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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Jan 19. 2022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본질이라는 빈 그릇


 하라 켄야는 디자인을 빈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 앞에 빈 그릇이 놓이면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그릇을 채운다. 여기서 말하는 그릇은 본질이며, 그릇에 채워진 것은 각자의 사유와 행태다. 디자인의 영역은 그릇을 만드는 데까지이고 그릇을 채우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그릇은 제품이 될 수도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텅 비어버린 공간이 아닌 사용자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공간 이어야 한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꽉 찬 그릇이 난무한다. 나도 그런 디자인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긴 어렵다.


 책 중간쯤 하라 켄야가 무인양품의 세계화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그제서야 초판일자를 봤다. '무인양품은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진 브랜드인데 왜 세계화를 말하지? 이거 언제 쓰인 거야?'라는 생각으로. <디자인의 디자인>은 2003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사고의 낡음이 느껴지지 않은 건 적어도 17년간은 디자인에 대한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 책을 쓰면서, 디자인을 말이나 글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또 하나의 디자인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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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만이 반드시 진보라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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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산업의 구조 안에서 감추어진 둔감함과 미숙함에 대한 미적 감수성의 반발, 이것이 바로 '디자인'이라는 사상 또는 사고방식의 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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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의해서 환기된 디자인 사상이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 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한때의 소동이었으며 주의 깊게 모더니즘을 목표로 삼았던 디자이너 세대의 '노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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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조성이 아니다. 익숙한 것을 미지의 것으로 재발견할 수 있는 감성 또한 똑같은 창조성이다. 숫자 개념에도 정수가 있는 반면 소수라는 개념도 있는 것처럼 사물을 보는 견해는 무한하며 그 대부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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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이제까지의 것들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옛것'이 '새것'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로 선택의 폭이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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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기술은 분명 생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해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경이지 창조 그 자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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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보의 유통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에 종이는 소재이기 전에 '무의식의 평면'이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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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K'가 부동산 용어로 사용되면서 이제는 일본 주택 공간의 단위를 기술하는 기호가 되어 버렸다. 부동산 업자에게는 편리했을지 모르지만 다른 의미로는 주택 공간에 대한 대중의 욕망 수준을 낮게 억누른 정반대의 '교육효과'를 만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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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미의식을 키우는 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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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는 양갱이라는 것은 어두운 곳에서 먹는 과자라고 이야기한다. 일본 가옥의 어두침침한 방에서 먹기 때문에 양갱은 까맣다. 어둠에 녹아 형태도 분명치 않은 덩어리를 입에 품었을 때 느껴지는 그 달콤함, 그런 감각이 양갱이라는 과자의 본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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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카유의 고향'이란 장자가 한 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 무위인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곳에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전혀 쓸모없고 도움이 될 성싶지 않은 것일수록 실제로 풍요로운 것이라는, 우리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는 생각을 담고 있다. 그릇은 비어있어야만 물건을 담을 수 있듯이 미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텅 빈 밑바탕은 풍요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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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는 자칫 '전혀 손대지 않은 자연'을 신성시하기 쉽지만 기본적으로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며 인간과 교류하는 숲 역시 풍요로운 자연이다.


<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20.06.30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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