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죽음의 이유
책 읽어주는 남자.
원작 소설을 영화 본 지 6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았다.
사실 방금 한 시간 가량 쓰다가 잠시 앱이 백그라운드에 뒀다 재실행하니 날라가버린 일 발생...
다시 길게 쓸 힘이 없어서. 마지막에 쓰고자 했던 것만 추리려 한다.
소설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우연히 사랑에 빠진 한나와 미하엘이 물리적 정신적 거리가 완전히 하나인 모습. 그리고 책 읽기란 의식으로 세상과 미하엘과 교감하는 한나.
2부는 나치 전범으로 피고인석에서 방청석에서 서로를 바라보고는 있으나 정신도 원망과 미움으로 부끄러움으로 구분지어진 두 사람
3부는 물리적 거리는 감옥 안과 밖으로 구분되지만 다시금 책읽기른 의식으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보듬어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을 보았을 때 여러 궁금점이 있었다.
어린 미하엘과 사랑에 빠진 한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문맹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단절해버린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한나에게 어린 미하엘은 유일한 관계의 통로였는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구세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문맹인 자신에게 잠시 후 오겠다는 쪽지를 못알아보고 불같이 화를 냈는지도.
그리고 한나는 정말 수용소 관리자로 나치의 일원이었을 땨 그 의미를 정말 몰랐을까. 그저 가스실로 보낼 인원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그저 단순 서류 작업같은 일로만 여겼던 걸까 그 이상의 살인적 의미를 정말 몰랐던 걸까
문맹의 부끄러움이 정말 종신형의 무게보다 무거웠던 걸까.
그리고 마지막
대체 가석방 하루 전 자살의 결정적 이유는 죄값을 치루고 싶었던 걸까? 미하엘의 어쩔 수 없는 외면이었를까?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질문이 많이 생겼던 그런 소설이다. 다 읽은 후에도 알 수는 없고 작가 역시 모든 게 복합적인 것처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미하엘의 관점에서도 좀더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사랑과 열정을 다 소진한 채 20대에는 쓸쓸함과 냉정함으로 30대에는 당연한 책임감으로 껍데기로 사는 미하엘이 그녀에게 다시 책읽기란 의식을 시작했을 때 진짜 다시 구세주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유일한 소통의 창구.
-아래 글은 2009년 3월 16일 영화 보고 블로그에 적어두렀던 리뷰-
드디어 봤다. 목요일 오후 두 시.
삼분의 일도 채 차지 않은 학교 안 작은 극장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화 전체적인 느낌은 살짝 타인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독일 특유의 배경들. 시시하게 시작한 영화는 끝으로 갈수록 얽히고 섥힌 복합적인 감정들이 느껴지게 했다.
그리고 독일을 배경으로 유명해진 영화라면 빠지지 않는 홀로코스트.
15세 소년과 30대 여인의 사랑
한나는 글을 모르고 그 것이 창피하다. 그래서 소년이 늘 책을 읽어주기를 원한다.
한나는 글을 몰라 사무직으로 승진했을 때 거절하고 아우슈비츠 감시원이 된다.
글을 모르니 아우슈비츠 감시원이 정확히 어떤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을 감시하고 죽을 사람을 차출하는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왜 하는지는 모른다.
한나는 아우슈비츠 감시원을 했었던 과거 때문에 몇 년이 지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자기가 한 일이 어떤지 정확히 모르니 사실대로 증언을 할 수 밖에 없고 그 증언은 불리했고
나머지 피고인은 이런 그녀에게 자신들의 모든 죄를 전가시킨다.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밝히기 싫은 한나는 그 사실을 재판 끝까지 숨긴 채 그대로 감옥으로 가게 된다.
한나가 떠난 후 상처받았던 소년은 법대생이 되어 우연히 그 재판의 현장을 바라보게 됐을 때
그녀가 왜 책을 읽어달라고 했는지 그제서야 깨닫는다. 그러나 그녀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본다. 알 수 없는 감정들.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현장에 참여했다면 그 것만으로도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몇 년이 더 흐르고
중년이 된 소년은 녹음테이프에 책내용을 담아 한나에게 보낸다. 예전에 읽어주었던 것처럼.
한나는 눈물을 주체 못하고 테이프를 듣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20년이 흐르고 그들은 재회한다. 한나가 가석방되기 일주일 전.
"You are grown up kid"
그리고 그 후 그녀는 자살한다.
무엇이 그녀를 자살하게 했을까? (이부분은 원작과 달리 영화에서는 너무 압축적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글을 알고 혼자 책을 읽은 힘을 갖게 된 한나는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파악하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알게 되고
책을 통해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사회를 보는 눈을 기르게 된다.
그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 자신의 과거는 치욕스러울 뿐이다. 부끄러울 뿐이다.
한나 슈미츠를 보며 그리고 그 옆의 소년을 보는 내내 슬펐다.
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럽지만 책을 통한 세상이 궁금한 한나
문맹이어도 되는 일을 찾다 결국 아우슈비츠 감시원이 되어 알지도 못한 채
너무나도 잔인한 역사에 가담하게 된 과정들
그런 한나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딸 조차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해 껍데기로 살아가는 마이클.
그런 두 사람이 서로 책을 읽어주고 들어주는 과정안에 억눌려진 마음을 풀어내는 모습이 모드 답답하기도 했다.
글은, 책은 한 개인과 사회를 연결한다.
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난 개인은 누군가와 친밀한 감정을 나누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 착실히
살아갈 순 있지만 선한 의도로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사회의 시선이 두려운 개인은 때때로 자신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변호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리고 법은 이런 표면적인 사실들을 모아 내면의 의도와 상관없이 개인의 죄성을 판단한다.
여담으로....
케이트 윈슬렛은 너무 멋진 배우였다.
2월부터 보려고 벼루던 영화였는데 역시 영화관에서 보길 잘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