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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Nov 22. 2020

나의 첫 번째 바디 프로필 이야기 2

만족할 수 있을까?

드디어, 그 날이 다가왔다.

촬영 전 주 까지도 위약금을 부담하고 취소할까, 하는 고민을 할 만큼 부담감이 컸다. 프로필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주 괴로웠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답하고 싶었으나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는 나를 자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는가?

바디 프로필을 어떤 컨셉으로 찍을 것인가?

모든 과정에 드는 비용을 얼마나 소비할 것인가?

완성본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크게 이 네 가지 질문이 머리를 아프게 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 질문에 답을 내려본다.


첫 번째, 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는가?


몸의 상태와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요가강사로서 프로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바디 프로필을 어떤 컨셉으로 찍을 것인가?


노출이 없는 아사나 사진은 제주에 수련을 갔을 때 자연과 함께 종종 찍었으니 스튜디오에서만 시도할 수 있는 컷을 남기고 싶었다. 나를 드러내는 일에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싶었다. 노출이 있는 과감한 표현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또한 나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표현해줄 수 있는 곳에서 찍고 싶었다.


세 번째, 비용은 어느 정도 지출할 것인가?

첫 번째 촬영의 경우 부산에 거주하며 서울의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을 했으므로 왕복으로 교통비, 스튜디오 예약금(헤어 메이크업 포함) 식비, 숙박비, 그리고 왁싱, 바디케어에 비용을 지출했다.


네 번째, 완성본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처음에는 무엇을 하지 않더라도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하며 투자라고 생각하자면... 촬영 및 보정된 사진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을 브랜딩하고 홍보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고 일반인 모델로 일을 하거나, 더 많은 촬영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여기기로 했다.


처음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기로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나를 기록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나를 드러내는 일에 과감해지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핑크 텍스 소비에 대한 불편한 감각과 몸과 나 자신을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우려감 그리고 표현의 욕구 인정의 욕구 들이 서로 충돌함을 느꼈다.


에고가 원하는 표현 양식대로 나의 허영과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싶었다.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스스로의 성장과 변화의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소중하며 육체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과정은 특별한 경험이라 느꼈다.


그렇게 끊임없이 나 자신과 대화하고 고민하며 오랫동안 버킷리스트에 남겨두었던 한 줄을 지우고 나서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게 확장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진짜 진실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만족할 수 있는가?


주목받고 유명해지고 싶은 동기는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것, 그로 인해 금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만큼 돈을 많이 벌게 되길 기대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


무엇이든 해 보지 않고도 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는 무엇이든 해 보아야 직성이 풀리고 조금 알게 된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나 자신과 내가 공유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이나 철학을 상품화해야 한다고 느낄 때 고민이 되는 지점들이 많다.


분명 내게 필요한 경험이었다. 고민할수록 막연했던 것들이 구체화되고 스스로에게 집요하게 물어볼수록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생겼다. 또한 해보았으니 내려놓을 수 있게 된 지점들이 있다.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첫 번째 바디 프로필 촬영이 도전이었던 것은 조금은 헐벗은 듯한 몸을 기록해야 해서라기보다는 마감기한이 정해진 일을 스스로 설정해 피하지 않고 마쳐보는 것, 나의 욕망을 구체화해보는 것, 에고가 원하는 방향과 애쓰지 않고 싶은 자연스러운 상태의 내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지점들에서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었고 나의 욕망과 모순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자고, 에고가 원하는 만큼 외면이 세련되지도 못하고 믿는 가치와 상반되게 물욕과 인정욕과 허영심으로 가득 찬 내면이 있는 나,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자고. 내가 믿는 가치들과 부딪힐 수도 있는 선택을 하는 나 자신을 무조건 자책하지 않고, 이번 과정을 통해 불편함을 느꼈던 지점을 다음번에는 달리 준비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로컬의, 여성 작가님을 찾아, 헤어와 메이크업이 필수가 아닌, 자연스러운, 식단 조절을 하지 않는, 그런 촬영의 경험도 추가해보자.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며 자기표현의 욕구가 계속되는 한 내면의 모순은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욕망과 욕구가 어떻게 내재화된 것인지도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세요?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이 아니면 사랑할 수 없나요?


내면이든 외면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값지고 소중하다.


점점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함과 동시에 나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에서 어떤 가치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경험 속에서 이유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경험이 완결되는 것이니까.


표현과 소비의 영역에서 바디 프로필 촬영을 하든 하지 않든, 이 모든 행위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시도이며 삶을 확장하는 경험의 일부라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선택의 순간에 폭력적이지 않은 방법, 나 자신과 연결된 세상에 조금 더 나은 방법을 점점 더 낫게 선택할 것. 머리 아프고 괴로워도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 그 무엇보다 때로는 못나도 모순되도 괜찮으니 나 자신에게 진실할 것이라는 단단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옷을 벗고 나름대로 과감한 표현을 해보고 유명한 스튜디오에서 비싼 돈을 주고 뛰어난 실력의 작가님께 세련된 사진을 찍어서, 그런 구매를 해 본 자체로 만족스러운 경험은 아니었다.


촬영을 준비하는 시간은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자기모순을 인정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 욕망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따져 묻고 나는 만족할 수 있는지, 포기할 수 있는지 묻고 답해 볼 수 있었기에 값진 시간이었다.


정해진 시간 속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묻고 답하는 과정들은 나의 외면과 내면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게 했으며 진실로 대답했을 때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앞으로도 계속 모순된 욕망과 허영을 쥐고 내려놓기를 반복하겠지만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일에 애쓸 필요가 없다는 진실을 잊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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