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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Mar 14. 2022

그냥, 사람

홍은전



우리는 나누기를 좋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성별이 나뉘고 어떤 '수저' 밑에서 태어났는지 나눈다. 사지가 멀쩡한지, 정신은 멀쩡한지, 만약 비정상적이라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그 수치를 등급으로까지 매겨 나눴다.


나는 아는 장애인이 없다. 가족도, 친구도, 업무로 만나는 사람이나 심지어 잠시 스쳤던 지인 중에서도 장애인은 없었다. 그럼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 5% 정도로 생각보다 많은 비율이다. 하지만 몇백 명이 모인 광장에 가도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것은 장애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이 우리와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새벽에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탁탁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온다. 지팡이가 바닥에 닿는 소리다. 매일 새벽이 되면 시각장애를 가진 이웃은 산책을 나온다. 점자블록에 눈이 쌓인 겨울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우리와 나누어진 장애인들은 시설에 있거나 시위장에 있다. 문제에 순응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새벽에 존재한다.


우리는 장애인과 나뉘어 수업을 받고 자라왔고 장애인 전용칸이 달린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일상적으로 '그들'과 '우리'를 나누는 것을 배워왔다. 그 교육의 결과로 우리는 같은 거리에 같은 시간에 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어떤 당연한 혜택을 누리고 어떤 일상적인 가해를 하고 있는지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무심한 침묵이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부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불편한만큼 세상이 딱 그만큼 나아질 거라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일상의 가해자이며 수혜자인 내가 이런 불편을 얘기한다고 그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소수자들을 나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불편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그만큼이라도 세상이 나아지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죄책감이란 것이 '먼저 달아난 사람'의 감정인 줄로만 여겼는데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려다 실패한 사람'의것일수록 더울 고통스럽고 지독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실은 죄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한 것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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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적나라한 대비 앞에 나는 조금 멍해졌다. 두 개의 공지가 선명하게 일깨운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와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버스'는 하나의 버스이며, 그것이 바로 내가 타게 될 그 버스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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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자신이 탄 버스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 자리의 주인에 대해 생각해주기를, 이 편에서 던진 '당신처럼'의 밧줄을 함께 당겨주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조금 더 불편해지기를 바랐다. 세상은 딱 그만큼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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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은 '아름다움'이 '앎'에서 나온 말이며, '안다'는 건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 언제든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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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자들은 자신들이 모은 조각이 고인의 생애를 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자책했으나, 나는 생애의 조각조차 가난한 그것이 바로 가난의 생애인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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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평생이 있어야만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상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고통스러운 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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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를 영어로 말하면 '아이 미스 유'. 내 존재에서 당신이 빠져 있다, 그래서 나는 충분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라고 어디에선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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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서웠다. 내가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낯선 존재가 무섭도록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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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앎은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지만 어떤 앎은 평생 쌓아온 세계를 한 방에 무너뜨리며 온다. 혁명 같은 그런 앎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작은 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걸, 나는 동물적으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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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인간에 대한 보은으로 자신이 사냥한 새나 쥐를 데려다 놓곤 한다는데, 나의 고양이는 매일 내 앞에 동물원에 갇힌 오랑우탄, 수족관에 갇힌 범고래, 위 안에 플라스틱이 가득 찬 앨버트로스 같은 존재들을 데려와 나를 식겁하게 했다.



<그냥, 사람 - 홍은전> 21.06.24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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