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피하는 최적화의 함정

비판을 주고받는 자유의 영역이 줄어드는 현실

by Be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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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비판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비판은 쉽지 않다.
내 감정이 소중하다고 느껴질수록
더더욱 비판을 하기는 어렵다.



편안한 일상 속 희미해지는 비판의 영역

언제부턴가 사회는 비판보다 공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기쁨과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공감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계를 이어나갈 수는 없다. 때로는 비판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거나 개선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판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공감과 힐링의 영역이 넓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과 힐링 모두 현대인들에겐 중요하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해야 에너지가 충전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감과 힐링에는 익숙하지만 비판에는 익숙하지 않다. 특히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유롭게 비판을 할 수 있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비판을 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학교의 커리큘럼은 자사고, 특목고, 입시 등 목표지향적인 것에만 맞춰져 있다 보니 비판보다는 그저 묵묵히 선생님의 가르침과 전달내용을 받아들이는 것에만 익숙해진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당연히 비판이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취업을 하기 전까지 누군가에게 비판을 받아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현실적이면서도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을 받아보거나 직접 해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내 스스로는 비판을 잘 못하는 데 반해 누군가에게 비판을 듣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기분이 나빠졌던 것은 아닐까?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와 태도를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제대로 배웠던가? 그저 적응 잘하고 업무를 잘해서 커리어를 잘 쌓기 위한 생각만 했지 과정에 대한 것들을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 과정 가운데 당연히 비판이 있기 마련인데 무의식적으로 비판이 없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하루를 보내려고 했으니 당연히 멘탈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흔히 비판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비판적 사고를 형성하기 위한 환경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찌보면 이건 학교와 학원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축된 최적화 형태의 사고방식이 만든 또 하나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SKY를 가기 위한 학습 방법의 최적화, 대기업을 가기 위한 최적화, 취업을 잘하기 위한 최적화 등 모든 문제를 최적화해서 나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받기 위한 노력이 역설적으로 비판에서 멀어지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비판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문제가 될 게 없다. 비판할 수 있는 자유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요즘은 비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비판이 아닌 것마저도 누군가에게 비판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에 비판보다는 최대한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 실수나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고 그건 결코 창피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쉽게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감정과 기분이 나빠지거나 자칫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겪지 않기 위해서다.




비판을 피하면 과연 득일까? 비판없이 성장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비판을 피하는 방법? 그런 건 없다. 비판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내가 직접 비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학창시절에 비판적 사고나 비판을 수용하는 태도와 자세를 배우면 좋지만 한국 교육에서 그러한 것들을 배우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선생의 생각과 의견이 곧 학생의 생각과 의견으로 직결되는 교육 프로세스에서 비판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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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필요하다!

2012년, 2013년의 트렌드는 힐링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취업이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가 많았다. 취업 외에 입시와 공무원 시험 등 앞으로의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청년들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공감하고자 방송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힐링 콘서트, 인문학 콘서트 등 여러 행사들을 많이 했다. 지식인들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과 소통했고 힐링 관련 도서들은 베스트셀러로 선정되었다. 그렇게 힐링이 트렌드로 자리잡았고 생각보다 힐링이란 트렌드는 꽤 오래 지속되었다.




지금은 어떤가? 최근 기사를 보면 힐링이란 키워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10년이 지난 지금, 힐링은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다. 힐링, 어떻게 보면 듣기 좋은 단어일 수 있지만 삶이 힐링으로만 채워진다면 그보다 지루한 게 또 있을까 싶다. 힐링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단지 삶에서 힘든 순간들을 잠시 잊게 해주고 여유를 가지게 해주는 일종의 휴게소일 뿐이다. 마음이 치유되었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난 오히려 그 당시에 비판적 사고를 통해 자유롭게 비판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트렌드가 형성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한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한 주제를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현실과 사회 그리고 자기 삶을 돌아보며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유로운 비판은 오히려 오픈 마인드를 갖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비판이 자유로워야 사회의 건전성이 유지된다. 비판을 수용하는 자세와 태도가 성숙해질수록 더 심도있고 중요한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




가벼운 문제부터 무거운 문제까지 비판없이 이루어지는 건 어디에도 없다. 이 부분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쉽게 비판을 하지 못한다. 상황과 분위기 그리고 타인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반응이 비판보다는

공감과 이해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추가적으로 회피라는 선택지가 있는데 요즘은 공감과 이해보단 어떻게든 회피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 당연하다. 굳이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을 직접 마주하면서까지 내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럴수록 비판의 영역과는 점점 멀어진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단 회피하거나 비판을 피하는 최적화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근거 없는 비판은 망각의 지름길이지만 건전하고 근거 있는 비판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비판을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가 있음에도 비판을 하지 않거나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성장보단 정체와 유지에만 익숙해질 것이다. 물론 성장이 100%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스스로를 개선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감에 있어 비판이 불필요하다는 생각과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비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오히려 비판은 필요하다. 요즘 같은 AI 시대에 100% AI를 신뢰한다는 식으로 AI를 활용했다간 자칫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AI는 동명이인이나 기타 복잡한 정보를 아직까지는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일방적으로 학습된 수동적인 직선적 사고방식이 아닌 능동적인 비판적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한 비판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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