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를 지우기 앞서 마음이 불편해졌다.
몸의 기록, 변화하는 몸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0대가 되면 꼭 해보고 싶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여전히 그 버킷리스트를 지우지 못한 채 요가강사로 수 년째 일을 해오면서 요가강사는 꼭 바디 프로필이 필요한 직업은 아니지만 있으면 쓰일 일은 있는 직업이라 이제는 바디 프로필을 찍을 때가 된 것 같다 느꼈다.
보이는 것에 대하여 언제나 마음에서 갈등이 인다. 특히 요가강사로서 상품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싶은 마음과 젊은 날의 아름다운 육체와 화려한 아사나를 연마해 멋지게 찍힌 사진과 그런 나를 상품 삼아 나도 반짝 스타가 되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이 충돌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열심히 벌어야 할 날이 창창한데 할 수만 있다면, 모델이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선망하던 요가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바디 프로필과 아사나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꼭...!" 하고 꿈을 꾸기도 했다.
오랜 버킷리스트였지만 정작 첫 번째 바디 프로필을 찍을 때쯤에 나는 '바디 프로필'이라는 것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바짝 몸을 만들어 지방과 마지막에는 수분까지 제거해 선명한 근육라인을 만든 조각 같은 몸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것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일일까?
스무 살 때 열심히 PT와 러닝과 식단을 병행해서 원하던 몸무게와 11자 복근, 스스로 만족할만한 몸의 외형을 얻었지만 단기간의 다이어트 속에서 과도한 운동 시간과 탄수화물 부족, 염분 부족으로 인해 어지러움을 자주 느꼈고 이따금 멍해지는 현상을 경험하곤 했다. 요요현상도 경험했다.
다시 살이 확 쪘다. 54kg에서 시작해서 46kg으로 끝난 다이어트 후에 1년이 채 되지 않아 58kg이라는 숫자를 체중계에서 보았을 때 나는 굉장히 우울해졌다. 그렇지만 다시 살을 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 번 성공해보았으니까, 술을 줄이고 불규칙한 생활리듬을 바로잡으려 노력했다. 생애 첫 다이어트는 주로 헬스장에 가서만 이루어졌다면 두 번째 다이어트는 대부분 실외 운동으로 이루어졌다. 마스크가 없이 달릴 수 있던 때여서 집 근처 공원과 지하철과 연결된 하천 옆을 자주 달렸다. 달리기 전 후로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해주고 필라테스와 요가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다시 자세하게 쓰고 싶다. 결국 나는 천천히 다시 50kg 초반대의 몸무게로 돌아왔다.
억지로 식단을 제한하지도 않고 억지로 운동을 하지도 않는 몸의 상태를 기록해보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식사와 매일의 요가수련만으로의 내 모습. 하지만 꽤나 큰돈을 들여 바디 프로필을 예약하고 나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큰돈을 들였으니 다시 바짝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식단도 조절하고 부족한 근육 모양은 좀 더 다듬고, 마사지도 받아야 하려나, 의상도 사고 브라질리언 왁싱도 하고, 음... 네일도 해야 하는 걸까? 돈은 얼마나 더 써야 할까? 계산하다가 머리가 아파왔다.
그 당시 마음을 가장 커다랗게 불편하게 했던 것들이 있다. 첫 번째로, 다시 돌아올 몸을 억지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점. 자연스러운 상태를 그대로 기록하고 싶다. 는 마음이 컸지만 스스로 조금 통통한 상태라고 느끼고 있었고 조금 더 날씬한 상태로 기록하고 싶다는 모순된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사진과 실제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가 큰 기록을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혹독한 다이어트와 엄청난 포토샵으로 나이지만 나 인 것 같지 않은 결과물을 비싼 돈을 주고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두 번째로,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가벼운 다이어트를 한다고 쳐도 단 한 두 달이라도 닭가슴살을 주식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식단도 화두였고 당시에나 지금이나 엄격하게는 비건은 아닌 페스코-폴로 상태를 오가지만 그래도 비건 지향을 하며 최대한 불필요한 육류 섭취를 줄여보고자 하는데 단백질 섭취를 위해 대량의 닭가슴살, 계란, 그 외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는 일을 피하고 싶었다. 내 몸의 외적 형태를 위해 불필요한 살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 몸을 반드시 그렇게만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세 번째로, 핑크 텍스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첫 번째로 바디 프로필을 찍었던 곳은 여성전용 스튜디오였는데 상당히 실력 있는 남성 포토그래퍼님께서 운영하고 계신 곳이다. 선망하던 요가 선생님들이 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던 결과물을 보고 나도 비슷한 컨셉의 사진은 꼭 이 스튜디오에서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첫 바디 프로필이니만큼 오랫동안 경험해보고 싶었던 곳에서 찍어야지 하고 결심을 했다. 하지만 문득 "여성전용 스튜디오"라는 점과 노출이 있는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내역들에 핑크 텍스라는 단어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류, 네일, 왁싱, 바디케어, 헤어, 메이크업, 바디 프로필은 이 모두의 총합이었고 심지어 남성 작가님께 그것도 여성전용 스튜디오에 촬영을 하러 가는 것이 그 작가님의 실력이 뛰어나신 것과는 별개로 나를 고민하게 했다. 어디까지 지출할 것인가? 나의 이 지출은 또 누군가의 또 다른 핑크 텍스 소비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마지막으로, 기록될 사진들을 통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의미 그놈의 의미 없이 그냥 단순하게 기록이 하고 싶을 뿐이라고 대충 스스로 둘러댈 수도 있지만 직업적 특성상? 활발히 sns를 하고 있는 내 성격 상 바디 프로필을 촬영하면 어딘가에 전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바디 프로필은 분명히 메시지가 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미지는 반드시 메시지를 담게 된다. 나를 상품화하는 일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일부 가공된 아름답고 젊은 육체의 기록으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예뻐지세요.", "날씬해지세요.",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자신을 사랑하세요." 그건 좀 유해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건강해지세요!" "자신을 사랑하세요." "당당해지세요." 얼핏 무해한듯한 이 메시지를 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크게 다른가?
고민들을 안고 설레는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공존하는 채로 바디 프로필 촬영일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