! 아, 글을 마무리하며 30대인 나도 술자리에 끼워준 어린 동기들, 신분증 검사를 한 식당 사장님들께 모두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