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함이 만든 무기력함

안정을 추구하는 심리의 역설적인 대가

by BeWrite


편안하게 살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이후 찾아오는 건 거대한 고요함과
소리없이 느껴지는 방황이었다.



안정적이면서 반복되는 일상, 시간이 지날수록 벗어나고 싶어졌다

직장도 문제없이 잘 다니고 있고 인간관계도 나쁘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한다. 경력이 쌓이고 경험을 하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거의 없어졌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자유시간도 늘어난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그런 날들을 보내면서 한편으론 기분이 좋다. 무탈한 일상의 날들은 계속된다. 중간중간 이벤트가 발생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일상에 영향을 줄 만큼의 멘탈붕괴는 없다. 그래,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모르게 지치기 시작했다.




이 고민을 돌아보기에 앞서 과거의 내 모습을 잠시 회상해보고자 한다. 한창 군대에서 전역을 하고 나왔을 때였다. 전역 전날과 당일은 정말로 마음이 설렜다. 길고 긴 군 생활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는데 막상 접하게 되니 너무나도 기뻤고 또 기뻤다. 위병소를 나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부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은 다음날을 기다리게 해주는 하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역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기껏해야 한 달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니 그저 그런 일상이 시작됐다. 날씨도 좋고 어떠한 문제나 이슈도 발생하지 않는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몇 달만 있으면 복학을 해야 했는데 왠지 모르게 낯설고 무기력함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제3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특별히 문제될 게 없는 일상이었다. 예정대로 복학하고 졸업하면 된다. 그리고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면 된다. 근데 왜 무기력해진 걸까? 그 당시엔 알지 못했다. 특별한 문제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게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 이러한 나의 마음을 지인 분들에게 털어놓았을 당시엔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잘 모르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맞는 얘기다. 어떠한 일도 발생하지 않은 가운데 자신의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 복학을 했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학기를 잘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알지 못했다.

분명히 일상은 안정되고 나름 괜찮은데 왜 이렇게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느껴지는 건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후에 졸업을 했고 취준을 거쳐 취업에 성공했다. 누구나 겪는 신입 시절을 지나 경력을 쌓고 차츰 성장해나갔다. 일상은 차츰 안정을 되찾았고 예전보다 좋아진 문제해결능력 덕분에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잊고 있던 고민거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근데 왠지 모르게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심지어는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느껴졌다. 일에 적응도 잘하고 특별히 이슈도 발생하지 않는 무탈한 일상이 오히려 삶의 무게를 더 짓누르고 있던 것이었을까?



무탈함이 주는 무기력함, 그걸 해결하려면 불안이 필요했다

어디까지가 무탈한 일상인지에 대한 범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무탈한 일상에 대한 내 생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불안을 벗어나기 위한 최적화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좋은 성적, 좋은 학력, 좋은 직장 이런 기준들은 전부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대기업이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충분히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흔히 말하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그런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했다.




불안을 이기지 못하면 실패자였다. 그래서 불안을 피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안정적인 삶과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과 일상을 얻었고 누리며 살아가는데 왜 그리도 공허함과 무기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내 자신에게 되물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결국 안정을 추구하고 안정에 기반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불안이었다. 뭐라고? 안정적인 삶의 원동력이 불안이라고?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불안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해서 살아가는 건데 오히려 불안이 안정적인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을 돌아봤다. 내 삶을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준 가장 큰 원동력은 수많은 시도와 도전이었다. 근데 그런 시도와 도전들은 거의 대부분 내가 처음 해보는 것들이 많았다. 취업을 하기 위해 진행했던 프로젝트들 그리고 처음 겪어보는 분야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협업한 경험들은 나의 불안감을 더 키우고 위축시켰던 것들이었다. 당시엔 스스로를 불안 가운데 놓고 뭔가를 해결해야 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잘 몰랐다. 어떠한 레퍼런스도, 케이스도 없는 상황에서 맨 땅에 헤딩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하면 잘 넘길 수 있고 피할 수 있을지만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불안정한 상황에 놓이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불안을 안정으로 바꾸는 역량이 쌓이기 시작했다.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시행착오도 자주 겪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많은 성장을 했다. 안정적인 일상도 즐길 수 있었고 여유도 가졌다(여유는 돈보단 마음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어느 정도 안정을 즐겼으면 그 이후부턴 뭔가 스스로 변화를 가져보거나 이런저런 시도를 해야 하는데 루즈함의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그게 오히려 공허함과 무기력함을 불러온 것이다. 사람마다 다를 순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잘 몰랐는데 뒤늦게 알았고 결국 일상의 루즈함에 빠졌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 결국 내 자신을 불안정하고 불안한 상황에 둘 수 있어야 균형이 유지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깨달은 이후부턴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는 행위 역시 그 다양한 활동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난 내가 쓰는 글을 잘 공유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 위안을 하며 노트나 메모로만 남길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입장에선 큰 도전이었다. 나의 글솜씨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필력이 있는 사람도 아닌지라 솔직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뭔가 달라지고 싶었다. 불안을 피하는 내가 아닌 불안을 만나도 담대하게 받아들이며 헤쳐나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불안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안정을 찾아가는 삶, 어떻게 보면 그게 참 중요하다. 경쟁으로 인한 불안, 낯선 환경으로 인한 불안, 인간관계로 인한 불안 등 온갖 불안이 도처에 깔려있다. 근데 정작 불안을 피하는 것만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어떻게 해야 불안을 건전하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얘기나 노하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안정적으로 사는 게 최우선이고 뭐든지 안정적인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정적인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안정적인 것들은 거의 없었다. 전부 불안정하고 불안한 것들 가운데서 출발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기반으로 일상을 보낸다. 무탈한 게 제일 좋다고 얘기하지만 결국 그것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몸소 경험했다. 결국 무탈이란 불안과 안정의 순환이 지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불안과 도전이란 키워드를 지워버리고 살아가면 어떨까? 좋은 조건의 삶이 안정감을 주고 실제로 안정적인 삶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러한 안정감이 주는 행복의 가치는 오래 갈 수 있는 걸까? 무탈함, 일상에서 어떠한 문제도, 이벤트도 없는 그러한 삶이 정말로 이상적인 삶일까? 결국 안정적인 삶도 어느 순간부턴 불안을 찾게 된다. 수많은 가능성과 기회 그리고 도전을 통해 현 시대를 개척한 인간의 본성은 불안이 없인 그 어떤 것도 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삶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분위기가 건조하고 루즈하게 느껴진다면 익숙한 흐름에서 벗어나 낯설고 불안한 환경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토, 일 연재
이전 05화반복이 결국 번아웃을 부른다