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일상을 살아간다고
단정지으면 결국 스트레스가 찾아왔을 때
부담을 갖거나 힘들어진다.
항상 평온하고 따뜻하며 스스로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한 얘기만 들을 수 있는 그런 시간과 장소가 얼마나 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시간과 장소가 있다고 한다면 정말로 행복하고 운이 좋은 삶이 아닐 수 없다. 요즘처럼 바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기에 안정과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시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시간의 길이와 공간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 단순히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거나 공간이 크다고 해서 편안하다고 볼 수도 없다. 사람마다 자라온 성장환경과 취향,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마음 편안한 곳은 없을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동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아무리 집중을 하고 신경을 쓴다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스트레스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렇듯 예상할 수 있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예상할 수 없는 스트레스도 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듯이 심리적으로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의 기간을 오랫동안 지속해온 삶을 찾는다면 그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스트레스를 겪는 것은 당연하다. 스트레스는 심하면 몸과 마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일을 구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워낙 많이 들었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스트레스 많이 받지 말라고 얘기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는 피해야 하고 느끼면 안 된다는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스트레스에 대한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몰랐다. 업무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 외 다양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가 막막했다.
흔히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들이나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모여서 술자리를 갖거나 아니면 동호회 모임을 한다든가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식의 선택을 한다. 사실 어느 선택이든지 간에 당시에는 본인이 하고 싶거나 스스로의 취향과 성격에 잘 맞는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푸는 활동을 할 그 당시에만 마음이 편하고 시원할 뿐 뭔가 개운치가 않다. 그렇게 잘 쉬고 잘 놀고 다시 일상을 시작하고 나면 나의 마음 상태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무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스트레스, 어떻게 푼다고는 풀었는데 왜 이리도 잘 안 풀리는 것일까?
내 욕망과 바람을 채우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균형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뭔가를 하고 생각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때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고방식이 전진을 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때도 있다.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잘 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노력하면 충분히 좋은 성과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사 시행착오는 있기 마련이고 어렵고 답답한 순간은 찾아온다.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당장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바로 풀기도 쉽지 않다. 내 스스로도 스트레스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스트레스와 마주할 때마다 어딘가로 피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직장생활이나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조금만 더 참아보자는 생각을 하거나 여기만 벗어나면 괜찮아진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버텼다.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잘 몰랐다.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남아있었다. 스트레스, 이거 진짜 계속 이렇게 놔두기만 해야 하는 것인가. 언제라도 닥쳐올 수 있는 스트레스와는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한 가능성을 하나 둘 차단했다. 사람을 덜 만나고, 예전보다 활동도 덜 했다. 웬만하면 활동 범위를 넓히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일상을 살아가며 가운데 스스로 하고 싶은 선택을 하며 나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었다. 예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사소한 것들로 인한 스트레스는 계속 있었다. 그리고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들을 만들지 않는 이상 스트레스와 작별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를 잘 풀 수 있는 것일까? 난 예전과는 다르게 접근을 해봤다. 어쩌면 나의 이상과 욕망 을 채우는 게 스트레스를 더 양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뭔가를 많이 할수록 내가 건드리는 영역은 더 넓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과 마주한다.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접하다 보면 당연히 스트레스는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는 것을 구매하거나 목표를 이루었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원하는 것들은 계속해서 생기고 생기고 또 생긴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던 그 순간엔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시간이 주는 가르침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애초에 스트레스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자주 접하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인데 그에 대한 거리감을 너무나 많이 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엔 스트레스를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것이었을 뿐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다시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등한시했다. 그런 상황에서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자극적인 것들을 접하면서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의 한계는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되니 한편으로는 정말 아쉬웠다. 늘 발생할 수 있고 언제든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참으로 어려웠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만 여기서 그걸 얘기하고 싶진 않다. 분명한 건 때로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긴장감을 주고 뭔가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지나치면 독이 되듯이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면 충분한 조절과 관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본다면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 풀리겠지만 특정한 상황이 반복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과 방향에 따라 삶의 모습도 그에 맞게 펼쳐질 것이다. 때로는 절제가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채우고 비우는 것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또 있을까? 정말 스트레스를 느끼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연으로 돌아가면 될까?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자연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 건강을 회복하고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스트레스를 지혜롭게 관리하며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삶이야말로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