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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Feb 20. 2022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하루씩 말하다 보면 봄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몸을 움츠리는 것도, 구름이 잔잔한 것도, 잎도 꽃도 다 떨어지는 것도. 견디다 보니 어찌 겨울은 특히 더 길게 느껴진다.

그중에 겨울을 버티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눈이다.

눈이 좋은 이유를 하루씩 말하다 보면 봄이 오면 좋겠지만, 그새 눈만 녹아버린다.




발자국

눈이 오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발자국을 구경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주로 어디로 걸어 다녔는지, 뜬금없는 곳에 발자국이 나있으면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하기도 한다. 물가 주변의 오리 발자국, 매일 마주치는 고양이들의 발자국, 뭔지 모를 발자국을 검색하면서 여기 토끼도 사는구나 발견하기도 했다.


눈은 발자국 말고도 많은 자국을 남긴다. 눈을 끌어모아 눈 사람을 만든 자국, 솔방울이 떨어져 데굴 굴러간 자국들처럼. 그래서 밤에 눈이 오면 꼭 남이 밟지 않은 눈을 밟으며 산책을 나간다. 목적 없는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 발자국을 보고 돌아오면 내가 어디에 멈췄는지 어떤 걸음으로 걸어왔는지 볼 수 있다.


그래서 내 마음에도 눈 같은 게 내리면 좋겠다 생각했다. 뾰족하게 날 선 것들도 움푹 패어 있는 곳도 잔잔하게 만드는 눈이 내리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의 발자국을 볼 수 있겠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속도로 왔는지, 어디에서 멈춰 쉬었고 어디에서 돌아갔는지 밤새 구경할 수 있게. 



눈사람

난 눈사람 만드는 걸 참 좋아한다. 꼭 눈'사람'이 아니더라도 눈을 모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바닥에는 눈을 모으던 신난 발자국이 선명하고 우리의 행복을 모은 무언가를 그곳에 새겨놓고 오는 기분이다. 그래서 눈사람은 늘 웃고 있는 모습이려나. 내가 눈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하는 동안 눈이 다 녹아도 눈사람을 만들었던 그 자리에는 기억이 남아있다. 그곳을 볼 때마다 우리의 눈사람이, 행복한 자국이 선명하다. 



고요함

유독 눈은 밤에 많이 내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눈이 오는 날 밖을 나가면 참 고요하다. 평범했던 장소가 특별하게 변하는 경험은 평소와는 다르게 보이고, 다른 냄새가 나고, 다르게 들릴 때다. 온 세상은 하얗게 변하고 고요하다. 그리고 흙냄새가 섞인 듯한 꿉꿉하고 시원한 냄새가 나면 항상 지나다니던 그 자리에 서서 넋을 놓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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